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레라 시대의 사랑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7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읽고 났을 때,
책을 얼굴 위에 덮고 한동안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사람의 인생을 두고 저글링하듯 이쪽에서 저쪽으로...
쉴새없이 누군가의 인생, 한 가족의 몇 대에 걸친 역사를 풀어놓는 솜씨에
음... 뭐랄까.. '아연실색'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단순히 '감동'이라고도 말할 수 없고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기엔 그 광풍이 너무나도 거세고...

그러니 "콜레라 시대의 사랑"도 당연히 훌륭하겠거니 하고 생각하고 선택.
딱히 전작주의를 의도한 건 아니었으나
그래도 마르케스라면 최소한 시간 낭비는 아닐 거라는 믿음!!!

아. <백년의 고독>이 그의 가장 유명한 소설이라지만
'아름다움' 면에서는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 한 발 앞선다.
특히나 "아직도 사랑이 아닌 다른 이유로 자살하는 사람이 있다니 유감이군요."
"내가 죽는 것이 가슴 아픈 유일한 까닭은 그것이 사랑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라는 문장은,
가히 놀랄 만한 명문장! 

미국의 소설가 토마스 핀천은 이 책의 마지막 장은 읽어본 작품 가운데 가장 놀랍다고 했는데,
단지 마지막 장 뿐일까.
페르미나 다사가 2시간 동안 비춰졌던 거울을 구하기 위해
1년여의 시간 동안 호텔 주인을 끈질기게 설득했던 플로렌티노 아리사의 마음 또한
놀랍고도 아름답고도 진중하다.
고백하건대, 나는 책을 들고 있는 내내 플로렌티노가 제발 사랑 때문에 죽어버리길 소원했다.
다른 시시껄렁한 이유 말고 사랑 때문에 죽어라! 

이 책은 영화 '세렌디피티'에도 나온다.
우연히 만난 남녀 주인공이 서로의 신상명세를 알리지 않은 채
헌 책과 지폐에 전화번호를 각각 적고 헤어지는데,
그 헌 책이 바로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었다.
집에서 메가 티비로 영화를 보다가 책 표지를 보고선 얼마나 놀랐던지!
에라잇, 이런 말랑말랑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마음 속으로 항변만 100번쯤 하다가, 그래도 진솔한 사랑을 표현하기에
이렇게 적절한 책이 또 어디 있겠냐, 시나리오 작가에게 수고했다 텔레파시 보내고.

그 뒤로 일상 속에 파묻혔다가도 불현듯 드는 일관된 생각은...

간혹 뉴스에서 사랑 때문에 자살한 청춘남녀를 보면 한심하다 손가락질했는데
그들이야말로 제일 합당한 이유 때문에 죽는 것이었으리라.
제대로 죽어간 수많은 청춘남녀(백발 성성한 노인이라도 사랑을 한다면 청춘남녀)에게
무한한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하지만, 난 용기가 없어요.
나는 그냥 늙어 죽을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콜레라 시대의 사랑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8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2월
장바구니담기


"내가 죽는 것이 가슴 아픈 유일한 까닭은 그것이 사랑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15쪽

어느 날 밤, 그는 식민지풍의 고급 식당인 돈 산초 호텔에 들어가서 가장 멀리 떨어진 구석에 앉았다. 간단한 간식을 먹으러 혼자 갈 때면 습관적으로 항상 그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그때 안쪽에 걸린 커다른 거울에서 페르미나 다사를 보았다. 그녀는 남편과 다른 부부 두 쌍과 함께 앉아 있었는데, 그가 그녀의 찬란한 모습을 거울에서 모두 볼 수 있는 각도에 위치해 있었다. 그녀는 편안한 마음으로 우아하게 대화를 주도하고 있었고, 폭죽을 터뜨리듯이 요란한 웃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은 눈물 모양의 거대한 샹들리에 아래서 더욱 빛나고 있었다. 앨리스가 다시 한 번 거울 속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숨을 죽인 채 그녀를 마음껏 바라보았다. 그녀가 먹는 모습, 포도주에 입만 대는 모습, 가문에서 대대로 운영해 온 돈 산초 호텔의 사 대째 주인과 농담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고는 자신의 외로운 식탁에서 그녀와 삶의 한순간을 살았다. 그렇게 그는 그녀와 사랑을 나눌 수 없는 장소에서 눈에 띄지 않게 한 시간 이상을 보냈다. 그런 다음 그녀가 일행과 뒤섞여 나가는 모습을 볼 때까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커피를 -120-121쪽

네 잔이나 더 마셨다. 그들이 너무나 그의 옆 가까이로 지나갔기에 그는 다른 사람들의 향수 냄새 속에서 그녀의 향내를 맡을 수 있었다.
그날 밤 이후 거의 일 년 동안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호텔 주인을 끈질기게 공략하면서 돈이든 부탁이든, 아니면 그가 인생에서 가장 갈망한 것이든 원하는 바를 모두 들어줄 테니 그 거울을 자기에게 팔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이 든 산초 씨는 빈의 어느 가구 기술자가 세공한 이 아름다운 거울 틀이 마리 앙투아네트가 가지고 있다가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다른 틀과 짝을 이루는 둘도 없는 보물이라는 전설을 믿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산초 씨가 그 거울을 주자,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자기 집의 거실에 걸어놓았다. 그것은 멋진 틀 때문이 아니라 사랑하는 여자의 모습을 두 시간 동안이나 담고 있었던 틀 안의 거울 때문이었다.-120-121쪽

