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여행가방 - 박완서 기행산문집
박완서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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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방을 잃어버리기 위해, 우선 여행을 가야 하는 것이 당연지사. 근래 들어 여행바람증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라 제목부터 마음에 들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여행용 캐리어를 들여다보고, 남들의 기행기를 읽기도 하고, 사진도 훔쳐보고 그러던 중, 박완서가 할머니처럼 이것저것 읊조려 주는 여행기는 <생각 있는 여행>을 가야한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돈 쓰고 사진 찍고 맛있는 것 먹고 오는 여행 말고 <생각 있는 여행>... 여행지를 찾아가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 되어야겠다.

외국 여행기보다는 전반부의 우리나라 여행기가 마음에 든다. 비행기 타고 외국 나가는 것만 여행이라 생각했지, 실제로 우리나라 땅을 밟아본 게 얼마나 되는가. 기껏해야 여름에 바다에 가고, 겨울엔 온천에 가고, 친구들이랑은 펜션에 가고, 그런 판에 박힌 여행 아니었던가. 파리에 가면 벼룩시장에 꼭 가봐야지 하면서도 내가 황학동 벼룩시장에라도 가본 적 있었던가. 집에서 거기까지가 얼마나 된다고 지금까지 미뤄왔던가. 쯧쯧, 반성중!

"거기 멋있더라, 거기 음식 맛있더라, 거기 교통체증 심하더라"가 아닌, "거기 아이들은 눈빛이 참 맑더라, 자연과 참 가깝게 살더라, 이런 역사가 있어 그 사람들 가치관이 이렇더라"고 마음으로 느끼는 여행, 2007년엔 꼭 해보련다. 신혼여행 말고, 내 여행으로.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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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여행가방 - 박완서 기행산문집
박완서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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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까지 해온 여행은 과정을 무시한 목적지 위주의 여행이었다. 그게 얼마나 바보 여행이었던가를 알 것 같았다. 어디를 가기로 정하면 먼저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갈 수 있는 교통편을 강구하고, 가면서 통과하게 되는 고속도로나 국도변의 풍경은 가능한 한 빨리 스치는 게 수였다. <남도기행>-12쪽

먼저 거둔 고추가 가득 널린 툇마루에 내가 딴 한 소쿠리의 고추를 보태면서 옛날 우리 할머니 말씀이 생각났다. 할머니는 기도 같은 건 하실 줄 몰랐지만 "그저 땅이 화수분이다"라는 소리를 잘하셨고, 그럴 때마다 경건한 얼굴이 되곤 하셨다.<남도 기행>-19쪽

언덕에서 하회 마을을 내려다보면 풍수지리설에 쥐뿔만큼도 아는 게 없는 주제에도 옛사람의 집터 잡는 안목에 감탄과 신비감을 느끼게 된다. 옛사람이 집터를 잡는다는 건 당장 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앞으로 몇백 년을 두고 후손이 번창할 자리를 잡는다는 뜻이었다. <하회마을 기행>-31쪽

청년은 <토지>를 읽었을까? 나는 그때 그걸 물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게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어떤 문학이 그 문학을 낳은 땅의 구석구석 이름 없는 촌부의 마음속에까지 드높은 자존심을 심어줄 수 있다면 그건 얼마나 굉장한, 전율스럽기조차 한 일인가. <섬진강 기행>-34쪽

옛날 돌다리나 나무다리처럼 난간 없이 낮게 걸린 다리가 있기에 내려가 보았다. 역시나 섬진강이었다. 밑에 깔린 자갈을 일일이 셀 수도 있을 만큼 투명하고, 송사리 떼가 희롱하듯 노니는 것은 물풀이나 자갈이 아니라 거꾸로 잠긴 푸른 하늘 위 나부끼듯 가벼운 새털구름 사이였다. 송사리도 그쯤 되면 신선놀음 아닌가. <섬진강 기행>-42쪽

모든 것은 돌고 돈다. 가장 앞서갔다고 생각되는 게 가장 처진 게 될 수도 있다. 지금 가장 낙후된 고장처럼 보이는 것이 가장 앞선 희망의 땅이 될 수도 있다. 발전이란 이름으로 만신창이가 된 국토에 마지막 남은 보석 같은 땅이여, 영원하라. <섬진강 기행>-48쪽

