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쓸쓸한 당신
박완서 지음 / 창비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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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콰마린'에 관해 얻어들은 이야기는 그러나 그런 흥미진진한 전설하곤 좀 달랐다. 깊은 바다 빛깔이 나는 게 양질의 '아콰마린'이지만, 그런 건 아주 드물다면서 드문 까닭을 이렇게 말했다. 극진히 사랑하던 애인을 바다에서 잃은 청년이 있었다나. 그가 남은 생애 동안 돈을 버는 대로 오로지 뛰어난 아콰마린만 사모은 게 늙어 죽을 때는 드디어 커다란 마대자루 하나 가득하더라는 것이었다. 깊은 바다에 애인을 빼앗긴 청년이 따라 죽는 대신 바다 빛깔 결정체에다 자신의 혼을 수없이 던진 이야기를 친구는 왠지 심드렁하고 간략하게 말했다.

<마른 꽃>-13쪽

난봉기도 도가 트니까 관록 같은 게 생겨 멋있고 풍류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140쪽

남자와 여자가 서로 연정을 느끼는 건 신의 장난질처럼 인간의 계획 밖의 일이다.

<그 여자네 집>-1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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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등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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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라 시대의 사랑>의 명문장 두 개가 계속 생각나는구나.

"아직도 사랑이 아닌 다른 이유로 자살하는 사람이 있다니 유감이군요."
"내가 죽는 것이 가슴 아픈 유일한 까닭은 그것이 사랑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유독 표독해진 나는,
나 빼고 다른 사람들이 '영원한 사랑'을 하는 게 배알 꼬인다.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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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등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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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불현듯 그의 메마른 목소리가 그때 들렸다.
......언제나 내 줄을 끊어버리곤 한다.-8쪽

바로 여기야, 라고 말하며 그는 어깨 한쪽을 가리켰다. 여기가 다 젖었었어. 참, 이상하더라. 혜주의 눈물로 젖은 어깨가 있지, 며칠이 지나도 마르지를 않는 거야. 주술적인 데가 있다니까, 그애 눈물은. 여기 좀 봐, 눈물 자국이 지금도 뵈잖아?-124쪽

사랑만으로 행복해지는 세상은 전설 속에 있을 뿐이었다.-188쪽

딴 때에도 그는 그랬어. 내게 분노한 적이 없었고, 말 한마디 거칠게 하지 않았어. 그는 그런 사람이야. 한번은 왜 내게 화를 내지 않느냐고 직접 물어본 일도 있었는데, 그는 말하기를, 사랑이 앞서 나가기 때문에 화낼 겨를조차 없다고......내게 그렇게 말했어.-212쪽

앞으로 평생 다시 못 만날지도 모르는데, 그들은 배당된 면회 시간의 반을 이미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것은 남은 인생의 반을 흘려보낸 것과 마찬가지였다.-227쪽

널 사랑해.
그가 숨가쁘게 화살을 쏘았다.
짧고도 폭죽이 터지는 것처럼 잔인한 키스였다. 혀의 안쪽을 마치 면도날로 도려내는 것 같았다. 그의 이마에서 땀이 흘렀고 그녀의 손바닥에서도 땀이 흘렀다......영원히, 라고. 입술이 서로 떨어졌을 때, 그가 말의 아퀴를 지었다. 널 사랑해, 영원히......하고. 그녀는 무슨 일이 어떻게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는지조차 자각할 수 없었다. 그의 손이 귓불로 왔고, 그녀의 한쪽 귀고리를 잡아당겨 자신의 입속에 집어넣었다. 너는 이 귀고리에 들어 있어, 어디로 가든. 그가 그 말을 했던가. 그리고 또 그는, 잠시 초조하게 두리번거리더니, 곧 상의에 붙은 죄수번호 패찰을 우드득 뜯어 그녀에게 주었다. 이것밖엔 줄 게 없어. 마지막 말은 말하지 않은 침묵의 말이었다. -227쪽

그가 그랬어. 영우가 죽었는데......무엇으로......우리가 함께 묶여 있을 수 있겠느냐고.-3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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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 산 -하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8
토마스 만 지음, 홍경호 옮김 / 범우사 / 199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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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어떤 책을 읽다 보면, 누군가 내 심장을 갈고리로 휙 채가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방심하고 있다 당하는 일이기에 그 충격은 엄청나다.
마의 산 하권 525쪽을 읽었을 때가 바로 그 순간. 앗.

처음엔, 산에 올라갔다가 7년을 그 산에 있게 된 남자의 이야기라고 해서, 엥, 조난 이야기인가 싶었다.
뭐야 난 재난영화도 그다지 안 좋아하는데 이걸 읽어 말어 한동안 고민.
아, 또 이런 무지의 소산.
알고 보니 요양소에 머물고 있는 친척을 문안차 갔다가 덩달아 요양을 하게 된 한스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요즘 초절정 가난뱅이인 나는,
돈 안 벌고 공기 좋은 곳에서 7년 동안 요양해도 먹고 살 걱정 없는 그가 왠지 살짝 부럽더라.
이건 왠 삼천포냐.

어쨌든 진득하게 읽어볼 만한 작품이다.
마흔 살에 한 번 더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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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 산 -하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8
토마스 만 지음, 홍경호 옮김 / 범우사 / 199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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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프타는, 세템브리니가 일장 훈계를 늘어놓기 전에 중세에 유행했던 종교에 입각한 극단적인 사랑의 행위, 즉 병자를 간호할 때의 광신적인 도취 상태의 놀라운 예를 얘기해 주었다. 공주들이 나병 환자의 악취나는 상처에 입맞추며 나병에 감염되너 생긴 상처를 '장미'라 부르고, 또 고름 씻은 물을 마시면서 이렇게 맛있는 것은 마셔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는 이야기였다.-152쪽

사랑이란 아무리 경건하더라도 육체와 결부되지 않는 것이 없으며, 아무리 육욕적이며 관능적인 사랑이라 하더라도 경건함이 결여되는 일은 없다. -363쪽

"...육욕이란 특정한 대상 없이 전전하며 옮겨가기도 하지요. 그래서 일반적으로 육욕은 동물적이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육욕이 하나의 얼굴을 지닌 한 인간에게 향해지면, 그것은 사랑이 되는 것이지요. 나는 그녀의 몸이나 그녀의 살만을 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그녀의 얼굴 어느 한 부분에라도, 지극히 미미한 변화만이라도 생긴다면 나는 아마 그녀의 육체는 어느 한 부분도 전혀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으로 알 수 있듯이 나는 그녀의 영혼을 사랑하고 있음을 확신합니다. 얼굴을 사랑한다는 것은 영혼을 사랑하는 일이니까......" -391쪽

"당신은 하늘을 향해 쏘았습니다." 나프타는 권총을 내리고 분노를 억누르며 말했다.
"내가 쏘고 싶은 대로 쏘았을 뿐이오." 세템브리니가 응수했다.
"다시 쏘시오."
"그럴 생각은 없소. 이번에는 당신이 쏠 차례요."
세템브리니는 그렇게 말하고 얼굴을 하늘로 향하고는 나프타와 정면으로 서지 않고 비스듬하게 섰다. 참으로 감동적인 자세였다. 결투에 있어서는 상대방에게 가슴 정면을 드러내 놓지 않는 게 예의라는 말을 들어 알고 있었으므로 그런 자세를 취했으리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이 비겁자!" 나프타가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그 외침은 쏘는 자가 총알을 맞는 쪽보다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그는 결투와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권총을 위로 들어 자신의 머리에 쏘고 말았다.-5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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