그는 당시 모든 사람이 읽고 있던 소설 <펭귄 섬>을 읽는 데 푹 빠져 있었다.-141쪽

두 사람은 마치 부부 생활의 지난한 고통의 언덕을 뛰어넘은 듯했고, 더 이상 머뭇거림 없이 직접 사랑의 심장부로 들어간 것 같았다. 열정의 함정과 환상의 잔인한 조롱, 그리고 환멸의 신기루를 극복하고, 인생을 달관한 것 같은 늙은 부부처럼 조용히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사랑은 시간과 장소를 막론하고 사랑이지만, 죽음이 가까워올수록 그 사랑의 농도는 진해진다는 것을 충분히 깨달을 수 있을 정도로 함께 충분한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326쪽

"계속 갑시다. 계속해서 앞으로 갑시다. 다시 라 도라다까지 갑시다."
페르미나 다사는 몸을 떨었다. 왜냐하면 성령의 은총으로 충만한 옛날 목소리를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녀는 선장을 바라보았다. 그는 바로 그들의 운명이었다. 하지만 선장은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플로렌티노 아리사의 엄청난 영감의 힘에 지각을 잃고 어리둥절해졌던 것이다.
선장이 물었다.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그러자 플로렌티노 아리사가 대답했다.
"태어난 이래, 나는 진심으로 하지 않은 말이 단 한마디도 없소."
선장은 페르미나 다사를 쳐다보았고, 그녀의 속눈썹에서 겨울의 서리가 처음으로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그런 다음 플로렌티노 아리사와 그의 꺾을 수 없는 힘, 그리고 용감무쌍한 사랑을 보면서 한계가 없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일지도 모른다는 때늦은 의구심에 압도되었다.
선장이 다시 물었다.
"언제까지 이 빌어먹을 왕복여행을 계속할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플로렌티노 아리사에게는 53년 7개월 11일의 낮과 밤 동안 준비해 온 답이 있었다. 그는 말했다.
"우리 목숨이 다할 때까지."-33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콜레라 시대의 사랑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7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2월
장바구니담기


사람들의 뜨겁고 슬픈 똥에서 나온 부드러운 수증기가 이 도시는 죽은 게 확실하다고 사람의 영혼 속 깊은 곳에서 부추기고 있었다.-35쪽

"아직도 사랑이 아닌 다른 이유로 자살하는 사람이 있다니 유감이군요."-71쪽

사실 그녀에게 있어 그 편지들은 심심풀이용으로, 자기 손은 불에 넣지 않으면서 뜨거운 불길을 유지하려는 것이 목적이었다. 반면에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한 줄 한 줄마다 자신을 불태우고 있었다.-124쪽

일데브란다는 사랑에 대해 우주적인 사고관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한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그것은 전 세계의 모든 사랑에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했다.-226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알 만한 사람들이 잘못 쓰고 있는 우리말 1234가지
권오운 지음 / 문학수첩 / 2000년 7월
평점 :
절판


 

언젠가 헌책방에서 들고 온 책. 현재는 절판이다.

헌책에는 간혹 낯모를 이들간의 추억이 서려 있곤 하는데
그걸 발견하면 왠지 모르게 나는 흥분 모드.

이 책은 2002년 가을쯤, 아마도 모범생이었을 후배가
좋아하는 선배 언니에게 선물했었나 보다.
책을 펼치자마자 보이는 귀여운 글씨체.

유진언니 ♡!
2002.9.
미나.


하트가 엉덩이처럼 통통한 게 아마도 여고생을 생각나게 하는데.
그런데 유진언니는 미나의 선물로 받은 책을 헌책방으로 넘겼구나.
이런 책은 두고두고 가끔 펼쳐봐도 좋을 텐데..
어쨌건, 다시 미나의 눈에 띄지 않고 내가 가져왔으니
미나는 유진언니가 아직도 이 책 갖고 있는 줄만 알겠지요, 뭐.
그건 두 분의 사정이고, 나는 한동안 화장실에 비치해 두고
야금야금 아주 자알~ 읽었다.

잘못 알고 있던 말을 바로잡는 역할도 크지만
더 마음에 들었던 기능은,
잘 몰랐던 예쁜 우리말을 몇 개 뜰채로 건져올린 것.

그 중에서도
'오사바사하다'와 '빨랫말미'는, 언젠가 꼭 써보고 싶은 단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알 만한 사람들이 잘못 쓰고 있는 우리말 1234가지
권오운 지음 / 문학수첩 / 2000년 7월
절판


'오사바사하다'는 '성질이 사근사근하고 부드러우나 요리조리 변하기 쉽다'는 뜻의 형용사로 순수한 우리말이다. 실제로는 '요리조리 변하기 쉽다'는 의미는 빠지고 '성질이 사근사근하고 부드럽다'는 좋은 뜻으로만 쓰이는 듯하다.-25쪽

'장마철에 날이 잠깐 들어서 빨래를 해 널어 말릴 만한 겨를'을 빨랫말미'라 한다.-18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