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될 생각은 없었다. 내 꿈을 어른들의 반대로 포기하고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친척에게 원서를 아무 과나 넣어달라고 부탁했는데 그가 선택한 것이 영어영문학과였다.
적성에 맞을 리가 있나. 시, 소설 따위를 배워서 뭘 하나 싶었다. 재미도 없었다. 입학하자마자 전과를 시도했는데 그것도 내 맘대로 되지 않다. 2학년이 되면서 교직과정을 시작했는데 교사가 되겠다는 것이 아니고 아무런 스펙이 없으니 자격증이라도 하나 따 두자는 속셈이었다. 아니다. 그냥 영문학 공부가 싫어서 다른 뭔가를 공부하고 싶었다.
졸업은 했고 다른 일을 좀 하다가 대부분 공직자나 교사였던 집안 어른들이 ‘반백수’ 나 ‘반 사기꾼’으로 여기는 시선이 따가워서 마지못해 교사가 되기로 하고 어찌어찌하다가 또 교사가 되었다. 영어가 싫었고 교사가 되기 싫었는데 영어 교사로 평생을 살게 된 것이다.
내가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영어 교사라는 정체성에서 벗어나고픈 욕심도 중요한 동기가 되었다. 책을 내면서도 학교라든가 학생과 관련된 책을 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것들은 도망치고 싶었던 대상이었다. 소설이나 시를 쓰고 싶은 로망이 있었으나 그런 재능이 없어서 책과 관련된 주변 이야기를 썼다.
어쩌다가 출판사의 제의로 청소년 책을 내게 되었다. 출판사가 간곡하게 요청을 했고 또 특별히 다른 쓸 책도 없고 해서 쓰게 되었다. 역시 콘셉트가 어려웠고 억지로 다 썼는데 그 원고가 세종 도서에 선정되고 4쇄까지 찍은 <고전적이지 않은 고전 읽기>다.
<고전적이지 않은 고전 읽기>의 편집자가 이직해서 또 나에게 집필 의뢰를 했다. 이번엔 더 본격적인 청소년 도서였다. 나를 이쁘게 봐서 집필 제의를 한 것이 고맙고 감동을 해서 또 계약했고 책을 냈다. 그 책이<10대를 위한 나의 첫 고전 읽기 수업>다. 출판사 말로는 순항 중이고 하반기에 2쇄를 찍게 될 것 같단다. 감사한 일이다.
어제 대기업 계열사인 대형 출판사에서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제작비를 투입해서 20권짜리 아동용 전집 프로젝트를 하는데 집필자로 참여해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다른 무엇보다 나를 어떻게 알고 연락을 했는지 궁금했는데 청소년용 책을 살펴보다가 <고전적이지 않은 고전 읽기>와 <10대를 위한 나의 첫 고전 읽기 수업>이 눈에 띄었고 재미나게 읽었다고 한다.
오늘은 <10대를 위한 나의 첫 고전 읽기 수업>을 낸 출판사에서 또 다른 청소년 콘셉트로 집필 의뢰를 했다. 행복하고 또 행복한 일이다. 이제 발등에 불이 떨어졌으니 또 정신없이 쓸 생각이다.
교사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고 싶었는데 본의 아니게 이젠 청소년 전문 저자가 될 처지가 되었다. 운명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아니면 우리 집안과 처가를 관통하는 교사 유전자가 있나 싶기도 하고.
요즘 학교생활이 참 행복하다.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라면 뭐든지 다 듣고 싶어요”
“선생님과 대화를 하면서 노는 그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지요.”라는 말을 들었다.
딸아이가 내게 해 준 “우리 아빠가 최고야”외 함께 내가 들은 가장 뿌듯하고 행복한 말이었다.
운명에 순응하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