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사람으로 내가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미덕은 마감을 잘 지킨다는 것이다. 일 년 치 연재 글을 미리 통째로 준 적도 있다. 많은 연재와 출간을 하면서 언제나 마감을 지켜왔는데 유일하게 그러지 못한 책이 바로 <고전적이지 않은 고전 읽기>였다. 고전을 읽기도 힘든데 다른 시각으로 써야 한다니 엄두가 나지 않았었다. 계약을 없던 일로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는데 출판사 사장님의 독려와 이해 덕분에 간신히 써나가기 시작했다. 


대학 시절 중세 영어로 된 셰익스피어 소네트(14행시)를 수십편 암기하라는 대학 은사 님의 과제를 받고 나서 암담했던 시절이 떠올랐었다. 그런데 소네트도 <고전적이지 않았던 고전 읽기>도 막상 해보니까 되긴 되더라. 알을 깨고 나오는 고통을 겪었지만 내 책 중에서 가장 잘 풀린 책이 되었다. 세종 도서에 선정되기도 하고 5쇄도 찍었으니까.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을 통해서 나는 새로운 영역의 책을 쓸 수 있는 안목과 글쓰기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모름지기 글 쓰는 사람은 새로운 장르와 콘셉트에 도전해야 하며 그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성과는 반드시 있으리라는 확신을 주기도 한 책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다른 사람이 쓴 책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이 이제는 슬슬 지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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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12-21 15: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열심히 써 주시면 열심히 읽겠습니다. 새로운 도전 ! 응원합니다 소설가 박균호작가님 *^^*

박균호 2022-12-21 15:50   좋아요 1 | URL
아이코 응원감사합니다. ㅎㅎㅎ 기회가 되면 시도는 해보겠습니당...


은하수 2022-12-21 16: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소설 쓰기 도전 응원하겠습니다^^
도전! 파이팅!

박균호 2022-12-21 16:36   좋아요 1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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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stella.K 2022-12-21 19: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소설 쓰기가 소원인데 이번 생엔 없지 않을까 싶은데
박균호님께서 쓰시면 저도 한 번 고려를...ㅋㅋ
암튼 저도 응원합니다!^^

박균호 2022-12-21 19:20   좋아요 1 | URL
먼저 모범을 보여주소서 ㅎ

stella.K 2022-12-21 19:23   좋아요 1 | URL
아유, 선배님이 먼저...!
책을 저보다 한참 먼저 내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니.ㅋㅋ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열린책들 세계문학 20
토마스 만 지음, 홍성광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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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독일 문학이 독일 사람의 성향을 닮은 것처럼 지루하고 딱딱하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토마스 만이 쓰고 홍성광 선생이 번역한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읽는다면 독일 문학의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진지함이 매혹으로 다가오리라 확신한다. 중편 소설이지만 소설 전체를 암기하고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치민다. 이건 마치 주인공 아센바흐가 흠모한 미소년 타치오에 대한 사랑에 버금가는 추앙에 가깝다. 길지 않은 중편이지만 철학적이고 문학적인 아름다움과 통찰은 수십권의 대작에 뒤지지 않는다. 소설 전체가 한편의 아름다운 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자아와 유럽적인 영혼이 그에게 부여한 과제에 너무 마음을 빼앗긴 나머지 창작에 대한 의무감에 지나치게 압박을 받고 있어서 기분 전환하는 일을 너무 싫어했다. 그는 다채로운 외부 세계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293쪽> 이 부분을 읽고 내가 그토록 여행을 싫어하고 특별할 것이 없는 일상을 사랑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열정적이고 무조건적인 젊은 세대를 사로잡으려면 문제성이 있는 것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서 에센바흐는 어느 젊은이 못지않게 문제성이 많았고 무조건적이었다. 그는 정신의 노예가 되어 인식을 남용하였고, 종자로 쓰일 곡물을 찧어 가루로 만들었으며, 비밀을 누설하였고, 재능을 의심하였으며, 예술을 배반하였다. 303쪽> 젊은 친구를 이해하는 가장 공감이 되는 통찰!


<고독은 우리 안에 있는 독창성을 무르익게 하고 대담하고도 낯설게 하여 아름다움과 시를 낳게 한다. 321쪽> 이래서 유형 생활을 하던 도스토옙스키가 단 10분간만이라도 혼자 있을 자유가 없는 것을 가장 괴로워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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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준의 마음을 품은 집 - 그 집이 내게 들려준 희로애락 건축 이야기
구본준 지음 / 서해문집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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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준 선생님의 건축 이야기 책을 좋아했다. 선생님이 살아생전 페이스북 친구로 지냈는데 가끔 대화를 나누었다. 김중업 선생의 오래된 책을 자랑하자 ‘그 오래된 책을 가지고 계시군요’라고 말씀 하신 기억이 생생하다. 구본준 선생의 건축 이야기는 다정다감하고 재미나다. 특히 <구본준의 마음을 품은 집>을 감동적으로 읽었는데 이 책의 첫 꼭지로 이진아기념도서관을 다룬다.
미국 유학을 떠났다가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딸 이진아를 기념하기 위해서 아버지가 세운 도서관이 이진아기념도서관이다. 딸을 먼저 보낸 아버지의 심정을 누가 어떻게 헤아릴 수 있겠는가. 마침 서대문구에서 독립 기념 공원을 부지로 내놓아 사재를 털어서 건립했다고 한다. 여러 지자체를 마다하고 서대문구를 선택한 것은 공원 부지를 내놓았기 때문에 도시계획 따위로 도서관이 사라질 위험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도서관이 완공되자 아버지는 틈날 때마다 찾아서 휴지를 줍고 산책도 하면서 소일하신다고 한다.
이 사연 못지않게 감동적인 사연이 <구본준의 마음을 품은 집>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일독을 권한다.


