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절판


......무엇보다도 사람의 감정은 어째서, 뜨거운 물에 닿은 소금처럼 녹아 사라질 수 없는 걸까. 때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참치 통조림만도 못한 주제에.
그러다 문득 소금이란 다만 녹을 뿐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다. 어떤 강제와 분리가 없다면 언제고 언제까지고 그 안에서.-1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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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
사무엘 베케트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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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졸업논문 작품이기도 했던 <고도를 기다리며>.
솔직히 고백하건대, 딱히 부조리극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단지, 그나마 영어로 읽기 제일 쉬웠던 게 이 작품이었기 때문....
대부분 단문인데다 반복되는 문장도 많으니 의미 파악은 둘째 치고 그저 '읽어내기'에 급급했던 부끄러운 그 때 그 시절.
그러니 제대로 의미 파악을 하며 읽은 건 이번이 인생 처음인지도 몰라요.

우리말로 다시 읽은 <고도를 기다리며>에는 의외로 가슴 찡한 구절이 많다.
그 중 백미는, 이 세상 눈물의 양엔 변함이 없다는 포조의 말.
누군가 눈물을 흘리면 누군가는 눈물을 거둔다고 한다. 아, 정말 그럴지도.
내가 늘상 주창하는 '질량보존의 법칙'과도 왠지 일맥상통하는 것 같은 느낌.
(나의 질량보존의 법칙은 이 세상 사람들의 몸무게의 합은 변함이 없다는 것. 내가 살찌면 누군가는 살이 빠질 테니 나는 좀 더 쪄도 괜찮다.)

얼굴에 모닥불 묻은 심정으로 다시 한 번 고백하자면, 이 작품으로 영어 연극도 했었다.
그런데 내 배역이 뭐였는지도 기억 안 나네.
아마도 그 때의 성격으로 본다면 포악한 역할이었을 텐데, 그렇다면 '포조'?
정말 제대로 된 포조를 보기 위해 산울림 소극장에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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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
사무엘 베케트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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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 이젠 어떡하지?
에스트라공 : 기다리는 거지.
블라디미르 : 그야 그렇지만 기다리는 동안 뭘 하느냐고?
에스트라공 : 목이나 매고 말까?
블라디미르 : 그러면 그게 일어서겠지.
에스트라공 : (호기심이 생겨) 그게 일어선다고?
블라디미르 : 그래 그러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거기서 떨어진 물에서 만드라고르 풀이 자라난다더라. 그래서 그걸 뽑으면 삑 하는 소리가 나는 거야. 너 그건 몰랐지?
에스트라공 : 그렇다면 당장에 목을 매자.-23쪽

포조 : 이 세상의 눈물의 양엔 변함이 없지. 어디선가 누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면 한쪽에선 눈물을 거두는 사람이 있으니 말이오. 웃음도 마찬가지요.-51쪽

포조 : (버럭 화를 내며) 그놈의 시간 얘기를 자꾸 꺼내서 사람을 괴롭히지 좀 말아요! 말끝마다 언제 언제 하고 물어대다니! 당신, 정신 나간 사람 아니야? 그냥 어느 날이라고만 하면 됐지. 여느 날과 같은 어느 날 저놈은 벙어리가 되고 난 장님이 된 거요. 그리고 어느 날엔가는 우리는 귀머거리가 될 테고.
어느 날 우리는 태어났고, 어느 날 우리는 죽을 거요.
어느 같은 날 같은 순간에 말이오.
그만하면 된 것 아니냔 말이오? (더욱 침착해지며)
여자들은 무덤 위에 걸터앉아 아이를 낳는 거지.
해가 잠깐 비추다간 곧 다시 밤이 오는 거요.
-1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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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보객 책속을 거닐다 - 장석주의 느린 책읽기
장석주 지음 / 예담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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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한테 된통 차였을 때,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맞아서 방구석에 쭈그러져 있을 때 읽으면 아주 좋겠다.
기본적으로 '책'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게 묘하게도 위로가 되는 부분이 많다.
역시나 책은 인생 다방면의 스승. 

