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 알랭 드 보통의 유쾌한 철학 에세이
알랭 드 보통 지음, 정명진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5월
구판절판


소크라테스: 한 남자가... 훈련을 신중하게 받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그는 모든 사람들이 보내는 찬사와 비난, 그리고 의견에 마구잡이로 관심을 기울일까, 아니면 그럴 만한 자격을 갖춘 사람, 이를테면 의사나 트레이너의 의견에만 관심을 가질까?

크리톤: 자격을 갖춘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겠지.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그 선수는 자격 있는 한 사람의 비난을 두려워하거나 칭찬은 환영하겠지만, 일반 대중의 소리에는 꿈쩍도 않겠지.

크리톤: 분명 그렇겠지.

소크라테스: 그 선수는 대중의 의견이 아니라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지도자의 판단에 따라 자신의 행동과 운동, 그리고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을 통제해야만 하는 거야.

<인기 없음에 대한 위안>-56-57쪽

독서는 괴롭기 짝이 없는 게으름의 짓누름으로부터 나를 해방시켜준다. 그리고 언제라도 지루한 사람들로부터 나를 지켜준다. 고통이 엄습할 때도 그 정도가 매우 심하거나 극단적이지만 않다면 그 날카로운 예봉을 무디게 만든다. 침울한 생각으로부터 해방되려면 그냥 책에 기대기만 하면 된다.

<부적절한 존재에 대한 위안>-186쪽

몽테뉴의 암시에 따르면, 학자들이 고전에 그토록 많은 관심을 쏟는 이유는,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이름과의 연결을 통해 자신을 지적인 존재로 비치고 싶은 허영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 결과 일반 대중은 학식만 높고 현명함에서는 크게 처지는 책들을 산더미처럼 많이 마주하게 되었다.

<부적절한 존재에 대한 위안>-264쪽

사랑이 갖는 가장 심오한 미스터리의 하나는 '왜 하필 그 사람인가?'와 '왜 하필 그녀인가?'다. 하고많은 후보자들 중에서 우리의 욕망이 바로 이 존재에게 그토록 강하게 달라붙는 이유는 뭔가? 그들이 저녁식사를 하면서 나누는 대화가 가장 계몽적이지도 않고, 그들의 습관 또한 가장 적절한 것도 아닌데 다른 모든 사람을 제쳐두고 서로를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이유는 뭘까? 그리고 훌륭한 의도임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객관적으로 보아서 매력적이고 또 함께 살기에 더 편할 수도 있을 법한 다른 어떤 사람들에게는 성적 관심을 품지 못할까?

<상심한 마음을 위한 위안>-298쪽

사랑이란 것은... 성적 관심은 별도로 하더라도, 혐오스럽고, 경멸할 만하고, 심지어 상극으로까지 보이는 사람에게 자신을 맡기게 한다. 그러나 종의 의지는 개인의 의지보다 훨씬 더 강하기 때문에 그 연인은 자신의 것과 상반되는 모든 특질들에 눈을 감아버리고, 모든 것을 간과하고, 모든 것을 그릇되게 판단하고, 자신의 열정의 대상이 된 인물과 자신을 영원히 묶어버린다. 그런 환상에 빠진 사람은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는데, 그 환상은 종의 의지가 다 충족되고 나면 금방 사라지고 이젠 평생을 혐오하면서 살아야 할 파트너만 남게 된다.

<상심한 마음을 위한 위안>-302-303쪽

우리는 자신을 거부한 사람들을 용서하는 법을 일찌감치 배워야 한다. 어떤 사람이 상대방에게 서로가 더 많은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할 때, 그리고 아직은 상대방에게 미래를 약속할 만큼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사실을 서툴게나마 알려주려고 노력할 때,그 사람은 생에 대한 의지에 따른, 기본적으로 무의식적이고 부정적인 판단을 지적으로 보이도록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이성은 상대방의 특질들을 높이 평가할 수도 있지만 그의 생에 대한 의지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시비를 부르지 않을 방식으로 그렇게 말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아예 상대방에 대한 성적 관심을 비워버린다. 만약에 그런 그가 우리보다 훨씬 덜 지적인 사람에게 유혹당한다 해도 우리는 그를 천박한 존재라고 손가락질해서는 곤란하다. 쇼펜하우어가 설명하듯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기억해야 한다.

결혼에서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지적 유희가 아니라 아이의 출산이다.

<상심한 마음을 위한 위안>-308쪽

쇼펜하우어에겐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려는 의도는 없었다. 오히려 비통함을 불러일으키는 헛된 기대들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풀어놓으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사랑이 우리를 낙심하게 만들 때, 사랑의 본래 계획에는 행복이란 절대로 없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겠는가. 역설적이게도, 가장 염세적인 사상가들이 가장 쾌활할 수도 있는 법이다.

