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도쿄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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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이 지나면 스물 한 살이 아니라 '스무 살 이후'가 온다고 말한 건 내가 아니라 김연수.
그런 의미에서 <스무 살, 도쿄>를 읽는다는 건
꽤 오랫동안 스무 살 이후를 살고 있는 나에겐 과거를 되짚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요,
역시나 최고의 속담은 'All work and no play makes Jack a dull boy.'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그렇게 일만 해선 바보가 될지도 모른다고 타임머신 타고 가서 말해주고 싶을 정도. 

이쯤해서 생각나는 나의 20대는 크게 전반기와 후반기루 나뉘는데
전반기는 공부 안 하고 놀기만 해서 바보로 지낸 시기, 그리고 후반기는 놀지 않고 일만 해서 바보로 지낸 시기였달까.
그러니까 골고루 바보로 지냈단 소린데, 그래도 조금 더 후회되는 시기는 일만 했던 후반기다.
그렇다고 해서 그 분야에서 뭔가 대단한 걸 이뤄냈냐 하면 그것도 전혀 아니고,
그냥 소모품처럼 뱅글뱅글 일만 하며 20대의 에너지를 몽땅 빨렸단 얘기. 

그런데 <스무 살 도쿄>의 스무 살 언저리 청년 다무라 군 역시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
현해탄 너머에 살고 있는 남자아이와 내가? 이 소설의 배경은 70~80년댄데?
그럼, 스무 살 언저리 애들은 어느 시대를 살든 그렇게 비슷한 싸이클을 밟고 있단 얘긴가...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안심이 된다.
바보 같았지만 치열하고 낭만적이었던 내 20대.

소설은 그 시대 20대들에겐 꽤나 중요했던 사회 문화적인 '사건'들과도 궤를 같이 한다.
불의의 총격으로 사망한 존 레넌,
올림픽 개최지 선정에서 나고야가 서울에 밀렸던 날 (만세!),
그리고 베를린 장벽의 붕괴까지...
오쿠다 히데오의 최신간 <올림픽의 몸값>이 대놓고 문화적인 사건을 끼고 간다면,
<스무 살, 도쿄>에서는 이런 사건들이 다무라 군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둥 마는 둥, 슬그머니 눙치듯 녹아 있다.
그래, 인생이란 이런 거지. 나와 먼 사건인 것 같아도 그게 나를 이루는 세포 하나가 되는 것.

그러고 보니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할 때 이 세상에 없었던 게 눈물날 만큼 아깝다. 
본방사수했어야 하는데!!! 
그 때 내가 20대였다면, 조금은 다른 내가 될 수도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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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도쿄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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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무라 군, 한눈에 반하는 건 사랑이 아냐. 발작이지."-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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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호 대한민국의 성장통 - 혼돈의 대한민국을 향한 공병호 박사의 통찰과 해법
공병호 지음 / 해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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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나면 조바심이 든다.
평균적인 한국인의 은퇴 나이를 50세라 치고 기대수명을 80세라 하면
꼼짝없이 30년이란 시간이 붕 떠버리는데, 이 긴긴 세월 동안 무슨 돈으로 먹고 사나?
작년에 든 30만원짜리 연금보험이 있지만 그거 해 봤자 한 달에 50만원도 못 받는다던데
그 돈으로 먹고 사는 게 가당키나 할까? 간신히 입에 풀칠이나 하는 거 아니야?
삶의 질이 현저하게 떨어질 텐데, 한 달에 50만원으로 먹고 살면서 나, 행복할 수 있을까?

