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와 날개
이윤기 지음 / 현대문학북스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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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윤기만큼 박식한 사람, 우리나라 문학계에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간혹 든다. 이건 '글을 잘 쓰는 것' 이전의 문제다. 이윤기 작가는 "어디, 소설 한 번 써 볼까" 하고 글을 시작하는 게 아니라, 아는 게 너무 많아 주체할 수 없어서 쓰는 케이스 같다. 아는 게 많아서 할 수 없이 소설로 쓰기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또 공부할 부분이 있어서 지식을 채워넣고 그러니 또 똑똑해지고, 이른바 "똑똑의 순환"인 거지.

그래서 그의 소설은 읽고 나면 가슴 뿐 아니라 머리에도 남는 게 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약간 재미는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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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와 날개
이윤기 지음 / 현대문학북스 / 1998년 6월
절판


세월은 주검으로부터 살을 발라내고 뼈만 남긴다.-9쪽

"내력을 모르는 것은 눈에도 안 보이는 법이죠. 이제 아셨으니 앞으로는 자주 보시게 될 겁니다."-152쪽

"갈등의 틈에서만 사유가 발생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203쪽

추수하러 가는 농부 심정-207쪽

"영어에 서툰 다섯 살 전후의 한국 아이들이 외국 아이들과 노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한국 아이들이 <가짜 영어>를 한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들리기는 영어 비슷하게 들리는데 사실 이것은 한국 말도 영어도 아니에요. 아무 의미도 없고요. 이게 바로 <가짜 영어>예요. 아이들은 이 <가짜 영어>를 통해 억양부터 익히면서 아주 빠른 속도로 진짜 영어를 배워가는 모양이에요."-2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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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온 아메리카
이윤기 지음 / 월간에세이 / 199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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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는 구절은 역시나 술에 관한 것. 마신 사람에 따라 주정이 되기도 하고 농담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사랑이 되기도 한다는 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마신 술이 사랑이 되길 바라겠지만,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고 술만 마시면 주정이다. 변용의 단계를 제대로 못 거친 탓이다, 라고 이윤기 작가는 말하는데, 말하자면 변용의 단계를 초물질적인 되울림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 내가 이윤기 작가의 책을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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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온 아메리카
이윤기 지음 / 월간에세이 / 1997년 6월
품절


술은 마신 사람에 따라 술주정이 되기도 하고 유쾌한 농담이 되기도 하지요. 때로는 사랑이 되기도 하고요.-22쪽

고은 시인은, 끝난 뒤에 침묵을 지어내지 못하는 음악은 음악이 아니라 소음에 지나지 못한다...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22쪽

명수필가 김소운의 수필집 <목근통신>.-126쪽

아이들 키우면서 확인한 바 있거니와, 저희들에게 벅찬 것을 하나씩 익힐 때마다 아이들은 크고 작은 열병들을 하나씩 앓고는 했습니다. 아이들이 앓는 잔병을 지혜열이라고 한다는데,....-167쪽

나는 잘 알고 있었지요. 어리석은 사람을 위험한 일에 뛰어들게 하려면 그 위험한 정도를 조금만 과장하면 된다는 것을.-2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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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굴레에서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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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뉴욕에 머물 무렵, 잠시 센트럴파크로 산책을 나간 M과 나.

M은 가끔 읽고 있는 책의 줄거리를 조근조근 얘기해 줄 때가 있는데, 나의 요청에 의해서도 아니고, 책 얘기를 하던 중도 아니고, 그냥 갑자기 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난처스럽다. 이야기의 첫머리를 듣지 못하고 지나쳐 버리면 지금 M이 하는 이야기가 책의 줄거리인지, 아니면 한 다리 건너 아는 친구의 요즘 사는 얘기인지 분간을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날 역시 갑작스레 시작된 M의 이야기는 [인간의 굴레]였다. 사실 그건 딱히 '줄거리'라고 말할 수도 없는 그냥 한 챕터의 요약이었는데, 회계사무소에 다니는 한 견습사원의 지루한 일상 이야기였다. 사무실과 하숙집만 오가거나 가끔 혼자서 거리를 거닐고 박물관이나 도서관에 간다는 필립 이야기. 그리고 너나 나 역시 뉴욕 한복판에 여행을 와 있지만 딱히 갈 데라고는 박물관이나 도서관, 길거리 뿐이라 왠지 스펙터클하지는 않다는 류의 이야기가 곁들여졌다. 뉴욕 꽃미남한테 파티 초대 한 번 못 받은 동양인 여자 둘의 하소연이 그 뒤를 잇고.    

그리고 나서 며칠 후였던가. 비오는 금요일 오후. 하루종일 슈퍼마켓에서 사온 군것질거리를 입에 물고 뒹굴다가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혼자 뉴욕현대미술관 MoMA 에 가기로 결심하고 집을 나섰다. 금요일 오후엔 공짜 입장도 가능하고, 얼마 전에 브로드웨이에서 산 메리 포핀즈 우산도 자랑 좀 하고 싶고 해서였는데.

어머나!


층과 층 사이에 걸린 저 커다란 그림! 어디서 많이 본 그림인데 어디였더라 갸웃거리며 일단 카메라만 대충 들이댔었는데..


집에 돌아와보니 책상 위에 놓인 M의 책 한 권! 같은 그림이다! 그제서야 아까 본 그림이 유명한 그림이었구나 M에게 황망히 떠들어댔다. 오오- 같이 흥분한 M과 함께 책 앞날개를 뒤집어보니 이 그림, 앙리 마티스의 'Dance'였구나. 이 그림, 이윤기 작가의 집에도 복제품이 있다지. 이윤기 작가의 집에 놀러온 노교수가 그림이 참 좋다며 혹시 안사람의 솜씨냐고 물었다던. 그림은 잘 모르지만 이 그림은 참 좋네요 말했다던 노교수처럼, 나도 가만히 보니 이 그림이 참 좋다.

책 표지 담당자가 누구인지 얼굴은 몰라도, 이거 참 기가 막힌 조합이구나 싶다. 책 내용을 한 장면으로 압축하라면 정답은 도무지 이 그림밖에 없을 것 같다. 두 권짜리 묵직한 '인간의 굴레'를 보는 게 지레 겁먹어진다면, 그냥 이 그림 10분만 가만히 들여다보는 걸로 대신해도 되겠다. 모든 게 압축되어 있다. 명작끼리의 훌륭한 조우다.

[인간의 굴레]는 [달과 6펜스]가 주목을 받은 후에야 재조명을 받은 작품. 그런데 두 작품 성향이 비슷하지는 않은 것 같다. 나는 좀 더 스펙터클한 후자가 더 좋긴 하지만, 그래도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보다는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에서]가 더 좋다. 이건 왜 갑자기 뜬금없는 순위 매기기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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