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구판절판


매일 아침 두꺼비 한 마리를 삼켜야만 하루 종일 그보다 더 역겨운 일을 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샹포르(프랑스의 극작가, 좌담가)의 격언...-16쪽

가계에 파탄을 일으킬 정도로 돈이 많이 드는 긴 여행이 열대의 바람에 살짝 기울어진 야자나무 사진 한 장으로부터 시작될 수도 있다...-18쪽

여행은 비록 모호한 방식이기는 하지만, 일과 생존 투쟁의 제약을 받지 않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다.-18쪽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 우리 눈 앞에 보이는 것과 우리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기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다른 경우라면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으면 술술 진행되어나간다.-83쪽

모든 운송 수단 가운데 생각에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것은 아마 기차일 것이다. 배나 비행기에서 보는 풍경은 단조로워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지만, 열차에서 보는 풍경은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 열차 밖의 풍경은 안달이 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그러면서도 사물을 분간할 수 있을 정도로 느리게 움직인다. 이 풍경을 통해 우리는 잠깐 사적인 영역들을 보고 영감을 얻기도 한다.-84쪽

우리는 사랑의 감정이 상대가 빵에 버터를 바르는 방식에 닻을 내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도 하고, 또 상대가 구두를 고르는 취향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움찔하기도 한다.-106쪽

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 모두는 태어날 때 바람에 흩뿌려져 이 나라 저 나라에 태어났다. 그러나 플로베르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어른이 되면 상상 속에서 우리의 충성심이 향한 대상에 따라 우리의 정체성을 재창조할 자유를 얻는다.-138쪽

소크라테스는 어디 출신이냐는 질문을 받자 "아테네"라고 하지 않고 "세계"라고 대답했다.-139쪽

여행은 피상적인 지리적 논리에 따라 우리의 호기심을 왜곡한다. 이것은 대학 강좌에서 주제가 아닌 크기에 따라 책을 권하는 만큼이나 피상적이다.-173쪽

사람이 아무리 느리게 걸어 다니면서 본다 해도, 세상에는 늘 사람이 볼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 빨리 간다고 해서 더 잘 보는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귀중한 것은 생각하고 보는 것이지 속도가 아니다.-301쪽

매력적인 장소는 보통 언어의 영역에서 우리의 능력이 모자란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313쪽

인간의 불행의 유일한 원인은 자신의 방에 고요히 머무는 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팡세>, 단장 136.-3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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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정원 일의 즐거움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이레 / 2001년 10월
평점 :
절판


참으로 이상한 일.

혹자가 본다면 <월든>이나 <정원 일의 즐거움>이나 성향이 비슷하다고 여기겠지만, 나는 왜 <월든>은 내 인생 최고의 책이고, 이 책엔 그다지 애정이 가지 않는 것일까.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애정이 가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너무나 읽히지 않던 책이다. 거의 3개월간을 펼쳐놓기만 하고 다 읽지 못하다가, 빚쟁이한테 쫓기는 느낌 때문에 할 수 없이 정독해버렸다. 하지만 법정스님은 감명을 준 세 권의 책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에 <걷기 예찬>, <할아버지의 기도>, 그리고 이 <정원 일의 즐거움>을 꼽아 버리셨구나. 나는 법정스님만큼 착한 사람이 아니니, 이 책 나한텐 별로였다고 그냥 고백해 버릴란다. 

하지만 좀 더 나이가 들면 재미가 붙을 수도 있겠으니, 한 10년 후 다시 한 번 읽어보아야겠다. 고등학교 땐 그렇게도 재미없고 지루하던 염상섭의 <삼대>가 서른줄에 들어서 읽으니 굉장히 재미있었던 것처럼, 책을 만나는 나이도 참 중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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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정원 일의 즐거움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이레 / 2001년 10월
절판


그리고 끝으로 가장 좋은 상대를 말하자면, 내 작은 집의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많은 책들이다. 그들은 내가 깨어나고 잠이 들 때, 식사할 때나 일을 할 때, 좋은 날이나 궂은 날에나 내 곁에 있다. 그들은 나한테는 마치 친숙한 얼굴들과도 같이 고향집에 있는 듯한 기분 좋은 환상을 불러일으킨다.-67-68쪽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건 바로 체념했다는 뜻이다.-2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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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만 아름다워도 꽃대접을 받는다
이윤기 지음 / 동아일보사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이윤기 작가가 곧잘 쓰는 표현 중에 "얼굴에 모닥불 묻은 심정으로"라는 말을 굉장히 좋아한다. 이 책의 내용 중 상당수는 아마도 그렇게 얼굴에 모닥불 묻은 양 화끈거리는 마음으로 쓰여졌을 터. 그만큼 솔직하다는 얘기고, 그만큼 들을 얘기가 많다는 얘기다.

이 책 역시 홍대 벼룩시장에서 운좋게 구한 책. 이윤기 작가의 책은 절판된 게 많은데 나는 벼룩시장에서 운좋게 많이 구해들였다.

역시나 헌책도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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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만 아름다워도 꽃대접을 받는다
이윤기 지음 / 동아일보사 / 2000년 7월
구판절판


왕래소통이 자유로워지면 물이 단 우물에 사람이 꾀어 먼저 마르기 마련인 것이다.-13쪽

'부르주아(bourgeoisie)'는 '부르', 즉 성 안에 사는 정신 노동자라는 뜻이다. 부르주아에 반대되는 계급은 프롤레타리아, 라틴 어로 '자식 밖에는 나라에 바칠 것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42쪽

미국 사는 영어 교재 저술가 조화유씨는 영어를 발음할 때 R는 '으르', L은 '을르'로 발음하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제안한 적이 있는데 참 좋은 제안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은 일찍이 중학교 시절에 우리 친구들이 먼저 만든 법칙이기는 하지만...
엘비스 프레슬리가 불러서 아주 명곡으로 만든 노래 가사 첫머리를 이 법칙에 따라 우리 글로 표기하면 이렇게 된다.
"을러브 미 텐더, 을러브 미 스위트(Love me tender, love me sweet)."-110쪽

한 어리석은 사람이, 시냇물 소리가 하도 좋게 들려서 더 좋게 하려고 바위를 몇 개 들어 치워주었더란다. 그랬더니 시냇물에서는 더이상 소리가 나지 않더란다.
'수심'은 바위와 같은 것이다. (아리랑 2절의 '수심' 이야기)-150쪽

눈물을 뜻하는 한자에는 루(淚)와 루(?), 두 가지가 있는데 전자는 흐르거나 떨어지는 눈물, 후자는 괴어 있는 눈물이다. 노래방에는 전자가 있을 뿐, 후자는 없다. 괴는 족족 흘려보내는 시대, 물소리 지어낼 바위 하나 없는 이 시대가 나는 싫다.-156쪽

얼굴에 모닥불 묻은 심정으로 고백한다.-1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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