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는 것이 가슴 아픈 유일한 까닭은 그것이 사랑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15쪽
어느 날 밤, 그는 식민지풍의 고급 식당인 돈 산초 호텔에 들어가서 가장 멀리 떨어진 구석에 앉았다. 간단한 간식을 먹으러 혼자 갈 때면 습관적으로 항상 그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그때 안쪽에 걸린 커다른 거울에서 페르미나 다사를 보았다. 그녀는 남편과 다른 부부 두 쌍과 함께 앉아 있었는데, 그가 그녀의 찬란한 모습을 거울에서 모두 볼 수 있는 각도에 위치해 있었다. 그녀는 편안한 마음으로 우아하게 대화를 주도하고 있었고, 폭죽을 터뜨리듯이 요란한 웃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은 눈물 모양의 거대한 샹들리에 아래서 더욱 빛나고 있었다. 앨리스가 다시 한 번 거울 속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숨을 죽인 채 그녀를 마음껏 바라보았다. 그녀가 먹는 모습, 포도주에 입만 대는 모습, 가문에서 대대로 운영해 온 돈 산초 호텔의 사 대째 주인과 농담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고는 자신의 외로운 식탁에서 그녀와 삶의 한순간을 살았다. 그렇게 그는 그녀와 사랑을 나눌 수 없는 장소에서 눈에 띄지 않게 한 시간 이상을 보냈다. 그런 다음 그녀가 일행과 뒤섞여 나가는 모습을 볼 때까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커피를 -120-121쪽
네 잔이나 더 마셨다. 그들이 너무나 그의 옆 가까이로 지나갔기에 그는 다른 사람들의 향수 냄새 속에서 그녀의 향내를 맡을 수 있었다. 그날 밤 이후 거의 일 년 동안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호텔 주인을 끈질기게 공략하면서 돈이든 부탁이든, 아니면 그가 인생에서 가장 갈망한 것이든 원하는 바를 모두 들어줄 테니 그 거울을 자기에게 팔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이 든 산초 씨는 빈의 어느 가구 기술자가 세공한 이 아름다운 거울 틀이 마리 앙투아네트가 가지고 있다가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다른 틀과 짝을 이루는 둘도 없는 보물이라는 전설을 믿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산초 씨가 그 거울을 주자,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자기 집의 거실에 걸어놓았다. 그것은 멋진 틀 때문이 아니라 사랑하는 여자의 모습을 두 시간 동안이나 담고 있었던 틀 안의 거울 때문이었다.-120-121쪽
그는 당시 모든 사람이 읽고 있던 소설 <펭귄 섬>을 읽는 데 푹 빠져 있었다.-141쪽
두 사람은 마치 부부 생활의 지난한 고통의 언덕을 뛰어넘은 듯했고, 더 이상 머뭇거림 없이 직접 사랑의 심장부로 들어간 것 같았다. 열정의 함정과 환상의 잔인한 조롱, 그리고 환멸의 신기루를 극복하고, 인생을 달관한 것 같은 늙은 부부처럼 조용히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사랑은 시간과 장소를 막론하고 사랑이지만, 죽음이 가까워올수록 그 사랑의 농도는 진해진다는 것을 충분히 깨달을 수 있을 정도로 함께 충분한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326쪽
"계속 갑시다. 계속해서 앞으로 갑시다. 다시 라 도라다까지 갑시다." 페르미나 다사는 몸을 떨었다. 왜냐하면 성령의 은총으로 충만한 옛날 목소리를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녀는 선장을 바라보았다. 그는 바로 그들의 운명이었다. 하지만 선장은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플로렌티노 아리사의 엄청난 영감의 힘에 지각을 잃고 어리둥절해졌던 것이다. 선장이 물었다.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그러자 플로렌티노 아리사가 대답했다. "태어난 이래, 나는 진심으로 하지 않은 말이 단 한마디도 없소." 선장은 페르미나 다사를 쳐다보았고, 그녀의 속눈썹에서 겨울의 서리가 처음으로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그런 다음 플로렌티노 아리사와 그의 꺾을 수 없는 힘, 그리고 용감무쌍한 사랑을 보면서 한계가 없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일지도 모른다는 때늦은 의구심에 압도되었다. 선장이 다시 물었다. "언제까지 이 빌어먹을 왕복여행을 계속할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플로렌티노 아리사에게는 53년 7개월 11일의 낮과 밤 동안 준비해 온 답이 있었다. 그는 말했다. "우리 목숨이 다할 때까지."-3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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