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가게 재습격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창해 / 2004년 10월
구판절판


"이상하지 않아. 연습을 한다면 먼저 백포도주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 거야. 큰 글라스에 백포도주와 얼음을 넣고, 거기다 페리에를 섞어서 레몬을 짜 넣으면 아주 좋지. 난 주스 대신으로 마시지만."-101쪽

그녀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을 때, 나는 부엌에서 스파게티 면을 삶고 있던 참이었다. 면이 완전히 삶아지기 직전, 나는 FM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로시니의 <도둑 까치> 서곡을 휘파람으로 따라 부르고 있었다. 스파게티 면을 삶는 데 딱 어울리는 음악이었다. -165쪽

이웃집의 나무에서 마치 태엽이라도 감는 듯 끼이이익거리는 새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우리는 그 새를 '태엽 감는 새'라고 부르고 있다. 아내가 그런 이름을 붙였다. 진짜 이름은 모른다.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과 관계 없이 '태엽 감는 새'는 매일 이웃집의 나무에 날아와 우리가 속한 조용한 세계의 태엽을 감았다.-1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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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역사
니콜 크라우스 지음, 한은경 옮김 / 민음사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내 인생에서, 샬럿과 다비드의 <사랑의 역사>만큼이나 끈끈한 책이 있다면,

그건 이외수의 <산목>과 김훈의 <개>다.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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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역사
니콜 크라우스 지음, 한은경 옮김 / 민음사 / 2006년 8월
구판절판


아무리 바보라도 창문 앞에 있으면 스피노자 같은 철학자가 되는 법이다.-12쪽

내 책. 누가 내 책을 발견할까? 나의 다른 물건들과 함께 버릴까? 나 자신만을 위해 쓴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실은 누가 읽어주었으면 했는데.-30쪽

사해는 지구 위에서 가장 낮은 땅이다.-57쪽

"두 달이 지난 후, 사랑이 시작될 때 찾아오는 그 고원한 순간을 깨트리면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열린 창문을 넘어 슬며시 들어온 슬픔의 첫 순간에, 리트비노프가 <사랑의 역사>의 첫 페이지를 읽어주었다."-96쪽

예컨대 손을 잡는 것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느낌을 함께 기억하는 방식이다.-104쪽

"손을 잡아야 할까?"
"안 돼."
"그건 왜?"
"그러면 사람들이 알 테니까."
"뭘 아는데?"
"우리에 대해."
"사람들이 알면 뭐가 어때서?"
"비밀인 게 더 좋아."
"왜?"
"그래야 아무도 우리에게서 그걸 가져갈 수 없으니까."-130쪽

"나의 알마, 샬럿에게. 내가 당신을 위해 책을 쓴다면 바로 이런 책을 썼을 거야. 사랑해. 다비드."-153쪽

한때 한 가닥 줄을 이용해서 단어들을 인도하던 때도 있었다. 그러지 않으면 그 단어들은 목적지를 향해 가다 말고 비틀거릴 것이다. 수줍어하는 사람들은 주머니에 작은 줄 뭉치를 넣고 다녔다. 큰 소리로 지껄여대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그런 줄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남들이 자기 말을 귓결에 듣는 데 익숙한 사람들도 타인에게 어떻게 자기를 이해시켜야 할지 모를 때가 있기 때문이다. 줄을 사용하는 두 사람 간의 물리적인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다. 거리가 좁을수록 줄이 더욱 필요하기도 했다.
줄으 끄트머리에 컵을 붙이는 관행은 훨씬 뒤에 통용되었다. 이것은 귀에 조가비를 갖다 대고 이 세상의 최초의 표현 가운데 아직도 남아 있는 메아리를 들어보겠다는 누를 수 없는 욕망과 관련이 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또 말한다. 미국으로 떠난 한 소녀가 대양을 가로질러 풀어놓은 줄의 끄트머리를 움켜쥔 한 남자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이 세계가 커지고, 말하고 싶어 하는 것들을 사라지지 않게 해줄 정도의 줄이 부족해지자 전화가 발명되었다.
어떤 줄로도 말해야 할 것을 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런 경우에 어떤 모양의 줄이라도 한 사람을 침묵하게 만든다.-156쪽

방 안에서 침묵이 모이는 곳도 발견했다. 커튼 주름이 접힌 곳, 움푹 파인 은식기.-161쪽

그날 밤은 위대한 음악가 아서 루빈스타인이 연주할 예정이었다. 무대에는 피아노만 하나 덜렁 있었다. 검게 빛나는 스타인웨이 그랜드피아노였다. 커튼 뒤에서 앞으로 나가 보니 비상구 불빛 아래로 좌석들만 끝없이 보였다. 의자에 앉아 발끝으로 페달을 밟았지만 감히 손가락 하나도 건반에 올려놓지 못했다.-185쪽

"난 러시아어를 배울 수 있겠네."
미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가르쳐줄게. 첫 단어난 다이(Dai)야."
"다이?"
"두 번째 단어는 루쿠(Ruku)."
"무슨 뜻인데?"
"먼저 말해봐."
"루쿠."
"다이 루쿠."
"다이 루쿠, 이게 무슨 뜻이야?"
미샤가 내 손을 잡았다.

("손을 잡아줘."라는 뜻인데 프러포즈의 의미가 담겨 있다.)-197쪽

해가 질 때 브루클린 퀸스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수천 개의 묘석과 조명으로 반짝이는 지평선이 보인다. 그때 하늘은 주황색으로 빛나고, 이 도시의 전기가 땅속에 묻힌 사람들로부터 생성된다는 기이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2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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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 시인선 80
기형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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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의  시를 읽으려면 조용히 취해 있어야겠다. 그처럼 가난하지 못했고, 그처럼 일찍 죽지 못했고, 그처럼 슬프지 못했으니, 그 간극을 벌충하려면 어쩔 수 없다, 조용히 취하는 수밖에. 

그리고, 참 많이 고맙습니다. 덕분에 수렁에서 조금이나마 헤어나왔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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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 시인선 80
기형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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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의 고백을 들어주었으면 좋으련만
그가 누구든 엄청난 추억을 나는 지불하리라

<가수는 입을 다무네> 中
-54쪽

푸른 간유리 같은 대기 속에서 지친 별들 서둘러 제 빛을 끌어모으고 고단한 달도 야윈 낫의 형상으로 공중 빈 밭에 힘없이 걸려 있다.

<이 겨울의 어두운 창문> 中-68쪽

나 그 술집 잊으려네
기억이 오면 도망치려네
사내들은 있는 힘 다해 취했네
나의 눈빛 지푸라기처럼 쏟아졌네

<그집 앞> 中-78쪽

<빈 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는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81쪽

그는 우리에게 자신의 손을 가리켜 神의 공장이라고 말했다. 그것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굶주림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항상 무엇엔가 굶주려 있었다.

<집시의 시집> 中-90쪽

나는 즐거운 노동자, 항상 조용히 취해 있네
술집에서 나를 만나려거든 신성하 저녁에 오게
가장 더러운 옷을 입은 사내를 찾아주오

<집시의 시집> 中-91쪽

외상값처럼 밀려드는 대낮

<봄날은 간다> 中-1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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