여행 와서 식 호텔이나 식당 밥만 먹지 않고 그 고장 사람의 가정에 초대받아 가정 음식을 먹어볼 수 있는 것은 큰 복이었다. <중국, 백두산 기행>-77쪽

농업을 전적으로 강우량에 의지하던 고장이 장기간의 한발로 메말라가는 모습은 기아로 죽어가는 사람의 모습과 어쩌면 그렇게 비슷한지, 우리가 곧잘 쓰는 신토불이가 우리하고는 다른 뜻으로 딱 들어맞고 있었다. <에티오피아 방문기>-123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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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수업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외 지음, 류시화 옮김 / 이레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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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단어를 떠올리는 것조차 불경스럽다 생각했다. 간혹 죽음을 미리 체험해보기 위해 유서를 쓰고 관에 들어가보는 사람들이 몸서리쳐지게 이해가 안 됐다. 그런데, 엘리자베스와 데이비드의 글을 읽어보니 죽음도 충분히 아름답더라. 오히려 지금 이 순간보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을 때가 더 아름다운 삶과 죽음을 경험해볼 수 있겠더라. 그만큼 삶에 대한 애정이 생기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그 애정을 더 크게 만들기 위해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지금 당장 해보라는 말, 정말 공감이 간다.

불치의 병에 걸린다면, 병원침대에 누워 눈에는 다크서클이 선명한 채로 '아, 죽기 전에  불타는 사랑을 해보고 싶어' 중얼거릴 게 후회될 것 같은데, 그 소원 이번 달 내로 이뤄야겠다. 꽤 힘들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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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수업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외 지음, 류시화 옮김 / 이레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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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기적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다.-11쪽

누군가 미켈란젤로에게, 어떻게 피에타 상이나 다비드 상 같은 훌륭한 조각상을 만들 수 있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미켈란젤로는 이미 조각상이 대리석 안에 있다고 상상하고, 필요 없는 부분을 깎아내어 원래 존재했던 것을 꺼내 주었을 뿐이라고 대답했습니다.-22쪽

일료일 아침 일찍 일어나 '생산적으로' 하루를 보내는 것보다는 늦잠을 자는 쪽이 영혼에 더 많은 영양을 공급할지도 모릅니다.-49쪽

이 현상을 빗대어 '어떤 관계에서든 한쪽은 케이크를 만들고 다른 한쪽은 그걸 먹는 법이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대부분의 경우, 한쪽은 먼저 나서서 얘기하고 뛰어들어 해결하려고 하는 반면 다른 쪽은 그 문제에 다른 식으로 접근해, 한 발 물러서서 심사숙고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들은 각자 상대방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서로가 일처리하는 방식을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하지만 사실 두 사람은 훌륭한 짝입니다. 문제에 단도직입적으로 접근하려는 그녀의 마음은 그를 자극하고, 해결을 머뭇거리는 그의 마음은 그녀를 자극합니다.-71쪽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관계에 묶여 버린 사람은 마치 철물점에서 우유를 찾는 사람과 같습니다. 아무리 진열대 사이를 왔다갔다 해도 우유를 찾지는 못할 것입니다.-76쪽