이 책의 꼬리를 이어서 읽고 싶은 책들도 많다.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라"는 구절이 있다는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은 사놓고선 아직 읽지 못했다.
도대체 그 책 어디에 저런 발칙한 문장이 있는지 꼭 찾아내야 하는데, 왠지 안절부절.
어떤 작품이든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는 작가들도 나열해 놨는데
그 중 아니 에르노, 장 필립 뚜쌩의 책을 읽어보기는커녕 이름도 처음 들어본다. 이건 왠지 분해.
시집은 취향이 아니지만, 장석남의 시집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는 꼭 한 번 봐야 할 것 같고,
과연 파리에서는 그 옛날 거북이를 데리고 아케이드를 산책하는 게 유행이었는지 살펴보기 위해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1,2>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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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보객 책속을 거닐다 - 장석주의 느린 책읽기
장석주 지음 / 예담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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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라"는 제목은 앙드레 지드의 저 불멸의 책, <지상의 양식>의 한 구절에서 빌려온 것이다.-28쪽

폴 오스터, 아니 에르노, 알랭 드 보통, 장 필립 뚜쌩,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들은 믿을 만하다. 어떤 작품이든지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32쪽

인생에서 실패의 흔적을 갖지 않은 사람은 청춘을 제대로 산 사람이 아니다. 절망감으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자신이 대세순응주의자가 아닌가를 의심해봐야 한다.-77쪽

엉겁결에 외톨박이의 운명을 떠안은 노총각, 은둔자, 외톨박이들은 쓸쓸한 저녁이면 <커피프린스 1호점> 같은 티브이 드라마에 눈길을 고정한 채 기름에 튀긴 닭고기를 뜯으며 차가운 맥주나 들이키는 거다. 맥주가 식도를 넘어갈 때 진저리를 치는 것은 맥주가 차기 때문이 아니라 뼈가 녹는 듯 처절한 외로움 때문에 치를 떠는 거다.-82쪽

외로움이 찾아올 때 너무 두려워 마라. 외로움은 이러저러한 관계에서 쌓인 피로를 푸는 휴식, 감정의 찌꺼기들을 씻어내는 정화소가 될 수도 있을 테니까. 어느 쪽을 선택할까? 외로움에 뺨 맞고 방구석에 처박혀 시무룩해 있을 건가, 아니면 외로움을 준마처럼 몰고 저 사유의 벌판을 달려볼까?-84쪽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누군가를 잘 알아서가 아니라 모르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진 자는 모호함이 불러일으킨 환각에 포획된다. 사랑이 종종 불가해한 종교적 열정으로 치닫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남녀 간의 사랑은 이해도 포용도 아니다. 그것은 대상-사랑하는 사람의 관심과 열정, 더 나아가 그의 마음과 몸까지-의 포식이고, 그 포식으로 제 존재를 살찌우려는 섭생의 한 방식이다.-85쪽

"구스타브 해스퍼드는 전세계 도서관에서 책을 훔쳐다가 캘리포니아의 창고에 숨긴 죄목으로, 감옥에 갇혀 그 안에서 생을 마감했다. 스티븐 블럼버그라는 수집가는 수년 동안 미국 도서관에 있는 책을 몰래 훔쳐, 라벨과 표지에 붙은 접착제가 떨어질 때까지 침으로 핥아댔다. 이 엽기적인 방법은 책으로 보여주는 시체 애호가의 황홀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사냥꾼은 곧 책중독자이며, 중독의 황홀경에 빠진 사람들이다.-180쪽

태양에 바래지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236쪽

<독서광 일반병리학>에 따르자면 대개의 독서광들은 일상생활에서 청각 장애나 후각 장애와 같이 경미한 마비 증세를 겪으며 경부 관절통을 앓는다.-260쪽

세월은 문짝을 싫어해서 폐가에서 제일 먼저 문짝을 떼 가고...-300쪽

"살구나무에 잎이 다 졌으니 그 잎에 소리 내어 울던 빗발들 어쩌나 그래서 눈이 되어 오나?"
<장석남의 시, 겨울날>-305쪽

<도덕경>의 17장은 무리를 이끄는 지도자의 품격에 대해 말한다. 그 뜻을 풀면 다음과 같다. "최고의 지도자는 백성들이 그가 있다는 것만을 알 뿐이어야 하고, 그 다음 두 번째의 지도자는 백성과 그가 가깝고 사랑하여 그를 자랑하는 것이며, 그 다음 세 번째 지도자는 백성들이 그를 두려워하는 것이며, 그 다음 네 번째 최하의 지도자는 백성이 그를 업신여기는 것이다.-350쪽

"1840년경에는 거북을 데리고 아케이드를 산책하는 것이 고상한 일이었다."-3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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