이진아기념도서관에서 강의를 요청했을 때의 그 벅찬 감동이 잊히지 않을 것 같다. 11월 19일에 이진아 기념 도서관에서 강연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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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11-07 09: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이진아 도서관이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축하합니다. 강연 잘 하십시오.^^

박균호 2022-11-07 10:00   좋아요 1 | URL
네 감사합니다

바람돌이 2022-11-07 14: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구본준씨의 책들 좋아하고, 그분이 운영하는 블로그도 열심히 드나들면서 건축 이야기를 읽었었어요. 정말 너무 갑자기 어이없게 가셔서 지금도 많이 아쉬운분이네요.
이진아 기념 도서관에서 독특한 컨셉의 프로그램을 마련했네요. 왠지 신선한 느낌! 저걸 기획한분 누군지 모르지만 센스만점인분일듯해요. ㅎㅎ 거기에 박균호님의 강연은 정말 찰떡궁합입니다. ^^

박균호 2022-11-07 14:39   좋아요 1 | URL
아 그러셨군요 이번 주말이 마침 8주기 랍니다.

mini74 2022-11-07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을 위해 도서관을 짓고 청소하시는 아버님이라니 ㅠㅠ 그나저나 중년남성의 책읽기라. 낯설어요 ㅎㅎㅎ

박균호 2022-11-07 15:34   좋아요 1 | URL
네 저도 처름 보는 콘셉트 이네료
 

<찬란한 타인들>은 유이월 작가의 첫 소설이다.

모르는 작가가 쓴 첫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약간의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나는 유이월 작가가 SNS에 올리는 유머러스하고 재기발랄하며 돌직구처럼 대담한 글을 꾸준히 읽은 터라 두려움 없이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찬란한 타인들>을 주문했다.

하필이면 주말에만 가는 본가로 배송지를 선택한 탓에 일주일 내내 발을 동동 구르며 이 책을 읽고 싶어 했다. SNS에 재미있는 글을 대방출하는 한편 톡톡 튀는 아이템을 파는 자칭 거상이 쓴 소설이 무척 궁금하더라. 

우선 작가 소개를 읽었다. 매일 그녀의 글을 읽지만 지나온 행적을 모르기 때문이다. 문학을 전공했고 글과 관련된 여러 직업을 거쳤다고 한다. 미국에서 10년 동안 남편과 함께 살았고 지금은 한국에 산다. 빛나는 혹은 재미있는 순간을 발견하길 좋아한다고.

<찬란한 타인들>을 다 읽고 나서 저자 소개를 다시 읽었는데 내가 읽어본 가장 잘 저자 소개 글이라고 생각한다. 저술과 관련한 저자의 경험과 소설의 내용을 적확하게 암시하기 때문이다. 
 

찬란한 타인들
▲ <찬란한 타인들> 찬란한 타인들
ⓒ 자유문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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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며 재미있는 순간을 발견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대목이 눈에 띈다. 괴테는 인간은 누구나 특별하며 고귀한 존재라고 말했다. 인간은 누구나 각자만의 고유한 인생을 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인간이 살아온 행적은 한편의 드라마틱한 소설이다. 누구나 소설 같은 인생을 살지만 누구나 소설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빛나고 재미난 순간을 수도 없이 만나지만 유이월 작가처럼 그 순간을 기억하고 기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유이월 작가가 SNS에 글을 자주 올리는 이유도 알겠다. 그녀는 재미나고 신기한 순간과 에피소드를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작가에게 있어서 가장 큰 자산은 글솜씨보다는 '결정적인 순간'을 캐치하는 센스와 그 순간을 기록하는 성실함이라고 생각한다. 

<찬란한 타인들>은 신기하고 재미난 짧은 소설 모음집이다. 한 편이 몇 쪽에 불과하지만 그 속에 담긴 서사, 반전, 유머, 통찰은 하나같이 <백 년의 고독>과 같은 대작을 떠올리게 한다. 이 소설집의 가장 큰 매력은 인간의 다양성에 대한 통찰이라고 생각한다.

종종 문학마저 흑백논리에 매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해왔다. 등장인물을 선과 악으로 구분해서 쭉 그 길을 걷게 하는 구도는 식상하며 현실감도 떨어진다. 유이월 작가는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하면서도 미워한다고 말한다. 인간은 여러 겹의 인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것보다는 인간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과연 <찬란한 타인들>에는 작가의 이런 의도가 충분히 반영되어 있다. 가령 '강아지 모리'를 살펴보자. 주인공은 더 이상 반려견을 키울 수 있는 여건이 안 되어 집에서 수십마일 떨어진 기차역에 버리고 온다. 그런데 영리한 반려견은 그 먼 거리를 되돌아온다.

