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등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1년 5월
구판절판


사람들은.
불현듯 그의 메마른 목소리가 그때 들렸다.
......언제나 내 줄을 끊어버리곤 한다.-8쪽

바로 여기야, 라고 말하며 그는 어깨 한쪽을 가리켰다. 여기가 다 젖었었어. 참, 이상하더라. 혜주의 눈물로 젖은 어깨가 있지, 며칠이 지나도 마르지를 않는 거야. 주술적인 데가 있다니까, 그애 눈물은. 여기 좀 봐, 눈물 자국이 지금도 뵈잖아?-124쪽

사랑만으로 행복해지는 세상은 전설 속에 있을 뿐이었다.-188쪽

딴 때에도 그는 그랬어. 내게 분노한 적이 없었고, 말 한마디 거칠게 하지 않았어. 그는 그런 사람이야. 한번은 왜 내게 화를 내지 않느냐고 직접 물어본 일도 있었는데, 그는 말하기를, 사랑이 앞서 나가기 때문에 화낼 겨를조차 없다고......내게 그렇게 말했어.-212쪽

앞으로 평생 다시 못 만날지도 모르는데, 그들은 배당된 면회 시간의 반을 이미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것은 남은 인생의 반을 흘려보낸 것과 마찬가지였다.-227쪽

널 사랑해.
그가 숨가쁘게 화살을 쏘았다.
짧고도 폭죽이 터지는 것처럼 잔인한 키스였다. 혀의 안쪽을 마치 면도날로 도려내는 것 같았다. 그의 이마에서 땀이 흘렀고 그녀의 손바닥에서도 땀이 흘렀다......영원히, 라고. 입술이 서로 떨어졌을 때, 그가 말의 아퀴를 지었다. 널 사랑해, 영원히......하고. 그녀는 무슨 일이 어떻게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는지조차 자각할 수 없었다. 그의 손이 귓불로 왔고, 그녀의 한쪽 귀고리를 잡아당겨 자신의 입속에 집어넣었다. 너는 이 귀고리에 들어 있어, 어디로 가든. 그가 그 말을 했던가. 그리고 또 그는, 잠시 초조하게 두리번거리더니, 곧 상의에 붙은 죄수번호 패찰을 우드득 뜯어 그녀에게 주었다. 이것밖엔 줄 게 없어. 마지막 말은 말하지 않은 침묵의 말이었다. -227쪽

그가 그랬어. 영우가 죽었는데......무엇으로......우리가 함께 묶여 있을 수 있겠느냐고.-3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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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 산 -하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8
토마스 만 지음, 홍경호 옮김 / 범우사 / 199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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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어떤 책을 읽다 보면, 누군가 내 심장을 갈고리로 휙 채가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방심하고 있다 당하는 일이기에 그 충격은 엄청나다.
마의 산 하권 525쪽을 읽었을 때가 바로 그 순간. 앗.

처음엔, 산에 올라갔다가 7년을 그 산에 있게 된 남자의 이야기라고 해서, 엥, 조난 이야기인가 싶었다.
뭐야 난 재난영화도 그다지 안 좋아하는데 이걸 읽어 말어 한동안 고민.
아, 또 이런 무지의 소산.
알고 보니 요양소에 머물고 있는 친척을 문안차 갔다가 덩달아 요양을 하게 된 한스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요즘 초절정 가난뱅이인 나는,
돈 안 벌고 공기 좋은 곳에서 7년 동안 요양해도 먹고 살 걱정 없는 그가 왠지 살짝 부럽더라.
이건 왠 삼천포냐.

어쨌든 진득하게 읽어볼 만한 작품이다.
마흔 살에 한 번 더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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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 산 -하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8
토마스 만 지음, 홍경호 옮김 / 범우사 / 199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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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프타는, 세템브리니가 일장 훈계를 늘어놓기 전에 중세에 유행했던 종교에 입각한 극단적인 사랑의 행위, 즉 병자를 간호할 때의 광신적인 도취 상태의 놀라운 예를 얘기해 주었다. 공주들이 나병 환자의 악취나는 상처에 입맞추며 나병에 감염되너 생긴 상처를 '장미'라 부르고, 또 고름 씻은 물을 마시면서 이렇게 맛있는 것은 마셔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는 이야기였다.-152쪽

