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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딱지떼기 - 달콤 살벌한 처녀들의 유쾌한 버진 다이어리
유희선 지음 / 형설라이프 / 2010년 3월
평점 :
책 소개글은 일단 눈길을 끌었음을 인정한다.
'섹스 앤 더 시티'의 반대꼴인 7명의 여자들이 나오는 한국형 칙릿이라고 '얼핏' 오해하기 딱 좋은데
한 챕터를 채 읽기도 전에 '헐' 이라는 복잡미묘한 신음이 터져나왔다.
주인공은 7명의 생물학적 '숫처녀'와 그 여자들을 베이스로 소설을 쓰려는 한 남자.
남자는 인터넷에 <처녀딱지 떼기>라는 카페를 개설하고 30대 숫처녀들을 불러모은 다음 그녀들의 경험을 듣는데...
예쁜 외모 때문에 눈만 한없이 높은 35세 쇼핑호스트,
직업 때문에 산전수전 다 겪은 흉내를 낸다는 33세 방송작가,
일 때문에 남자 만날 시간이 없었다는 36세 카피라이터,
술이 워낙 세서 남자를 먼저 보내버리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처녀를 지키고 있는 33세 스튜어디스,
80kg이 넘는 육덕진 몸매 때문에 남자를 만나지 못한다는 37세 항공사 과장,
15년 동안 한 남자만 짝사랑하다 이도 저도 못해먹은 33세 시인,
그리고, '섹스는 오로지 남자하고만!' 을 외치는 바이섹슈얼 여자를 사랑한 탓에 성경험이 전무한 32세 헬스트레이너.
뭐, 이런 정도의 여자 7명인데 작가는 이들을 통틀어 '골드미스'라 칭하고 싶은 모양이다.
그런데 글쎄올시다, 이 중에 허울좋은 비정규직도 꽤 섞여 있는데?
어쨌든 이 7명이 자신이 왜 처녀일 수 밖에 없었는지를 미주알 고주알 얘기하고
나머지 사람들이 여기에 댓글 퍼레이드를 펼친 다음,
마지막으로 카페 주인장인 남자가 비밀 게시판에 그 느낌을 적는 게 7번 반복된다.
아.. 그런데, 이 사람들 인물소개를 보면 각자의 개성이 말도 못 하게 뚜렷한데
소설에서는 그게 단 1%도 발휘되지 못한다.
다들 똑같은 성격에 똑같은 말투를 쓰는 통에 이름만 손가락으로 슬쩍 가리면 이게 그 사람 같고 그게 이 사람 같다.
게다가 배울 만큼 배웠다는 사람들이 다는 댓글이라는 게 인신공격도 꽤나 섞여 있고 안하무인에 비논리적이다.
교양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것도 전부 똑같다. 무교양 천지다.
소설가를 지망한다는 남자가 비밀 게시판에 쓰는 글 또한, 인터넷에서 팬픽을 쓰는 여중생만도 못하다.
적어도 이 남자가 쓰는 글은, 소설적 완성도를 갖춰야 하는 거 아닌가.
남자임을 들키는 대목도 긴장감 제로다.
어디 스포츠 신문에 연재되던 소설이라던데, 읽고 보니 정말로 딱 그 수준이다.
실제로 생물학적 숫처녀를 유지하고 있는 30대 여성들이 많은 건 숨겨진 진실임을 인정하지만
재미있는 건 상황설정 뿐. 스토리는 유치하고, '통통 튀는 것'에만 초점을 맞춘 문체는 쉬이 질린다.
책을 펼지자마자 나오는 수준 이하의 섹스 성향 테스트에서부터 알아봤어야 하는데...
하지만 이런 소재의 소설이 출판되고 회자될 수 있다는 데서는 '세월이 역시 약'임을 실감한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지하철에서 <공산당 선언>을 읽어도 괜찮은 시대.
참 좋은 2010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