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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서 읽다
김혜형 지음 / 낮은산 / 2017년 7월
평점 :
'담담한 문체로 담아낸 담백한 일상묵상집'.
대부분 사람들은 일상을 당연하게 살아가지만, 글쓴이에게 일상은 범상하다. 벌레 하나에서부터 들꽃, 나무, 새, 그리고 하늘의 별까지 모두 다 깊은 깨우침을 준다. 글쓴이는 종교인들의 경전처럼 일상을 살피고 깨달은 바를 적었다.
읽는 내내 참 좋았다.
이런 저런 걱정과 염려로, 흐려진 내 삶의 의미를 맑게해 주었고, 흐트러진 내 삶의 자세를 단정하게 만들었다. 오래전에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을 때, 받았던 느낌과 비슷하다.
집 근처 도서관에서 빌려서 다 읽었다. 그리고 서점에서 새책을 사기로 마음 먹었다. 가까이 두고 자주 볼 책이다. 그런 책이다.
아는 거라곤 고작 쑥과 냉이와 민들레뿐인 도시내기의 자연살이 첫 시작은 ‘온통 모를 뿐‘, 내가 모른다는 걸 알뿐이었습니다. - P18
풀들은 작물을 키우는 입장에서 보면 제거해야 할 잡초겠지만, 그 본연의 기운과 성질을 우리 몸에 잘 받아들이면 음식이자 보약이에요. - P22
그저 주는데, 사람의 바르고 그름, 맑고 흐름을 가리지 않고 그저 내어 주는 데, 그걸 감사히 얻어먹지 않고 자꾸 내 것, 내 소유로 삼으려 하는 탐욕을, 손에 쥐고 있어야 한심이 되는 이 불안을 내가 지켜보고 있는 거지요. - P38
키 작은 민들레가 키 큰 접시꽃을 부러워하지 않듯,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신의 고유성에 집중할 때 삶은 꽃처럼 피어납니다. 다른 꽃과 비교해 초라한 꽃이란 세상 어디에도 없어요. 풀들처럼 꽃들처럼, 나도 주어진 한 목숨 제몫을 다해 살 뿐이에요. - P51
둥지는 하나가 아니고 고정되어 있지도 않아요. 현실의 공간뿐 아니라 마음의 구석 자리에도 그것은 숨어 있어요. 한때는 영원히 머무르고픈 애착의 거처였으나 결국 떠남으로써만 의미가 완성되는 그것, 그러므로 제 몫을 다한 후 소멸하는 것은 둥지의 운명입니다. 필멸 위에 생성이지요. - P67
정밀하고 적확한 언어로 표현할 능력은 없다손 치더라도 최소한 밀도 있는 경험치가 내재되었을 때 ‘공감‘이라는 사건 혹은 정서적 도약이 일어납니다. 그 경험이 바야흐로 ‘나의 언어‘로 말해지려면 대상에 대한 시선과 정서가 깊은 데까지 이르러야 가능할 테고요 - P73
내 인생의 몇 개 안되는 봄, 그 가운데 한 개의 봄입니다. 이제 옛 생각으로 울지 않아요.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지금 이 순간을 기뻐하고 감사할 뿐. 사람의 한편생, 아흔 개의 봄 보기가 어렵습니다 - P79
선입견과 거부감, 쉬운 단정, 게으른 합리화의 습관을 멈추고 결과 앞에서 과정과 맥락을 들여다보는 태도, 존재의 심연에 닿고자 하는 열망과 호기심이야말로 사물의 겉모습을 뚫고 본질을 파악하나는 출발점이자, 너와 나 사이의 이해와 공감을 넓히는 첩경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P93
흙은 무의미하게 정지해 있는 비활성의 세계가 아니에요. 작은 생명체들의 보금자리이자 은신처이고,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먹이사슬의 소우주이며, 박테리아와 곰팡이에 의해 죽음이 삶으로 재생되는 부활과 윤회의 공간입니다. - P99
세상의 모든 영역을 다 알거나 다 체험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내가 알지 못한다는 그 사실만을 잊지 않기를, 아이 같은 호기심으로 배울 수 있기를, 좀 더 나은 존재로 진화하기를, 그리하여 광대한 우주 속 티끌의 일부, 촘촘한 연관 속에 기대고 사는 작은 그물코 하나, 그 미약하지만 고귀한 자리에 나라는 존재가 잠시 서 있다 갈 수 있기를 빌 뿐입니다. - P112
다른 생명에게 가혹할 때 인간은 황폐해집니다. 나와 이 세계는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 P132
마음을 준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존재가 변화하는 일입니다. 사랑받는 상대가 아니라 사랑하는 내가 달라지지요. 생의 충동과 열정이 내면에서 일고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시선을 획득하게 됩니다. 그때의 나는 이전의 나와 다른 존재예요. 우리는 상대를 통해 진화합니다. - P204
우리는 뒹구는 돌들의 형제며, 떠도는 구름의 사촌이다. - P233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믿지 못하면 아무리 많이 읽어도 결핍을 메울 수 없습니다. - P272
없음과 없음 사이에서 우리는 있음으로 만났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 우리가 맺은 관계, 우리가 나누는 사랑, 이 모든 것이 찰나의 기적이라는 것을 이제 알았습니다. -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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