사랑이란 아무리 경건하더라도 육체와 결부되지 않는 것이 없으며, 아무리 육욕적이며 관능적인 사랑이라 하더라도 경건함이 결여되는 일은 없다. -363쪽

"...육욕이란 특정한 대상 없이 전전하며 옮겨가기도 하지요. 그래서 일반적으로 육욕은 동물적이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육욕이 하나의 얼굴을 지닌 한 인간에게 향해지면, 그것은 사랑이 되는 것이지요. 나는 그녀의 몸이나 그녀의 살만을 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그녀의 얼굴 어느 한 부분에라도, 지극히 미미한 변화만이라도 생긴다면 나는 아마 그녀의 육체는 어느 한 부분도 전혀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으로 알 수 있듯이 나는 그녀의 영혼을 사랑하고 있음을 확신합니다. 얼굴을 사랑한다는 것은 영혼을 사랑하는 일이니까......" -391쪽

"당신은 하늘을 향해 쏘았습니다." 나프타는 권총을 내리고 분노를 억누르며 말했다.
"내가 쏘고 싶은 대로 쏘았을 뿐이오." 세템브리니가 응수했다.
"다시 쏘시오."
"그럴 생각은 없소. 이번에는 당신이 쏠 차례요."
세템브리니는 그렇게 말하고 얼굴을 하늘로 향하고는 나프타와 정면으로 서지 않고 비스듬하게 섰다. 참으로 감동적인 자세였다. 결투에 있어서는 상대방에게 가슴 정면을 드러내 놓지 않는 게 예의라는 말을 들어 알고 있었으므로 그런 자세를 취했으리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이 비겁자!" 나프타가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그 외침은 쏘는 자가 총알을 맞는 쪽보다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그는 결투와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권총을 위로 들어 자신의 머리에 쏘고 말았다.-5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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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 산 -상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8
토마스 만 지음, 홍경호 옮김 / 범우사 / 199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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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둔감한 사람들에게 살며시 스며들었다. 원래 시간 자체에 구획된 선이 있을 리 없고, 새로운 달이나 새로운 해가 천둥소리나 나팔 소리로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세기가 시작될 때 종을 울리거나 총을 쏘는 것은 인간뿐이다.-3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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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명화 비밀 - 개정판 생각나무 ART 1
모니카 봄 두첸 지음, 김현우 옮김 / 생각의나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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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또다시, 알고 욕하는 것과 모르고 욕하는 것의 경계에서 고민 중이다.
모르고 욕하는 사람들이 너무 싫기 때문인데,  그렇다면 나는 잘 아느냐 하면 또 그것도 아니라서 화가 나고.
  

같은 맥락인지는 모르겠지만,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과의 차이도 꽤나 크지 싶다.
뉴욕에서 현대미술관 MOMA를 갔을 때, 층계참에 걸린 앙리 마티스의  '댄스'를 보고도 그게 뭔지 몰랐던 바보인 나.

그 날 저녁 집에 돌아와서 책상에 놓인 '인생의 굴레에서'의 표지그림을 보고서야 아차! 그 그림! 하며 못내 아쉬워했었다.
진작 알았더라면 요모조모 더 뜯어봤을 텐데...
바보인 나는, 별로 중요한 작품이 아니니 전시실 안에 박혀 있지도 못하고
층계참에나 걸린 게로군 쯧쯧 하며 지나치지 않았던가.
제대로 촛점도 잡히지 않은 사진 한 장이, 그래서 남은 기억의 전부다. 으흑.

다음에 미술관을 갈 일이 생긴다면,  특히나 이 책에 나온 그림이 전시된 미술관에 갈 일이 생긴다면
다시 한 번 필독하고 가야겠다.
특히나 마네의 올랭피아가 꽤나 마음에 들었으니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 꼭 가봐야겠다!!!!
그리고 그 전에,  <올랭피아>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다는 에밀 졸라의 <나나>를 읽어야지.

돈도 없는데 이래저래 파리에 가고 싶어서 엉덩이가 근질근질하다.
파리 국립도서관에 가서 카뮈의 페스트 친필원고도 봐야 하는데...
돈 언제 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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