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문장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책날개를 펼쳐든 후 본 김연수의 얼굴은, 솔직히 말하자면 '샌님' 이었다. 하지만 그 얼굴을 만나기 전, 글로 그를 먼저 만나니 그는 샌님이 아니라 '시인'이더라. 이 책 속 문장들엔 그의 청춘이 오롯이 들어있지만, 유년의 문장들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그의 성장기가 함축돼 있다. 본래, 좋은 글이 나오려면 깡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거나, 운동권으로 한시절을 풍미하거나, 편모나 편부 슬하에서 조부모 구박을 받으며 콩쥐 같은 사춘기를 보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리 반듯하게, 모나지 않게 살아온 김연수에게서 나온 문장은, 그 나름대로의 맛이 있다.

20대를 보내버린 나에겐 어떤 청춘의 문장이 남아있을지. 책을 덮은 후에도 한참을 더 생각하게 만든다. 오랫동안 책장 앞을 서성거리며 이 책 저 책을 들었다 놨다 한다. 고마운 마음에 그의 다른 책들도 읽어볼 마음을 갖는다.

 

김연수에게 추천받은 책 몇 가지. 아무래도 한동안 헌책방을 들락거릴 듯하다.

-. 다자이 오사무의 딸 쓰시마 유코가 쓴 짧은 소설 <꿈의 노래>

-. '세상은 사흘 / 보지 못한 동안에 / 벚꽃이라네' ... <일본인의 시정 - 하이쿠편>

-. 김연수가 소설에 대한 견해를 공부했다는, 이안 와트의 <소설의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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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문장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구판절판


집이 있어 아이들은 떠날 수 있고 어미새가 있어 어린 새들은 날갯짓을 배운다. 내가 바다를 건너는 수고를 한 번이라도 했다면 그건 아버지가 이미 바다를 건너왔기 때문이다.-31쪽

통영, 섬진강, 해남 등 지도에 실린 그 이름들은 저마다 다르지만, 그 무렵이면 그곳의 이름은 같아진다. 봄나라.-34쪽

그나마 삶이 마음에 드는 것은, 첫째 모든 것은 어쨌든 지나간다는 것, 둘째 한 번 지나가면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것.-34쪽

<일본인의 시정-하이쿠편>

'세상은 사흘 / 보지 못한 동안에 / 벚꽃이라네'-35쪽

키친 테이블 노블이라는 게 있다면, 세상의 모든 키친 테이블 노블은 애잔하기 그지없다. 어떤 경우에도 그 소설은 전적으로 자신을 위해 씌어지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스탠드를 밝히고 노트를 꺼내 뭔가를 한없이 긁적여 나간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직장에서 돌아와 뭔가를 한없이 긁적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지만 긁적이는 동안, 자기 자신이 치유받는다. 그들의 작품에 열광한 수많은 독자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키친 테이블 노블이 실제로 하는 일은 그 글을 쓰는 사람을 치유하는 일이다.-60쪽

나는 밤을 사랑한다. 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진 검은 얼굴을 지녔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그 눈들은 저마다 빛을 낸다. 그 빛 속 하나하나에 그대들이 있다. 외로운 그대들, 저마다 멀리 떨어진 불빛처럼 멀리서 흔들린다. 문득 바람이 그대 창으로 부는가, 그런 걱정이 든다. 하지만 그건 멀리 있기 때문에 흔들리는 빛이다. 한때 우리는 너무나 가까웠으나, 그리하여 조금의 흔들림도 상상할 수 없었지만......-93쪽

당나라 시인 왕창련의 <부용루에서 신점을 보내다> 中

'낙양의 친구들이 안부를 물어보면
한 조각 얼음 같은 마음 옥병에 간직했다고 하게.'-97쪽

승객이 거의 없는 밤의 시외버스고 대관령을 넘어가고 있어 귀가 멍멍하고, 진부하기 짝이 없으나마 그 나이로서는 너무나 설득력이 넘치는 연애담을 들은 직후라면, 그 누가 부르든 김광석의 노래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내가 아는 한, 김광석이 부른 노래란 그런 노래다. 그의 노래에는 청춘의 결정적 순간에만 맛볼 수 있는 설득력이 있다.-135쪽

그러니까, 사랑이 막 끝났을 즈음이었다. 한 사람을 향해서만 쏟아지던 감정이 갈 곳을 잃고 마음속에서 넘쳐나고 있었다. 채 처리하지 못한 감정이 넘쳐나게 되자, 자연스레 육체적인 활동은 정지됐다. 밥을 먹기 위해 숟가락을 드는 일도, 혹은 학교에 나가 수업을 듣는 일도 육체적으로 너무나 힘들어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나는 하루종일 방안에 처박혀 꼼짝도 하지 않았다.-136쪽

새 양말 한짝도 살 수 없는 처지라니!-143쪽

삶이 입 속의 혀 같은 것이라면 내 마음대로 이리저리 돌려도 보고 힘들긴 해도 뒤집어보기도 할 텐데, 세상일이 그렇지는 않더라.-153쪽

다음날, 늦도록 잠을 자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먼저 깨어나 내 책을 뒤적이던 사내가 나보다 먼저 전화를 받았다. 전화 속에서 어떤 여자가 나를 찾고 있었다. 사내는 내가 숨겨놓은 양주라도 찾았다는 듯이 눈을 반짝이며 왜 아침부터 김연수 씨를 찾는 것이냐고 농을 걸었다. 하지만 여자는 완강하게 김연수 씨만을 찾았다. 그녀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내는 더 완강하게 왜 아침부터 김연수 씨를 찾느냐고 되물었다. 아마, 그 사내 역시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전화를 건 여자가 말했다. 여기는 출판사인데, 김연수 씨에게 전할 말이 있다. 실망한 표정으로 사내가 물었다. 출판사에서 왜 아침부터 김연수 씨를 찾느냐? 여자가 다시 말했다. 당신은 누구냐? 사내가 말했다. 나는 장석남이다. 어머, 장석남 씨가 왜 거기 있어요? 저, 정은숙이에요. 둘은 마치 그날 아침에 전화하기로 했던 사람들인 양 한참 얘기했다. 그 다음에 내가 전화를 받았다. 그건 내가 시인으로 등단하게 됐다는 소식을 알리는 전화였다.

