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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 신달자 에세이
신달자 지음 / 민음사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스무살 나이땐 마흔이라는 나이에 대해 "중년 아줌마, 내 얼굴을 책임져야 할 나이, 안정, 편안함" 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그저 까마득하게 생각했다. 공자가 《논어》〈위정편(爲政篇>에서 "40세는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었다"는 불혹에 대한 의미를 떠올려본다. 과연 그럴까? 늦은 결혼으로 초등학생 자녀가 있어 아직도 아이들 뒤치닥거리와 직장에서의 어중간한 위치로 갈팡질팡하는 내 자신을 보니 아직 멀었다. 그런 마음을 알아주듯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고 하는 작가의 제목이 선뜻 다가온다.
그동안 신달자시인은 한없이 감성적이고, 미화적이고, 삶의 고단함을 알지 못하리라는 선입견으로 일관했다. 무심한척 때로는 애써 외면하며 그렇게 홀대했다. 에세이집을 읽으면서 나의 그릇된 편견에 미안했다. 지난번 도서전시회때 미리 읽었더라면 한마디라도 대화를 나누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인간에게도 생애 단 한 번은 완전한 주목을 받으며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 있다. 그것은 죽음이다'로 시작하는 담백한 글은 뇌졸증으로 쓰러져 입,퇴원을 반복하고, 정신병원을 들락거리며 24년을 더 산 남편의 죽음을 맞이하면서 시작되는 고단한 삶의 이야기이다.
딸에게도 하지 못했던 작가의 결혼생활에 대해 마흔에 소설공부를 위해 대학원에 다니는 제자 희수에게 깊은 속내를 털어놓는 형식으로 되어있는 글은 참 진솔하고, 솔직하며, 삶의 비애가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가끔씩 적어놓은 삶의 편린같은 함축된 시는 눈물 젖게 한다. 늦은 나이에 박사학위를 받고 지방대학 교수가 되어 남편으로부터 벗어나는(?) 해방감을 느끼며, 일주일에 한번 기숙사에서 자고 서울로 돌아갈때의 마음을 표현한 "잘자! 내게 남은 희망을 네 창으로 모조리 던져 주고/돌아설때/서울의 어둠은 바로 내 앞에 있었다/그때 갈비뼈 하나라도 뽑아/탕하고 나를 향해 방아쇠를 담기고 싶었다." 는 남편에 대한 강한 분노와 애증이 눈에 선하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지만 한 남편의 아내인 작가는 때로는 속물근성도 보이며, 남편의 출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다행히 남편이 일부 회복을 하고 다시 대학 강단에도 서며 평범한 생활을 하지만 20여년간의 병간호는 그녀를 참 많이 지치게 했다. 마흔 즈음에 남편의 뇌졸증으로 힘든 나날을 보냈고, 그런 힘이 그녀를 늦은 나이에 공부하게 했고, 글을 쓰는 힘이 되었겠지. 온실속의 화초보다는 현재의 그녀가 더 아름다운건 나만의 생각일까? 책을 덮고 제목을 읽어보면서 내안에 힘이 생긴다. 마흔인 지금 나도 무언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용기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