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가난할 때, 우리는 운다. 그 무엇으로도 말할 수 없기에. 차마 말로 말할 수 없을 때 우리는 다만 소리친다. 아아아 또는 오오오 해도 좋으리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말의 부족함을 알 때 우리는 서로를 껴안는다.
<삶은 시간이라는 사막을 가는 것이다>
-30쪽
자라 있는 손톱을 보니 집 떠나온 지 오래임을 알겠다.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의미>-97쪽
퍼렇게 가슴 저 밑바닥에 멍이 들어서 꿈꾸듯 보랏빛으로 앉아 있던 나는 어디로 간 것일까.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108쪽
세월이 흘러서 같은 강가에 다시 가 설 수는 있지만 같은 강물에 다시 손을 담글 수는 없는 것과 같지. 그래서 그리스의 작가 카잔차키스는 만년에 거리에 나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몇 분씩만 시간을 줄 수 없냐고 구걸을 하고 싶어했었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서 5분씩만 꾸어서라도 자신의 마지막 작품을 끝낼 수 있는 시간을 얻고 싶어했어.
<삶에 아름다운 창문을 내는 법>-194쪽
누군가는 말한다. 끝이 있기에 영원하다고. 끝이 있기에 그 현장은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영원으로 남는 거라고. 그래서 내 안에서 누군가가 말한다. 그렇다고 끝이 있는 것이 영원하다고. 사랑도 헤어짐이 있을 때 비로소 영원한 것으로 가슴에 남는다고.
<내 안에서 숨쉬는 사막>-2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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