'열렬히 사랑하고 헤어지는 것이 한 번도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89쪽

"삶은 하나의 모험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164쪽

삶은 롤러코스터라고 생각해 봅시다. 롤러코스터를 탈 때 우리가 그것을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롤러코스터를 원하는 방향으로 가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밋밋하고 실망스러울까요? 우리는 그것을 조종할 수도 없을 뿐더러, 만일 조종하게 된다 해도 결국 제멋대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롤러코스터에 마음 졸이며 앉아 있었던 때가 그리워질 것입니다.-2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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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그림책
헤르타 뮐러.밀란 쿤데라 외 지음, 크빈트 부흐홀츠 그림, 장희창 옮김 / 민음사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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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자에 '거침없는 하이킥'을 즐겨보고 있다. 가끔 변두리를 즐겨 보는 이들이라면 이 시트콤의 작가와 피디 이름이 예명으로 된 걸 봤을지도 모르겠다. 그 중 기억나는 예명 중 하나가 '서펄벅'이다. 세상에...! 펄벅이라는 이름이 '서'씨 성과 그리도 잘 어울리다니! 내 성씨와는 그 어떤 유명 작가도 어울리지 않는 듯해서 고민했더랬다. 전펄벅, 전밀란, 전외수, 전하루키, 전주제... 어쩌면 이리도 혀에서 따로 놀까 싶어 안타까웠지만, 이렇게 내 성과 유명작가의 이름을 대입해보면서 왠지 짜릿한 기분도 들었다. 그들은 내가 자기들 이름 갖고 이리 재보고 저리 재보고 괜히 작명가도 아니면서 이 이름은 이게 나빠 저게 나빠 쌈마이 평가를 해대는 걸 알고 있을까. 쓰나미가 100번 쳐대도 모르겠지. 괜히 내가 그들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은 삼장법사 같아서 삐죽 웃음도 나더라. 상상의 나래는 언제나 즐거운 법.

'책그림책'을 보면 이런 상상의 나래가 한없이 펼쳐져서 마음 한구석이 짠하다 못해 저려온다. 간혹 전시회에 가도  감흥 한 번 못 느껴봤는데 컴퓨터 모니터보다 작은 이 책의 그림을 보고 이렇게 많은 걸 느낄 수 있다니... 글자를 보기보다는, 책 내용을 이해하기보다는, 그저 그림을 보기를 권한다. 밀란 쿤데라가 아무리 좋아도, 오르한 파묵의 명성이 아무리 믿음직스러워도, 그들의 글을 보기 이전에 그림을 보길 권한다. 글보다 그림이 100배 훌륭하다. 그림 전문가가 아니어서 붓놀림이 어떻고 구도가 어떻고 하는 건 애시당초 모르겠지만, 그림이 주는 상상력은 정말 최고가 아닐까 싶다. '책'이라는 화두 하나로 어떻게 그런 그림을 그려냈을까. 저 화가는 아마도 1년에 300권 이상의 책을 읽는 게 틀림없어, 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도 내려버렸다. 그게 진실이든 아니든, 그의 그림은 그 어떤 독서가보다, 그 어떤 탐서주의자보다 더 많은 걸 설파한다.

마흔여섯명이나 되는 작가의 개성을 한번에 볼 수 있는 것도 매력이다. 안타까운 점이라면, 상상력은 먼 데 외출시켜놓고 그저 그림의 내용만 묘사해놓은 글들이 몇몇개 있다는 것. 독자들은 단순한 그림 설명이 아니라 그 그림을 받아본 작가들의 상상력을 기대했을 텐데, 조금은 무성의한 듯한 글도 있다. 하기야, 그들도 자신을 제외한 마흔다섯명 작가의 글과 자신의 글이 이렇게 비교될 수 있다는 걸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그들은 그저 어느 날 우연히 편지봉투 안에 동봉된 그림 한 장을 받아봤을 테니까. 그 글들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서 서점에 풀리는 날, 그들은 땅을 치며 후회했을 수도 있다. 그 중 뛰어난 작품 순위를 매겨보는 건 독자들이 가질 수 있는 즐거운 덤이다. 임금 없는 데서는 흉도 마음껏 볼 수 있다는데, 하물며 작가들 순위 매기고 흉 보는 거야 뭐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 아, 밀란 쿤데라의 글은 단연 돋보인다. 개인적으로 그를 워낙 좋아해 콩깍지가 내 눈을 덮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밀란 쿤데라라면 그 정도 콩깍지는 얼마든지 괜찮지 않은가!!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이 책을 덮은 날, 그림을 배워볼까 생각했다. 마침 새해도 됐겠다, 고등학교 때 그림을 못 배워 미대를 못 간 게 못내 서운하기도 했겠다, 그리고 '책그림책'도 읽었겠다... 이보다 더 근사한 이유가 어디 있을까. 두고두고 이 책을 펴보며, 글보다는 그림을 보며, 기분 내킬 땐 이젤 앞에 앉아서 오후 시간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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