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보객 책속을 거닐다 - 장석주의 느린 책읽기
장석주 지음 / 예담 / 2007년 12월
품절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라"는 제목은 앙드레 지드의 저 불멸의 책, <지상의 양식>의 한 구절에서 빌려온 것이다.-28쪽

폴 오스터, 아니 에르노, 알랭 드 보통, 장 필립 뚜쌩,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들은 믿을 만하다. 어떤 작품이든지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32쪽

인생에서 실패의 흔적을 갖지 않은 사람은 청춘을 제대로 산 사람이 아니다. 절망감으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자신이 대세순응주의자가 아닌가를 의심해봐야 한다.-77쪽

엉겁결에 외톨박이의 운명을 떠안은 노총각, 은둔자, 외톨박이들은 쓸쓸한 저녁이면 <커피프린스 1호점> 같은 티브이 드라마에 눈길을 고정한 채 기름에 튀긴 닭고기를 뜯으며 차가운 맥주나 들이키는 거다. 맥주가 식도를 넘어갈 때 진저리를 치는 것은 맥주가 차기 때문이 아니라 뼈가 녹는 듯 처절한 외로움 때문에 치를 떠는 거다.-82쪽

외로움이 찾아올 때 너무 두려워 마라. 외로움은 이러저러한 관계에서 쌓인 피로를 푸는 휴식, 감정의 찌꺼기들을 씻어내는 정화소가 될 수도 있을 테니까. 어느 쪽을 선택할까? 외로움에 뺨 맞고 방구석에 처박혀 시무룩해 있을 건가, 아니면 외로움을 준마처럼 몰고 저 사유의 벌판을 달려볼까?-84쪽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누군가를 잘 알아서가 아니라 모르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진 자는 모호함이 불러일으킨 환각에 포획된다. 사랑이 종종 불가해한 종교적 열정으로 치닫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남녀 간의 사랑은 이해도 포용도 아니다. 그것은 대상-사랑하는 사람의 관심과 열정, 더 나아가 그의 마음과 몸까지-의 포식이고, 그 포식으로 제 존재를 살찌우려는 섭생의 한 방식이다.-85쪽

"구스타브 해스퍼드는 전세계 도서관에서 책을 훔쳐다가 캘리포니아의 창고에 숨긴 죄목으로, 감옥에 갇혀 그 안에서 생을 마감했다. 스티븐 블럼버그라는 수집가는 수년 동안 미국 도서관에 있는 책을 몰래 훔쳐, 라벨과 표지에 붙은 접착제가 떨어질 때까지 침으로 핥아댔다. 이 엽기적인 방법은 책으로 보여주는 시체 애호가의 황홀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사냥꾼은 곧 책중독자이며, 중독의 황홀경에 빠진 사람들이다.-180쪽

태양에 바래지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236쪽

<독서광 일반병리학>에 따르자면 대개의 독서광들은 일상생활에서 청각 장애나 후각 장애와 같이 경미한 마비 증세를 겪으며 경부 관절통을 앓는다.-260쪽

세월은 문짝을 싫어해서 폐가에서 제일 먼저 문짝을 떼 가고...-300쪽

"살구나무에 잎이 다 졌으니 그 잎에 소리 내어 울던 빗발들 어쩌나 그래서 눈이 되어 오나?"
<장석남의 시, 겨울날>-305쪽

<도덕경>의 17장은 무리를 이끄는 지도자의 품격에 대해 말한다. 그 뜻을 풀면 다음과 같다. "최고의 지도자는 백성들이 그가 있다는 것만을 알 뿐이어야 하고, 그 다음 두 번째의 지도자는 백성과 그가 가깝고 사랑하여 그를 자랑하는 것이며, 그 다음 세 번째 지도자는 백성들이 그를 두려워하는 것이며, 그 다음 네 번째 최하의 지도자는 백성이 그를 업신여기는 것이다.-350쪽

"1840년경에는 거북을 데리고 아케이드를 산책하는 것이 고상한 일이었다."-3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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