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삼일절 기념사 때문에 뒷목을 잡았는데 오늘은 노조 때려잡기('사쪽 불법 신고' 5배 많아도... 정부 자문단은 "노조 처벌 강화", 한겨레, 2023.03.03) 때문에 뒷목 잡았다. 워워 진정하자, 혈압 떨어지니까. 그냥 신문을 그만 보자, 생각만 한다. 애초 신문을 보게 된 까닭은 정희진 쌤이 <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에서 종이 신문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희진 쌤을 따라 논조가 다른 두 종의 종이 신문을 구독했다. 그러나 그릇이 작은 나는 내 구미에 맞는 한 종만 열중해서 읽게 되었고, 버려진 한 종은 짝꿍이 읽는다. 나와 가장 가까운 이들의 정치 성향은 모두 나와 다르다. 그래서 선거일에는 사죄하는 마음으로 투표소에 간다. 엄마, 아빠, 동생, 짝꿍까지 총 네 표 대 한 표라고 생각하면 도저히 기권할 수 없다. 물밑으론 넷의 투표 불참을 독려한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기는 진즉에 포기했고, 정치 얘기는 안 하면 그만이다. 내 인생에 없어서 아쉬운 건 책과 책 이야기에 과몰입해줄 지음인데 오프라인에 없으면 온라인에서 찾자는 마음으로 여러 플랫폼을 전전했다. 그중 가장 꾸준히, 가장 활발하게 사용했던 플랫폼은 브런치와 인스타그램이다.
각 플랫폼은 이용자에게 특정한 페르소나를 요구한다.
브런치가 요구하는 것은 직업적 전문성, 특별한 경험, 따뜻한 감성 같다. 내게 문제가 되었던 건 그놈의 감성이다. 타인이나 타인의 일상을 편향적/침해적으로 관찰하는 관음증적 시선을 연민과 선의로 포장하는 데는 도저히 면역이 되지 않았다. 구독자 천 명이 넘어간 이후로는 별일이 다 있었는데, 모르는 사람이 진로 상담을 한다든가(유학원에 가세요), 연락이 끊겼던 지인이 글을 통해 나를 알아보고 "이거 혹시 너야?"하며 묻는다든가, (전) 직장에서 상사가 내 글임을 알아보고 방으로 불러 주의를 준다든가 하는 것이었다. 내 가치관(결혼? 하지 않습니다, 아이? 낳지 않습니다)과 관련된 글에 어마어마한 혐오 댓글이 달리기도 했는데 결정적으로 이 사건이 낙타의 등뼈를 부러뜨린 마지막 지푸라기가 되었다. 브런치 안녕. 그동안 더러웠고 다신 보지 말자.
인스타는 이용자에게 가장 피상적이고, 가장 과시적이고, 가장 그럴 듯한 면을 요구한다. 태생부터 '정직하게 쓰기'와는 화합하기 어려운 성질을 갖고 있다. 브런치에서의 교훈을 잊지 않고 연락처 연결을 차단한 계정을 사용했다. 어차피 책 얘기 뿐이라 아무리 인스타라도 결국 나와 비슷한 구석이 있는 사람들이 주로 모여들었고, 현실 지인보다 더 깊이 마음을 터 놓을 수 있는 소중한 사람들도 생겼다. 문제는 이번에도 팔로워 수였다(어떡하지 이 영향력?). 인스타 이용자들은 기브앤테이크에 민감하다. 나를 팔로우하는 사람을 나도 팔로우해야 하고, 내게 좋아요를 누른 사람에겐 나도 좋아요를 눌러줘야 하며, 내게 댓글을 달아준 사람에겐 나도 가서 댓글을 달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예의 없는 사람, 후안무치한 인간, 지밖에 모르는 것이 된다. 나중엔 앱에 접속하기가 싫어질 정도였다(제발 팔로우하지마, 제발 하트 누르지마, 제발 댓글 달지마, 제발 글 올리지마!!). 급기야 게시물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기계적으로 스크롤을 내리며 주욱 하트를 누르는 지경에 이르렀고,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이지? 자괴감이 들었다. 그놈의 글자 수 제한 때문에 다 못 적은 글을 내 게시물의 댓글로 다는 것도, '있어빌리티'가 뛰어난 사진을 찍어야 하는 것도 어차피 스트레스였다. 인스타그램 안녕. 그동안 더러웠고 다신 보지 말자.
그렇게 해서 흘러 흘러 이곳 알라딘 서재로 굴러 들어오게 되었다. 하필 내가 유입된 시점에 알라디너들이 투비로 납치되고 있다는 게 불행이라면 불행이나 그것 빼곤 다 맘에 든다. 평균적으로 게시글의 품질이 매우 높고, 외부로 노출될 가능성(구독자나 팔로워를 끌어들이다 못해 현실 지인에게 발각될 가능성)이 현저히 낮으며, 모두가 책을 사랑하고, 과격하게 책을 지르며, 책 얘기를 하는 세상. 뭐야? 여기 천국인가? 무엇보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소수의 친구들의 글을 숙독할 수 있다는 점, 스스로를 과도하게 검열하지 않고 쓰고 싶은 대로 쓸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다. 어차피 여기 여성주의나 철학을 톺는 사람들은 수두룩하고, 심지어 급진적이고 과격할수록 좀 더 응원을 받는 모양으로.. 이제 보니 나는 좀 많이, 점잖은 편이었잖아? 아늑하다. 너무나 아늑하다. 그래서 멋대로 이곳을 떠다니다 앉을 자리로 정했고, 새삼 전입신고 도장부터 꽝 찍어둔다.
+ 텀블벅에서 이런 걸 후원해 보았는데.. 너무 영롱하지 않나요? 책의 낱장 모서리에 꼽아서 사용하는 고전 소설 모양 책갈피이다. 의외로 모서리가 날카롭고, 잘못하면 책이 망가질까봐 책장 사이에 꽂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예쁘니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