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방·해변의 길손 - 1988년 제12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한승원 외 지음 / 문학사상 / 2001년 8월
장바구니담기


가해자가 많을수록 진상은 감춰지는 법이라구.

<지빠귀 둥지 속의 뻐꾸기>-257쪽

그러던 어느날 나는 점순이에게 손거울을 선물로 주었다. 손거울에 이름을 써서 좋아하는 사람한테 주면, 좋아하는 사람이 거울을 들여다볼 때마다 그 사람의 마음이 이름을 써 놓은 사람에게로 쏠려, 결국 두 사람이 하나가 된다는 누님의 이야기를 듣고 그대로 실행을 한 것이었다. 나는 집에서 달걀을 훔쳐 몰래 장에 가지고 가서 팔아 손거울을 샀으며, 손거울 뒤에 붓으로 이름을 쓴 다음 내 이름이 보이지 않게 창호지를 붙여 그녀에게 주고 나서 점순이의 마음이 내게 쏠리기만을 간절하게 기다렸다.


<꿈꾸는 시계>-275쪽

"그 얘기를 오늘 내일 당장 전설 속에 끼워 넣으려고 서두르면 안 되지요. 전설은 오랜 세월을 두고 저절로 만들어지는 겁니다. 죽음이나 피가 흙이 되고 나서 그 흙에 뿌리를 박고 돋아난 풀 한 포기나 꽃 한 송이가 전설이지요."

<달빛과 폐허> -48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트렌드 코리아 2010
김난도 외 지음 / 미래의창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언젠가부터 연말, 혹은 연초가 되면 트렌드 관련 책을 보는 게 습관처럼 되어 버렸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내가 트렌드를 알고 싶어서 책을 찾아보는 건지
아니면 트렌드 책이 많아서 자연스레 눈길 한 번 손길 한 번 가는 건지 이건 정말 아돈노.
어찌 됐든, 남들 다 읽는 트렌드 책, 나만 안 읽으면 뒤처질 것 같아 2010년에도 읽기로 한다.
살아남으려면 독서도 강박.


올해의 키워드는 타이거로믹스(TIGEROMICS).

Times for Korean chic : 코리안 시크
Into our neighborhood : 떴다, 우리 동네
Good to be geeks : 딴짓의 즐거움
End of taboos : 금기의 종언
Ready-made to order-made : 당신의, 당신을 위한, 당신에 의한
Omni-U solutions : 전지전능 솔루션
Manner matters : 매너남녀
It's aqua : 물의 르네상스
Challenge your age : 나이야 가라!
Style republic : 스타일에 물들다


 
10개의 키워드 모두, 읽고 나면 고개가 주억거려진다.
반면, 뭔가 굉장히 새롭고 기발한 것을 읽고 싶어 이 책을 선택한다면 조금은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본문에서 김난도 교수 역시 밝혔듯, 트렌드는 미래만을 예견하는 게 아니라
과거-현재-미래의 세 시제를 포괄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이미 내 옆에서 조금씩 진행되고 있는 일들 중 될 성 싶은 떡잎들만을 모아놓은 책이라는 얘기다.
고 떡잎들이 1년 동안 어떻게 커 갈지 관찰해 가는 건 이 책을 읽은 독자들만이 할 수 있는 즐거운 놀이.
나는 거기에 덧붙여 10개의 키워드에 맞는 2010년 계획까지 나름 야심차게 세워보았다.
트렌드에 맞는 계획이라니, 왠지 지성인 트렌드세터가 된 기분이야.


Times for Korean chic : 코리안 시크
나도 한국적으로 시크해질테다.
'나홀로 국내여행'을 꼭 해봐야지!
1순위는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이다.

Into our neighborhood : 떴다, 우리 동네
이제 그만 여의도를 벗어나고 싶은데...
올 7월에는 여의도가 아닌 다른 곳으로 이사!

Good to be geeks : 딴짓의 즐거움
2009년에는 딴짓을 별로 하지 못했다.
제일 큰 이유는 내 인생 최고의 가난뱅이 시기였기 때문.
올해엔 근 5년간이나 침만 질질 흘리고 있는 맥주 만들기에 도전하고
클래식 기타를 배워서 외로울 때 둥기둥기해야지.

