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이 든 상자를 보관하는 뒷자리로 가서, 보지도 않고 아무것이나 손에 잡히는 대로 뽑아 들었다. 이 상자에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책이 삼사십 권 가량 들어 있었다. 모두 백번이라도 다시 읽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읽을 때마다 더 좋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것을 뽑아 드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손님)-90쪽
말을 타는 여자가 계속 말 위에 앉아 있다 보면 밭장다리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열이 강한 여자는 계속 남자를 안기 때문에 어깨가 묘하게 둥글둥글해지는 법이다. 일종의 직업적 기형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물론 그런 기형 가운데는 가장 고귀한 것이다. (손님)-112쪽
우리의 주인공은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단 5분 동안도 깊이 잠들 수 없었다. 마치 어떤 장난꾸러기가 나뭇가지를 침대에 흩뜨려 놓은 것 같았다.-159쪽
그러면서 그녀는 내 눈두덩을 혀로 핥았습니다. 그것은 눈을 감으라는 우리 둘만의 약속된 신호입니다. 오래된 연인들은 자기들만 아는 몸과 마음의 암호를 갖고 있기 마련입니다.-89쪽
타락에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별다른 이유가 없다. 첫눈에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일이 가능하듯 멀쩡히 자기 삶을 영위하던 사람이 돌연 타락해버리는 일도 가능하다.-184쪽
난 이제 깨달았네, 루카스, 모든 인간의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걸, 그 외엔 아무 것도 없다는 걸. 독창적인 책이건, 보잘것없는 책이건, 그야 무슨 상관이 있나. 하지만 아무것도 쓰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잊혀질 걸세. 그런 사람은 이 세상을 흔적도 없이 스쳐지나갈 뿐이네.-13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