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북촌에 갔다. 아내는 초대받은 모 향수 체험 행사에 참여하러 갔다. 1시간여 진행되는 행사라고 했다. 아내를 기다리는 동안 뭘 할까 생각하다가 근처 정독도서관으로 갔다.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는데 몇 번 지나가기만 해서 아쉬웠는데 마침 잘 됐다 싶었다.
정독도서관은 건물 앞에 넓은 정원이 있었다. 여러 도서관을 가봤는데 대부분은 도서관 건물에 주차장만 있는 곳이 많다. 내가 가본 곳 중에 정독도서관처럼 넓은 정원이 있는 곳은 국립중앙도서관, 정약용도서관 정도였다. 정원이 산책할 수 있도록 잘 정리되어 있었고 쉴 수 있도록 의자들도 많았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외관은 조금 오래돼 건물이었는데 내부는 아주 깨끗했다. 도서관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들 안내도 아주 잘 되어 있었다. 안내도를 참고하며 어디로 갈까 하다가 어문학 도서 서재로 갔다.
무슨 책을 읽을까 이 책 저 책 보다가 '배려의 말들'이라는 책을 빼서 읽었다. 글쓴이 류승연 님이 장애 아이를 낳아 함께 살면서 깨달은 바를 썼다. 배려와 관련된 문장들을 소개하면서 자신의 체험과 생각들을 적었다.
책을 읽으면서 타인을 함부로 규정하고 멋대로 판단했던 내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아 참 많이 부끄러웠다. 배려라는 이해에서 시작되고, 이해는 존중할 때 가능한 것임을 깨달았다.
아내와 약속한 시간이 다돼서 도서관에서 나왔다. 북촌에 올때면 종종 들러야겠다 생각했다. 아내와 점심을 먹고 북촌 산책 길에 우연히 '북촌문화센터'을 구경했다. 알고 찾아간 것은 아니다. 음식점들 사이에 한옥으로 된 입구가 눈에 띄어서 호기심에 들어갔다. 북촌문화센터는 북촌을 소개하고 한옥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아주 잘 꾸며진 공간이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서 더 좋았다. 나는 한옥 중에서 마루가 참 좋다. 특히 마루에 걸터앉아서 쬐는 햇빛이 그리 좋다. 오랜만에 마루에 걸터앉아 잠시 쉬었다.
그런데 몇 시간 전에 정독도서관에서 '배려'를 읽고 와서 그런지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 하나가 계단이다. 북촌문화센터 안쪽 건물을 보려면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2개 밖에 안되는 계단이다. 단 높이가 조금 높기는 하지만 비장애인들은 가볍게 올라갈 수 있다. 그런데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들이나 어린 아이들이 오르기 힘들거 같았다. 휠체어 장애인은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경사로를 설치해서 휠체어 장애인들 뿐만 아니라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들도 편하게 이용하도록 하면 좋겠다.
건물 간 간격도 넓지 않았다. 비장애인들은 이용하기에 불편하지 않다. 그런데 휠체어가 간신히 지나다닐 정도여서 휠체어 장애인들이 이동하기에는 아주 많이 불편할 거 같았다. '배려'라는 책을 읽지 않았다면 보지 못했을 것들이 보였다. 책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