그런데 공병호 왈, 이제껏 이런 고민을 하는 한국인은 많지 않았다고 한다.
애들 교육비에 허리가 휘청하느라 노후 대책은 강 건너 불구경이란 거다. 
실제로 한국인들 대부분이 "지금 먹고 살기도 바쁜데 한가하게 어떻게 은퇴 준비를 하냐" 고 말하더란다.
30년이나 되는 은퇴 후 기간을 준비하는 게 어떻게 '한가한' 일이 될 수 있는지 공병호는 반문한다.
그럼 또 평균 한국인들은 말하지. 벌어도 벌어도 소용이 없다, 이 사회가 문제다.. 라고.
공병호는 여기에 매우 따끔하게 일침을 놓는다. 
대한민국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달러, 이는 전 세계 부유층 인구의 상위 11.6%.
그러니까 한국에서 매달 200만 원 정도를 버는 사람든 소득 기준으로 본다면 
전 세계 인구의 상위 11%에 들 만큼 잘 사는 축에 속하며
우리보다 소득이 낮은 인구가 88.84%나 된다는 얘기다.
문제는, 우리가 시야를 넓혀 세계인과 우리의 처지를 비교하는 게 아니라
주변의 인물들과 비교하기 때문에 '먹고 살기 힘들어 죽겠다'라는 얘기가 나온다는 것.
어제 누구누구는 저녁으로 랍스터 먹었다더라, 누구는 남자친구한테 다이아 반지 받았다더라,
누구는 고액과외 해서 대학을 땅짚고 헤엄치듯 쉽게 갔다더라 하는..
굳이 '무소유'를 강권하는 건 아니지만 대한민국의 성장통을 줄이려면
자신의 능력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욕망을 줄여나가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또한 공병호는 이 책에서 시민운동하는 사람들이 보면 그야말로 '깜놀'할 제안들도 여럿 하는데...
이렇게 객관적으로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것도 오랜만이라 생각할 꺼리가 많아진다.
아, 읽고 나니 어쩐지 박노자를 읽고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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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호 대한민국의 성장통 - 혼돈의 대한민국을 향한 공병호 박사의 통찰과 해법
공병호 지음 / 해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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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삶에 대한 개개인의 기대와 욕망을 다스리는 것이다. 남들만큼 누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에 따라 어떤 것은 누릴 수 있지만 어떤 것은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한국 사회가 앓고 있는 성장통을 줄일 수 있는 해법이라고 생각한다.-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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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딱지떼기 - 달콤 살벌한 처녀들의 유쾌한 버진 다이어리
유희선 지음 / 형설라이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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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글은 일단 눈길을 끌었음을 인정한다.
'섹스 앤 더 시티'의 반대꼴인 7명의 여자들이 나오는 한국형 칙릿이라고 '얼핏' 오해하기 딱 좋은데
한 챕터를 채 읽기도 전에 '헐' 이라는 복잡미묘한 신음이 터져나왔다. 

주인공은 7명의 생물학적 '숫처녀'와 그 여자들을 베이스로 소설을 쓰려는 한 남자.
남자는 인터넷에 <처녀딱지 떼기>라는 카페를 개설하고 30대 숫처녀들을 불러모은 다음 그녀들의 경험을 듣는데...

예쁜 외모 때문에 눈만 한없이 높은 35세 쇼핑호스트,
직업 때문에 산전수전 다 겪은 흉내를 낸다는 33세 방송작가,
일 때문에 남자 만날 시간이 없었다는 36세 카피라이터,
술이 워낙 세서 남자를 먼저 보내버리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처녀를 지키고 있는 33세 스튜어디스,
80kg이 넘는 육덕진 몸매 때문에 남자를 만나지 못한다는 37세 항공사 과장,
15년 동안 한 남자만 짝사랑하다 이도 저도 못해먹은 33세 시인,
그리고, '섹스는 오로지 남자하고만!' 을 외치는 바이섹슈얼 여자를 사랑한 탓에 성경험이 전무한 32세 헬스트레이너.


뭐, 이런 정도의 여자 7명인데 작가는 이들을 통틀어 '골드미스'라 칭하고 싶은 모양이다.
그런데 글쎄올시다, 이 중에 허울좋은 비정규직도 꽤 섞여 있는데?
어쨌든 이 7명이 자신이 왜 처녀일 수 밖에 없었는지를 미주알 고주알 얘기하고
나머지 사람들이 여기에 댓글 퍼레이드를 펼친 다음,
마지막으로 카페 주인장인 남자가 비밀 게시판에 그 느낌을 적는 게 7번 반복된다.
아.. 그런데, 이 사람들 인물소개를 보면 각자의 개성이 말도 못 하게 뚜렷한데
소설에서는 그게 단 1%도 발휘되지 못한다.
다들 똑같은 성격에 똑같은 말투를 쓰는 통에 이름만 손가락으로 슬쩍 가리면 이게 그 사람 같고 그게 이 사람 같다.  
게다가 배울 만큼 배웠다는 사람들이 다는 댓글이라는 게 인신공격도 꽤나 섞여 있고 안하무인에 비논리적이다.
교양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것도 전부 똑같다. 무교양 천지다.
소설가를 지망한다는 남자가 비밀 게시판에 쓰는 글 또한, 인터넷에서 팬픽을 쓰는 여중생만도 못하다.
적어도 이 남자가 쓰는 글은, 소설적 완성도를 갖춰야 하는 거 아닌가.
남자임을 들키는 대목도 긴장감 제로다.
어디 스포츠 신문에 연재되던 소설이라던데, 읽고 보니 정말로 딱 그 수준이다.   

실제로 생물학적 숫처녀를 유지하고 있는 30대 여성들이 많은 건 숨겨진 진실임을 인정하지만
재미있는 건 상황설정 뿐. 스토리는 유치하고, '통통 튀는 것'에만 초점을 맞춘 문체는 쉬이 질린다.
책을 펼지자마자 나오는 수준 이하의 섹스 성향 테스트에서부터 알아봤어야 하는데...

하지만 이런 소재의 소설이 출판되고 회자될 수 있다는 데서는 '세월이 역시 약'임을 실감한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지하철에서 <공산당 선언>을 읽어도 괜찮은 시대.
참 좋은 2010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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