<상심한 마음을 위한 위안>-312-313쪽

처음에 나는 (쇼펜하우어의 책을) 무슨 버러지를 집듯이 집어 들고는 책장을 넘겼다. 어떤 수호신이 나를 향해 '이 책을 집에 가져 가거라'라고 속삭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절대로 책을 서둘러 사지 않는 나의 버릇과는 반대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나는 새로운 보물을 안고 소파 귀퉁이로 몸을 날리고는 그 역동적이고 음울한 천재에게 나 자신을 맡겼다. 행간마다 단념과 거부, 체념이 아우성치고 있었다.
(스물한 살 때 헌책방에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뽑아든 니체)

<곤경에 대한 위안>
-327-328쪽

니체에 따르면, 만약 대부분의 문학작품들이 <적과 흑>에 비해 작품성이 떨어진다면 그것은 그 작품의 작가들이 천재성을 결여해서가 아니라 작품을 창작하는 데 따르는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의 소설 작품을 남기려면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을 쏟아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곤경에 대한 위안>-3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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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찾아, 먼 길을 떠났다
한수산 지음, 이순형 그림 / 해냄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는데, 지날수록 더욱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다. 내겐 한수산이 그렇다. "비단결 같은 서정의 눈물방울"이라며 <부초>에 대한 추천사부터 그럴싸해 마음을 붙잡더니만, 그 작품을 읽은 후론 아예 마음 속을 아프게 헤집고, 뒤이어 읽는 작품마다 하나같이 마음에 들어온다. 이 책 역시 서정적이고 겸손한 마음이 그득 배어 있다.

혹자는 겸손이 최고의 미덕이라던데, 한수산에 이르러선 겸손은 최고의 매력이다.

겸손 말고도 그의 매력은 무궁무진한데, 그 중 제일은 니코스 카찬차키스와 다자이 오사무를 향한 극한 애정. 괜한 공감대를 발견하곤 매력지수 급상승이다. 카찬차키스의 빛나는 문장과, 다자이 오사무를 찾아 떠나는 여행기는 그래서 더 고맙다. 두 대작가가 한수산에게 미친 영향도 영향이겠지만, 한수산의 글을 읽다 보면 두 대작가도 한수산에게 어느 정도는 고마워해야 할 듯하다. 비단결 같은 서정의 눈물방울로 묘사해 줬는데 고맙다고 꾸벅 한 번 인사하는 게 대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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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찾아, 먼 길을 떠났다
한수산 지음, 이순형 그림 / 해냄 / 2006년 9월
절판


'사랑이란
어쩔 수 없었다는 것밖에 아무것도 아니다.'

<어쩔 수 없었기에, 사랑했다 - '모래 위의 집'의 경미>-35쪽

'끝 모를 심연에서 태어나 끝 모를 심연으로 사라져 가는 우리들. 그 사이의 빛나는 시간이 인생이다' (니코스 카찬차키스)

<어쩔 수 없었기에, 사랑했다 - '모래 위의 집'의 경미>-38쪽

다자이 오사무의 비극은 그가 산 시대나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연출한, 거기에는 작위의 냄새가 난다. 목숨을 가지고 벌인 유희인가.

<그의 고향에서 만나는 다케라는 이름의 하녀>-188쪽

나도 이제 세월이 가는 것을 몸으로 느끼는 나이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떨어지는 시력이 그것을 느끼게 한다. 돋보기 안경의 도수를 높이면서, 이제는 세상의 큰 것만 보라는 뜻이로구나 생각한다. 작은 글씨를 읽지 않고도 행간을 의미를 헤아릴 수 있는 나이.나도 그 나이가 되어 있지 않은가.

<창밖에는 자작나무>-3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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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일에는 늦음이 없다 - 한수산 산문집, 사막에서 쓴 편지
한수산 지음 / 이레 / 2001년 5월
평점 :
절판


그는 이 책에서 철저하게 아버지의 모습이다. 아름다운 아버지. 이 아들, 솔직하게 말하면 부러워 죽을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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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일에는 늦음이 없다 - 한수산 산문집, 사막에서 쓴 편지
한수산 지음 / 이레 / 2001년 5월
절판


말이 가난할 때, 우리는 운다. 그 무엇으로도 말할 수 없기에. 차마 말로 말할 수 없을 때 우리는 다만 소리친다. 아아아 또는 오오오 해도 좋으리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말의 부족함을 알 때 우리는 서로를 껴안는다.

<삶은 시간이라는 사막을 가는 것이다>

-30쪽

자라 있는 손톱을 보니
집 떠나온 지 오래임을 알겠다.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의미>-97쪽

퍼렇게 가슴 저 밑바닥에 멍이 들어서 꿈꾸듯 보랏빛으로 앉아 있던 나는 어디로 간 것일까.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108쪽

세월이 흘러서 같은 강가에 다시 가 설 수는 있지만 같은 강물에 다시 손을 담글 수는 없는 것과 같지.
그래서 그리스의 작가 카잔차키스는 만년에 거리에 나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몇 분씩만 시간을 줄 수 없냐고 구걸을 하고 싶어했었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서 5분씩만 꾸어서라도 자신의 마지막 작품을 끝낼 수 있는 시간을 얻고 싶어했어.

<삶에 아름다운 창문을 내는 법>-194쪽

누군가는 말한다. 끝이 있기에 영원하다고. 끝이 있기에 그 현장은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영원으로 남는 거라고. 그래서 내 안에서 누군가가 말한다. 그렇다고 끝이 있는 것이 영원하다고. 사랑도 헤어짐이 있을 때 비로소 영원한 것으로 가슴에 남는다고.

<내 안에서 숨쉬는 사막>-2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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