반려견을 따뜻하게 보살펴주고 싶은 유혹에 빠지지만 결국 주인공은 다시 반려견을 같은 장소에 유기하기로 결정한다. 반려견을 사랑하지만 더 이상 키울 수 없는 현실에 놓인 주인공의 마지막 말은 유이월 작가의 모든 역량이 발휘된 가장 기발하면서도 인간미가 넘치는 소설의 마지막 구절이다. 
 

'거기에 버려야 모리가 또 나를 찾아올 테니까'


도벽이 있어서 헤어진 전 남자친구와 결혼하겠다는 친구를 향해서 '좋은 사람과 결혼하게 돼서 기뻐'라고 축하해준다거나 고객의 비밀을 지켜주기 위해서 스스럼없이 총을 들이대는 업자가 방금 협박한 사람의 가게에서 맥주를 들이키고 값을 치르며 '그래도 양아치는 아니다'고 너스레를 뜨는 장면 들이 모두 인간이 가지고 있는 다중 캐릭터를 보여준다.

게다가 고객이 의뢰한 일을 처리하느라 총으로 사람을 협박한 다음 '요샌 총 없이는 일이 잘 안 풀린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문학이라는 장르를 통해서 우리가 향유할 수 있는 즐거움의 극한값을 맛보게 한다. 대체 유이월 작가는 어떤 삶을 살아왔길래 이런 문장을 쓸 수 있단 말인가?

<찬란한 타인들>은 <신기한 타인들>로 제목을 바꾸어도 좋은 만큼 신기한 사람 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그리고 톡톡 튀는 반전과 유머도 이 책의 매력을 더한다. 배꼽이 두 개인 여자, 본인과 똑같은 점을 가진 사람이 근처에 오면 그 점이 움직이는 신기한 신체를 가진 여자, 구치소에 대한 리뷰를 남기고 별점을 남기는 사람,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을 위해서 알리바이를 만들어 주는 직업을 가진 사람 등등. 

가끔 재미난 책을 칭찬하기 위해서 '아껴가면서 읽었다'라는 상투적인 표현을 쓴다. 그러나 <찬란한 타인들>은 실제로 아껴가면서 읽게 되더라. 반대로 이 소설이 176쪽에 불과하다는 것이 진심으로 다행스럽다. 한쪽 한쪽 넘길 때마다 가슴이 벅차고 피식 웃게 되는 것도 만만찮은데 기발한 문장을 기록하느라 볼펜과 공책까지 찾아야 하니까 말이다. 인간은 모두 다양한 면모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잖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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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일월 딸내미가 미국으로 교환학생으로 가게 되었는데 준비할 것이 이것저것 많다. 당사자가 아닌데도 짜증이 밀려올 지경이다. 고작 6개월 학생으로 머물겠다는데 뭘 그렇게 요구하는 게 많은지 모르겠다. 직업이 영어 교사이다 보니 국비로 어학연수를 반년간 다녀올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처자식 놔두고 굳이?’라고 생각하고 생 깠던 나로서는 대체 미국이 뭐라고 굳이 이런 수고를 하면서까지 갈려고 그러니?”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지만, 자식이 좋아서 하는 일인지라 차마 입 밖으로 내지 않는다.

 

어제는 세 식구가 단톡방으로 딸내미 비자 신청 건으로 고군분투했는데 비자 신청 비용을 내 신용카드로 결재했다. 딸아이는 아직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결재하자마자 딸아이가 돈을 보내주겠단다. 순간 딸아이가 갑자기 미국보다 더 먼 곳으로 떠난 것 같았다. 더 이상 내가 딸아이를 부양하고 지원하는 관계가 아닌 독립적으로 가계를 꾸려가는 존재로 독립해나간 것이다. 하긴 딸아이도 그간 대기업에서 인턴을 하면서 적지 않은 급여를 받다 보니 기십만 원의 용돈으로는 감격하지 않는다. 어쨌든 그 기분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딸아이를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은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났다. 어머니도 으로 나에게서 멀어져가셨다. 결혼하고 따로 나와 사는데 어느 날 농약을 사 오라고 부탁하셨다. 퇴근하고 냉큼 농약을 들고 갔는데 어머니께서 농약값을 주시겠다고 해서 버럭 화가 났었다. 우리 모자가 갑자기 남남이 돼버린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 딸아이가 결혼을 할 때도 이보다 더 섭섭할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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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0-24 16: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국이 진짜 비자만드는 것도 힘들고 입국할때도 너무너무 까다롭대요.
저도 나중에 딸들이 경제적으로 독립하면 박균호님같은 기분이 될까요? 아 저는 빨리 됐으면 좋겟어요. ㅎㅎ

박균호 2022-10-24 18:05   좋아요 0 | URL
원래 어려운 거였군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