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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아니, 두목, 당신이 읽은 책 그 많은 책 말인데...... 그게 뭐 좋다고 읽고 있소? 왜 읽고 있는 거요? 그런 질문에 대한 해답이 책에 없다면 대체 뭐가 쓰여 있는 거요? (중략)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어디 그 이야기 좀 들읍시다. 요 몇년 동안 당신은 청춘을 불사르며 마법의 주문이 잔뜩 쓰인 책을 읽었을 겁니다. 모르긴 하지만 종이도 한 50톤 씹어 삼켰을 테지요. 그래서 얻어 낸 게 무엇이오?
<그리스인 조르바>를 다시 읽었다. 사서 초임시절 의무감에 이 책을 읽었을때는 조르바의 자유 분망함이 다소 부담스러웠고, 그저 고집 센 노인에 불과한 그에게 왜그렇게 열광하나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하지만 문장 하나하나를 곰 씹으며 천천히 읽다보니 삶의 혜안을 보여주고, 그의 거침없는 통쾌함에 희열을 맛보는 느낌도 받은걸 보니 난 조르바에 빠졌나 보다.
책 읽기는, 특히 문학작품 읽기는 타인의 삶을 통해 내 삶을 재조명하고, 보다 풍부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힘을 얻는 것이리라. 단지 책을 읽는것에 그치거나, 방관하는 자세로 몇날며칠 책만 읽는다면 조르바 같은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답답함으로만 비춰지겠지. 적절한 타협이 필요할듯.
조르바는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데 도움을 줄 두목(?)을 스스로 결정하였듯이 매사 주도적으로, 열정적으로 살아간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일과 사랑이다. 광산의 갱도에서 일할때는 마치 그 일이 자신의 과업인양 죽을것처럼 일하고, 오르탕스 부인과 질퍽거리는 사랑을 하기도 한다. 어느 날 훌쩍 떠나서 한 달 이상을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사는 여유를 부리기도 하며, 죽을 위험에 처한 과부를 구해주는 정의로움도 갖고 있다. 두목이 타인의 시선을 생각하며 실천하지 못하고 고민만 할때, 조르바는 타인의 시선에 아량곳하지 않는, 어느곳에도 얽매이지 않는 진정한 자유인으로 살아간다.
새 길을 닦으려면 새 계획을 세워야지요.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일하고 있네.> <잘해 보게.> <조르바, 자네 지금 이순간에 뭐 하는가?>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 <조르바, 잘해 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게.>
두목은 카잔차키스의 실제 모습이고, 조르바도 실존 인물이라고 한다. 지금의 내 모습,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윤리적, 도덕적인 두목에 가깝겠지만, 한편으로는 돈키호테같기도 한 조르바의 자유로움과 열정적인 삶을 꿈꾼다. 오늘을 즐기고, 지금 이순간을 즐기고, 더해서 마음 끌리는 대로 살고 싶다. 가끔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