End of taboos : 금기의 종언
직종 크로스오버가 목표!
생명력 짧은 지금의 직업에 올인하지 말고 투잡, 쓰리잡, 영역을 확장하도록!

Ready-made to order-made : 당신의, 당신을 위한, 당신에 의한
수동적인 독자에서 벗어나 내 세상을 만드는 게 목표.
2010년에 못 이루어도 좋다. 결과물은 꼬박꼬박 내놓자.
이건 마이크로 트렌드가 아닌, 나만의 메가 트렌드다.

Omni-U solutions : 전지전능 솔루션
나를 전지전능하게 해 줄 괜찮은 디지털 제품 구입!
일단은 손에 착착 감기는 새 디카다.
스마트폰은 아직은 노땡큐.

Manner matters : 매너남녀
내 매너는 충분히 차고 넘친다.
매너 좋은 남자를 만나는 게 목표.

It's aqua : 물의 르네상스
디자인이 예쁜 생수병을 들고 다녀야지. 뭐든지 예뻐야 해.
(사실은, 다이어트 하겠단 얘기)

Challenge your age : 나이야 가라!
나에게 투자할 것. 지금이 아니면 늦는다.
오늘 코스모폴리탄을 보다가 발견한 회춘의 동안침이라 불리는 황후침이 좋겠다.
턱선의 각도의 뺨의 모양이 확연히 달라진단다. 아기처럼 연한 피부는 보너스.
보톡스나 필러를 주입하고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니
1회 10만원 정도는 아낌없이 투척하리라.
해율한의원의 박해웅 원장님, 기억해 놔야지.
일반 경락보다는 조금 비싸지만 관절 사이사이의 독소를 쫘악 배준다는 내면 테라피도 솔깃하다.
체험자가 비교를 위해 몸의 왼쪽만 받았다니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로 왼쪽 무릎만 하얘졌다마 뭐라나.
게다가 꼬깃꼬깃 접혀 있던 근육이 풀어져 키도 더 커진다고!
돈 버는 즉시 예약합니다. 황후연의 배은정 원장님, 기다리세요.

Style republic : 스타일에 물들다
책에서는 상품을 넘어 건물과 거리, 그리고 도시 전체로 확산될 스타일에 대해 언급했지만
나는 도시건축가도 아니고 상품디자이너도 아니니, 나 자신의 스타일에만 신경쓰겠다.
2010년 나의  스타일은, 당당한 날씬 여성! 

  

사랑이 타이밍이듯 책도 타이밍인데, 2010년 달력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읽어서
신년 계획 세우는 데 참으로 요긴하게 써먹었다.

김난도 교수는, 참 매년 수고하시는구나.
2011년에도 부탁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배수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며칠 전 혼자 롯데시네마 영등포에 영화 보러 갔다가 차창밖으로 발견한 '폐업 도서대여점'.
아싸가오리! 혼자인 게 좋을 때는 바로 이런 때다.
저기 한 번 가자고 사정하지 않아도 (헌책방은 대부분의 경우 별로 좋아하지 않으므로) 내 맘대로 갈 수 있다 이거야!
일단은 영화 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 영화 먼저 보기로 하고 씨유레이러.

아. 전우치는 잘생겼구나. 2탄 3탄 계속계속 나와라.

그런데 영화가 끝나니 벌써 어둑어둑해지고 말았다.
벌써 문닫았으면 어쩌나 하고 미끄러운 눈길 위에서 전력구보했는데 다행히도 아직 닫지 않았다.
아주 심심해 보이는 아주머니께서 뭔가를 드시며 카운터를 지키고 계시고 손님은 오직 나뿐.
헐떡이는 숨을 가다듬으며 서가를 살피는데 도서대여점답게 만화책이 3분의 2 이상. 나머지는 가벼운 소설류다.
박완서 작가의 책 중 소장하지 않은 게 있어서 저걸 살까 하다가,
왠지 연말에 박완서는 축축 처지는 기분이라 일단 보류하고 다시 살핀다. 