(김연수와 장석남에게 이런 인연이 있었다니...!!!!!)-170쪽

G.K. 체스터튼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사랑하는 것은 쉽다. 그것이 사라질 때를 상상할 수 있다면.-191쪽

낑낑대며 얼어붙은 나무 창문을 열고 바깥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노라면 1월 새벽 공기에서는 후추처럼 매운 냄새가 나면서 콧구멍이 들어붙었다.-2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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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 - 바티칸의 금서 돋을새김 푸른책장 시리즈 4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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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재미있는 통치 전략서. 원래는 한 사람만을 위해 쓴 글이지만 읽는 사람마다 재해석한다고 해도 전혀 무리가 없다. 고전의 힘이다.

중학교 때부턴가 고등학교 때부턴가 무조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하며 달달 외우기만 했는데, 그 때 읽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온다 리쿠의 <밤의 피크닉>에 인생의 타이밍에 대해 얘기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나도 시노부처럼 "아뿔싸, 타이밍이 늦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말이지,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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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 - 바티칸의 금서 돋을새김 푸른책장 시리즈 4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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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이 낮고 비천한 자가 감히 군주의 통치를 논하고 규정하려는 것을 주제넘다 여기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풍경을 그리려는 사람이라면, 산맥과 고지대의 특징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낮은 곳에 있어야 하고 평원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산꼭대기에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이치로 백성의 본성을 잘 파악하기 위해서는 군주가 되어야만 하고, 군주의 본성을 잘 파악하기 위해서는 백성이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로렌초 데 메디치 전하께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올리는 글>-31쪽

문제들이 눈앞에 드러날 때까지 기다린다면 처방은 이미 너무 늦은 것이 되고, 그 질병은 치유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의사들이 말하는 질병에 관한 이야기가 여기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즉 질병은 초기에는 진단하기는 어렵지만 치료하기는 쉽고, 시간이 경과한 후에는 진단은 쉬우나 치료는 어려워지는 것입니다.-46쪽

갑작스럽게 형성된 국가란 튼튼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급속도로 자라난 식물과 같아서 처음으로 맞이하게 된 악천후에도 쉽게 죽어버리고 말 것입니다.-71쪽

<민심을 얻기 위한 체사레의 냉혹함>

그는 레미로 데 오르코라는 가혹하지만 능력 있는 인물에게 그 지역을 맡기고 모든 권한을 위임했습니다. 레미로는 짧은 시간 내에 그 지역을 평화롭고 단합된 곳으로 만들었으며 그 과정을 통해 매우 좋은 평판도 얻었습니다. 그 후 공작은 레미로에게 주어진 과도한 권한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으며 그의 권한 때문에 훗날 성가시게 될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공작은 그 지역의 중심부에 시민재판소를 설치하여 권위 있는 재판장으로 하여금 관장토록 하고 각 도시별로 법률가를 파견하도록 했습니다. 공작은 그동안 해온 가혹한 조치들로 인해 백성들 사이에 한없이 생겼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백성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자신을 전적으로 지지하게 만들려고 했던 것입니다. 즉 그동안 있었던 가혹한 조치들은 자신이 지시한 것이 아니라 행정관의 잔혹한 성품 때문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계획을 실행할 기회를 잡은 어느 날 아침, 체세나 광장에 두 토막 난 레미로의 시체를 단두대와 피 묻은 칼과 함께 놓아두었습니다. 그 참혹한 모습은 백성들에게 만족감과 동시에 당혹감을 심어주었습니다.-77쪽

인간의 본성이란, 받았던 은혜와 마찬가지로 베푼 은혜에 의해서도 유대가 강화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103쪽

한니발의 뛰어난 공적들 중 가장 칭찬받는 것이 있습니다. 비록 여러 나라에서 선발된 엄청난 대군을 거느리고 외국 땅에서 전투를 치렀지만 전황이 유리할 때나 불리할 때나 변함없이 군 내부에서는 물론 장군들 사이에서도 사소한 분란조차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여타의 훌륭한 능력들과 더불어 부하들로 하여금 항상 존경받고 또 두려워하도록 만든 그의 무자비한 잔혹함에 의해서만 가능했던 것입니다. 만약 잔혹함이 없었다면 그가 지닌 다른 능력들만으로는 그러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면모를 간과한 근시안적인 역사 저술가들은 그의 공적들에 대해 찬사를 늘어놓으면서도 한편으론 그러한 공적들의 주요한 원인을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143쪽

이전의 정권에 만족했기 때문에 신생 군주의 적이 된 사람들을, 이전 정권에 불만이 있었기 때문에 신생 군주에게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보다 훨씬 더 쉽게 우호세력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1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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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 재습격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창해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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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책을 읽다보면, (누구나 그럴 거란 생각이 드는데)

가볍게 술 한 잔을 하고 싶고, 혼자서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고 싶고, 턴테이블로 음악을 듣고 싶고, 남들 다 일할 시간인 오후 2~3시경 어정어정 산책을 나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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