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까지 해온 여행은 과정을 무시한 목적지 위주의 여행이었다. 그게 얼마나 바보 여행이었던가를 알 것 같았다. 어디를 가기로 정하면 먼저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갈 수 있는 교통편을 강구하고, 가면서 통과하게 되는 고속도로나 국도변의 풍경은 가능한 한 빨리 스치는 게 수였다. <남도기행>-12쪽
먼저 거둔 고추가 가득 널린 툇마루에 내가 딴 한 소쿠리의 고추를 보태면서 옛날 우리 할머니 말씀이 생각났다. 할머니는 기도 같은 건 하실 줄 몰랐지만 "그저 땅이 화수분이다"라는 소리를 잘하셨고, 그럴 때마다 경건한 얼굴이 되곤 하셨다.<남도 기행>-19쪽
언덕에서 하회 마을을 내려다보면 풍수지리설에 쥐뿔만큼도 아는 게 없는 주제에도 옛사람의 집터 잡는 안목에 감탄과 신비감을 느끼게 된다. 옛사람이 집터를 잡는다는 건 당장 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앞으로 몇백 년을 두고 후손이 번창할 자리를 잡는다는 뜻이었다. <하회마을 기행>-31쪽
청년은 <토지>를 읽었을까? 나는 그때 그걸 물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게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어떤 문학이 그 문학을 낳은 땅의 구석구석 이름 없는 촌부의 마음속에까지 드높은 자존심을 심어줄 수 있다면 그건 얼마나 굉장한, 전율스럽기조차 한 일인가. <섬진강 기행>-34쪽
옛날 돌다리나 나무다리처럼 난간 없이 낮게 걸린 다리가 있기에 내려가 보았다. 역시나 섬진강이었다. 밑에 깔린 자갈을 일일이 셀 수도 있을 만큼 투명하고, 송사리 떼가 희롱하듯 노니는 것은 물풀이나 자갈이 아니라 거꾸로 잠긴 푸른 하늘 위 나부끼듯 가벼운 새털구름 사이였다. 송사리도 그쯤 되면 신선놀음 아닌가. <섬진강 기행>-42쪽
모든 것은 돌고 돈다. 가장 앞서갔다고 생각되는 게 가장 처진 게 될 수도 있다. 지금 가장 낙후된 고장처럼 보이는 것이 가장 앞선 희망의 땅이 될 수도 있다. 발전이란 이름으로 만신창이가 된 국토에 마지막 남은 보석 같은 땅이여, 영원하라. <섬진강 기행>-48쪽
여행 와서 식 호텔이나 식당 밥만 먹지 않고 그 고장 사람의 가정에 초대받아 가정 음식을 먹어볼 수 있는 것은 큰 복이었다. <중국, 백두산 기행>-77쪽
농업을 전적으로 강우량에 의지하던 고장이 장기간의 한발로 메말라가는 모습은 기아로 죽어가는 사람의 모습과 어쩌면 그렇게 비슷한지, 우리가 곧잘 쓰는 신토불이가 우리하고는 다른 뜻으로 딱 들어맞고 있었다. <에티오피아 방문기>-123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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