그러다 발견한 게 배수아.
배수아 작가의 책은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다.
<일요일 스끼야끼 식당>만 언제 한 번 읽어보려고 알라딘 위시리스트에 몇 년째 억류 중.
스끼야끼 읽기 전에 워밍업 하는 심정으로 읽어볼까 하고 2500원에 구입.



그리고 며칠이 지나 1월 1일 오후.
무얼 읽을까 책무더기를 뒤적이다 손끝에 집힌 게 바로 이 책.
마침 <푸앵카레가 묻고 페렐만이 답하다> 때문에 엄청나게 압박을 받고 있던 터라
이번에는 정말 한숨에 훅 읽을 가벼운 책을 읽어야겠다고 마음머고 읽기 시작했다.
1월 1일부터 훅훅 읽으면 올 한 해도 훅훅 바람같이 달려가겠지 하는 꿈보다 해몽 같은 생각도 잠시 했고.

그런데 몇 장 읽지 않아 깜짝 놀라버렸다.
바로 이 문장 때문. 

"하룻밤만 지나면 나는 서른세 살이 된다."

어쩌면 이런 기가 막힌 타이밍이!
그때부터 완전 감정이입하고 읽어내려가기 시작한다.

주인공 유경은 잘난 것 하나 없는 서른 셋 독신녀에 가족들과는 자체적으로 연락 두절이고, 성격은 이중인격.
하지만 인생을 포기하고 사는 건 아니어서 저녁엔 수의학 강의를 들으며 수의사 시험을 준비한다.
게다가 다행히 왕따도 아니어서 섹스 앤 더 시티처럼 독신녀 친구들이 여럿 있는데
이들은 서로 먼저 결혼할까봐 전전긍긍 눈치보고 질투를 한다.
그러다 어느 날 술에 취해 같은 회사의 엘리트 상사이자 유부남인 길과 원나잇 스탠드를 하고
이걸 친구들한테 말해 말어 고민하다가 그 중 누구 하나는 결혼을 한다 하고
결국 길과 관계 갖기로 결정하고 셀러던트 주인공의 인생은 또 흘러가고...

2000년의 책이지만 10년 후에도 서른 셋 싱글여성의 인생은 변함이 없다.
여의도에서 커피 마시면서 미래 걱정, 남자 걱정.
홍대에서 커피 마시면서도 미래 걱정, 남자 걱정.
광화문에서 커피 마시면서도 미래 걱정, 남자 걱정....

결국 내가 이 책에서 얻어낸 것은 '위안'.
나 혼자만 안달복달하는 서른셋을 살고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위로가 되고 편안해진다.
그리고 든 2010년 나의 목표는,

올해엔 나도 좀 못돼지자.
지겨우면 지겹다고, 싫으면 싫다고 확실히 말하자.
뭐, 누가 뭐라고 하면 노처녀 히스테리라고 농이나 치면 그걸로 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배수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0년 12월
구판절판


역시 포유류는 암컷이나 수컷이나 가장 귀여운 시기가 인생의 너무 이른 즈음에 온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시기는 지나치게 짧다.-2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푸앵카레가 묻고 페렐만이 답하다 - 푸앵카레상을 향한 100년의 도전과 기이한 천재 수학자 이야기
조지 G. 슈피로 지음, 전대호 옮김, 김인강 감수 / 도솔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접해보지 않았던 분야의 책도 읽어보자 해서 과감히 선택한 책.
<푸앵카레상을 향한 100년의 도전과 기이한 천재 수학자 이야기>라는 컨셉에 맞게 처음엔 흥미진진하다.
오스카 상을 둘러싼 이런저런 에피소드도 재미있고 정말 기인처럼 여겨지는 페렐만의 이야기도 재미있다.
그런데, 오 마이 거쉬, 딱 거기까지다.
나는 정말로 이 책이 '수학'에 관한 책이 아니라 '수학자'에 관한 책이라 철썩같이 믿었건만
그래도 어느 정도 수학을 알아야 이해되는 책이었다.

