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바보라도 창문 앞에 있으면 스피노자 같은 철학자가 되는 법이다.-12쪽
내 책. 누가 내 책을 발견할까? 나의 다른 물건들과 함께 버릴까? 나 자신만을 위해 쓴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실은 누가 읽어주었으면 했는데.-30쪽
사해는 지구 위에서 가장 낮은 땅이다.-57쪽
"두 달이 지난 후, 사랑이 시작될 때 찾아오는 그 고원한 순간을 깨트리면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열린 창문을 넘어 슬며시 들어온 슬픔의 첫 순간에, 리트비노프가 <사랑의 역사>의 첫 페이지를 읽어주었다."-96쪽
예컨대 손을 잡는 것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느낌을 함께 기억하는 방식이다.-104쪽
"손을 잡아야 할까?" "안 돼." "그건 왜?" "그러면 사람들이 알 테니까." "뭘 아는데?" "우리에 대해." "사람들이 알면 뭐가 어때서?" "비밀인 게 더 좋아." "왜?" "그래야 아무도 우리에게서 그걸 가져갈 수 없으니까."-130쪽
"나의 알마, 샬럿에게. 내가 당신을 위해 책을 쓴다면 바로 이런 책을 썼을 거야. 사랑해. 다비드."-153쪽
한때 한 가닥 줄을 이용해서 단어들을 인도하던 때도 있었다. 그러지 않으면 그 단어들은 목적지를 향해 가다 말고 비틀거릴 것이다. 수줍어하는 사람들은 주머니에 작은 줄 뭉치를 넣고 다녔다. 큰 소리로 지껄여대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그런 줄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남들이 자기 말을 귓결에 듣는 데 익숙한 사람들도 타인에게 어떻게 자기를 이해시켜야 할지 모를 때가 있기 때문이다. 줄을 사용하는 두 사람 간의 물리적인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다. 거리가 좁을수록 줄이 더욱 필요하기도 했다. 줄으 끄트머리에 컵을 붙이는 관행은 훨씬 뒤에 통용되었다. 이것은 귀에 조가비를 갖다 대고 이 세상의 최초의 표현 가운데 아직도 남아 있는 메아리를 들어보겠다는 누를 수 없는 욕망과 관련이 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또 말한다. 미국으로 떠난 한 소녀가 대양을 가로질러 풀어놓은 줄의 끄트머리를 움켜쥔 한 남자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이 세계가 커지고, 말하고 싶어 하는 것들을 사라지지 않게 해줄 정도의 줄이 부족해지자 전화가 발명되었다. 어떤 줄로도 말해야 할 것을 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런 경우에 어떤 모양의 줄이라도 한 사람을 침묵하게 만든다.-156쪽
방 안에서 침묵이 모이는 곳도 발견했다. 커튼 주름이 접힌 곳, 움푹 파인 은식기.-161쪽
그날 밤은 위대한 음악가 아서 루빈스타인이 연주할 예정이었다. 무대에는 피아노만 하나 덜렁 있었다. 검게 빛나는 스타인웨이 그랜드피아노였다. 커튼 뒤에서 앞으로 나가 보니 비상구 불빛 아래로 좌석들만 끝없이 보였다. 의자에 앉아 발끝으로 페달을 밟았지만 감히 손가락 하나도 건반에 올려놓지 못했다.-185쪽
"난 러시아어를 배울 수 있겠네." 미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가르쳐줄게. 첫 단어난 다이(Dai)야." "다이?" "두 번째 단어는 루쿠(Ruku)." "무슨 뜻인데?" "먼저 말해봐." "루쿠." "다이 루쿠." "다이 루쿠, 이게 무슨 뜻이야?" 미샤가 내 손을 잡았다.
("손을 잡아줘."라는 뜻인데 프러포즈의 의미가 담겨 있다.)-197쪽
해가 질 때 브루클린 퀸스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수천 개의 묘석과 조명으로 반짝이는 지평선이 보인다. 그때 하늘은 주황색으로 빛나고, 이 도시의 전기가 땅속에 묻힌 사람들로부터 생성된다는 기이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2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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