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참척'에 관한 것이다

'참척'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된 단어다. 뜻을 찾아보니 한자 참척(慘慽)의 뜻은 '자손이 부모나 조부모보다 먼저 죽는 일'이다. '참척'은 잠척(潛着)에서 온 말로 뜻은 '한 가지 일에만 정신을 골똘하게 씀'이다. 이 책은 참척(慘慽)을 겪고 그 일에 잠척(潛着)하며 살았던 기록이다.

  

박완서 작가님은 참척을 겪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지 255개월밖에 안된 아들이 19888월에 죽었다. 아들의 죽음 이후에 '만일 내가 독재자라면 88년 내내 아무도 웃지도 못하게 하련만. 미친년 같은 생각을 열정적으로 해본다.'(17)라는 글귀처럼 고통과 절망, 그리고 분노 속에 지낸 박완서 개인의 내면 기록이다.

 

납득할 수 없고, 감당할 수도 없는 절망 속에서 세상을 향해 분노하다 신을 향해 포악을 떨다가도 '한 말씀만 하소서'라고 신의 도움을 간절히 구한다. 하지만 끝내 신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밥이 되어라' 사제관 응접실 탁자 위에 놓인 백자 필통에 쓰인 글귀를 보고 이전에 자신이 경험했던 일들 속에 신의 응답이 담겨 있었음을 깨우친다.

 

그리고 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박완서 작가는 조금씩 다시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게 된다. 그녀가 '다시 글을 쓰게 됐다는 것은 내가 내 아들이 없는 세상이지만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는 증거와 다르지 않다는 것'(173) 이었다.

  

책을 내내 몇번이고 한숨이 터져나왔다. 가슴이 답답했다. 그리고 불현듯 '글을 쓴다는 것이 정말로 위대한 일이다'는 생각이 올라왔다. '주여 저에게 다시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주여 너무 집착하게는 마옵소서' (174) 이 고백이 내 입술에서 나오는 날이 오기를 감히 기도해본다.

만약 내 수만 수억의 기억의 가닥 중 아들을 기억하는 가닥을 찾아내어 끊어버리는 수술이 가능하다면 이 고통에서 벗어나련만. 그러나 곧 아들의 기억이 지워진 내 존재의 무의미성에 진저리를 친다. - P26


주여 저에게 다시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주여 너무 집착하게는 마옵소서. -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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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여, 그 숲을 떠나지 마오
박완서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199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아껴서 읽었다

내 사인과 전화번호가 책 속표지에 적혀 있다. 이 책을 살 때 적었던 거 같다. 15여 년 전에 사용했던 전화번호다. 발행일을 보니 2006년이다. 대략 15년 전에 이 책을 샀다. 왜 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게 잊혀졌다.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고 읽기 시작한 것이 올해 21일이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다 읽었다. 책을 빨리 읽는 편인데 이 책은 그러지 않았다. 찬찬히 곱씹으며 읽을 내용들이었다. 아껴서 읽었다.

 

 

배우며 읽었다

이 책은 천주교 <서울주보>에다 그 주일의 복음을 묵상하고 쓴 '말씀의 이삭'을 모은 것이라고 머리말에 밝히고 있다. 성경말씀을 묵상하고 썼다. '성경을 기록할 당시의 삶의 자리'에 관한 해석이나 설명이 아니라 성경으로 '오늘 우리의 삶의 자리'를 성찰하는 묵상집이다. 묵상의 깊이가 40여년 동안 내가 들었던 그 어느 설교보다 넓고 깊고 높다. 배우며 읽었다.

 

 

삶을 읽었다

설교를 들으며 힘들 때가 많다. 성경 말씀을 깊이 연구하지 않고 제 마음대로 해석하고 다른 이들의 삶을 존중하지 않고 함부로 판단하는 설교가 적지 않다. 무지하고 무례한 설교다. 그런 설교를 듣는 이들이 '아멘, 아멘'하는 모습을 보며 절망할 때가 많았다. 성경과 자연, 사람을 관찰하고, 자신을 성찰하기에 힘쓰는 이만이 삶을 통찰하는 메세지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삶을 통찰하는 메세지가 이 책에 담겨 있다. 나는 이 책에서 관찰하고 성찰하고 통찰하는 삶을 읽었다.

각자 자기를 단련하지 않는 사람들의 모임이란 공동체라기보다는 오합지중이 되기 쉽다. 공동체가 다수에게 이익이 되는 공동선을 추구하는 대라면, 오합지중은 덮어놓고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게 돼 있는 무의식 대중의 집합체다. - P115

거룩한 것은 정신을 고양시키지만 공포는 정신을 억압해 황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 P77

유다는 당신을 팔아 먹을 수도 있다는, 당신의 상업적 가치에 눈뜬 최초의 크리스트 세일즈맨이었습니다

모든 아기들은 태어날 때 아기 예수를 닮게 태어났건만 예수님을 닮은 어른은 참으로 드뭅니다. 있을 리가 없지요. 우리가 용의주도하게 죽였으닌까요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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