예를 들자면, 한 문장에만도 모르는 수학용어들이 줄줄.

"위치의 분석의 관점에서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입니다. 베티 수들은 닫힌곡면을 특정짓기에 충분할까?"
"k번째 베티 수는 n차원 대상의 k차원 연결성을 나타낸다."
"쌍대성 정리에 따르면, 닫힌 다양체에서 k번째 베티 수와 (n-k)번째 베티 수는 동일하다."

.. 
.....
....... 
털썩.... ㅠㅠ 차라리 아랍어를 해석하라고 하세요.
수열과 집합, 그리고 가까스로 미적분만을 깨우친 나에게 이 책은 문장 자체가 버겁고 난해하다.
그래서 이 문장을 머리를 쥐어짜서 이해하고 넘겨야 하는지,
아니면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마음으로 그냥 가볍게 건너뀌어야 하는지 도무지 판단이 안 되는데
한 문단의 대부분이 저런 문장인 경우도 많으니 정말 어째야 할지를 모르겠다.

게다가 상상력만으로는 도저히 해결 안 되는 부분까지 나와 버린다.
뫼비우스의 띠와 비슷하다는 클라인 병...? 클라인 병이 도대체 뭥미? 
책에서도 나처럼 이해 못하는 수학 젬병인들이 있을까봐 친절히 별표를 달아 설명을 해주긴 했다.

"뫼비우스의 띠아 같이 바깥쪽과 안쪽을 구별할 수 없는 단측곡면의 한 예.
이 병의 양끝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분명히 닫혀 있는데도 사실은 열려 있다."


아... 무슨 말이세요. 정말 모르겠어... 하다가 구글 이미지 검색해 보고서야 가까스로 이해.
클라인 병은 이런 거였다.

 



 
그러고 보니 어디서 본 것 같긴 한데, 진작 그림 보여주면서 설명해 주었으면 좋았잖아 하고 나 혼자 버럭.
하지만 사실 저자는, 클라인 병 따위는 상식으로 알고 있는 독자들을 위해 이 책을 썼을 테니 뭐 그냥 나 혼자 검색해 보고 맙시다.
가끔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상식으로 알고 있다고 해서 다른 이들도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정말 지적 폭력이다.

결국, 2주가 넘게 씨름하다가 절반을 조금 더 읽은 상태에서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더 이상 읽는다는 건 시간 잡아먹는 고집이란 결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조지 G. 슈피로 씨 죄송합니다. 어쩔 수가 없었어요.

어이가 없어서 책읽기를 중단하는 경우는 간혹 있었는데 어려워서 중단하는 경우는 처음이다.
그런데 화학을 전공한 Ryu에겐 이 책이 꽤나 재미있는 모양이다.
해외출장간다며 내 책장에서 서너 권 꺼내가다 카펫 위에 있는 이 책도 발견하곤 냅다 빌려갔는데
그 출장에서 다 못 읽었는지 다음 출장 때도 또 빌려달란다.
괜히 부아가 나서, 나 2010년 되기 전에 이 책 다 읽어야 한다며 안 빌려줘 버렸다.
그러다 Ryu가 읽다 접어둔 페이지를 펴봤는데, 흥, 그럼 그렇지, 거기까지는 나도 재미있게 읽었거든요.
그 다음부터 완전 사람 잡아먹거든요.
시험삼아 또 한 번 빌려줘봐야겠다. 

참, 알라딘에는 "이 책을 구입한 분들은 다음 책도 구입하셨습니다"라는 코너(?)가 있는데
여기 보니 정말로 이 책을 구입한 사람들은 <100년의 난제, 푸앵카레 추측은 어떻게 풀렸을까?>, <미지수, 상상의 역사>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  <오일러 상수, 감마>, <화이트헤드의 수학이란 무엇인가> 등등을 사서 읽으셨다.
내가 살아가는 것과 별개로,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세상도 분명 존재하는구나ㅡ 라는 당연한 진리를 또다시 깨우치는구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