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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모차르트의 놀라운 환생
에바 바론스키 지음, 모명숙 옮김 / 베가북스 / 2011년 7월
평점 :
모차르트의 초상화를 보았는가. 음악교과서에서든 음악실에서든 교복입고 한 번은 봤을법한 그의 얼굴. 빨간 연미복에 금장무늬. 부리부리한 큰 눈에 두껍고 짙은 쌍꺼풀, 진한 눈썹과 크고 높은 콧대, 얇지만 굳게 다문 입술, M자형 가발. 반들반들한 그의 흰 피부. 교양과 기품, 그리고 자신감을 드러내는 표정까지. 남들이 말하는 신동, 천재라는 수식어가 초라할 정도로 초강력 포스를 드러내는 그 모습에서 나는 늘 남모를 경외감을 품어왔다.
그래서 음악회에 가서 모차르트를 들을 때는 바흐만큼이나 그 ‘본연의 음악’을 존중한 해석을 좋아한다. 아무리 날고 기는 음악가라도 모차르트를 맘대로 비벼대는 꼴은 못 본다. 모차르트를 연주하려면 손 모양부터 달라야 하고, 소리, 호흡, 템포, 셈여림, 모든 부분에서 연주 그 자체가 모차르트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만큼 모차르트님의 음악은 내게 각별하다.
이 책은 모차르트의 환생을 그 모티브로 하여 이야기를 전개한다. 1791년 12월 5일에 죽었어야 하는 모차르트가 2006년의 어느 날 빈에서 부활한다. 일어나보니 딴 세상, 임종 당시의 기억이 생생한 그는 잠에서 깨자마자 갑자기 21세기를 살게 된다. 주님은 왜 그를 다시 이런 세상으로 보냈을까. 미완성으로 남아있는 ‘레퀴엠’을 완성하라는 숙명으로 이해한 그는 종이와 펜만 있다면 계속적으로 작곡을 한다.
무일푼 부랑자로 떠돌다가 표트르라는 바이올린 연주자를 만나고 그와 함께 바에서 어영부영 연주를 하며 지낸다. 머릿속에서는 늘 음악이 흐르고, 새로운 바에서 ‘재즈’를 접한 그는 즉흥연주에 맛을 느끼며 클래식과 재즈를 넘나들며 피아노 연주를 하고 인정받는다. 그러나 정작 돈을 벌수는 없었다. 경제관념이 쥐꼬리만큼도 없는 그는 맥주나 마셔가면서 일을 하고, 표트르에게 얹혀산다. 게으름과 엉성한 시간관념으로 자기좋을대로 움직이는 그는 그가 만들어내는 음악적 완벽함과는 거리가 너무 멀다.
18세기에서 21세기로 건너온 그는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에 적응하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이 부분이 아주 세세하게 다뤄지는데, 새삼 우리가 누리는 것들이 얼마나 짧은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 것인가를 느끼게 한다. 전기, 전화, 변기, 지하철, 자동차, 스피커, CD플레이어에는 벙쩌버리고 현대 복장, 음악시장의 판세, 신분증명제도, 화폐, 사상적 기류에서는 문화적 이질감을 느끼고, 대화하는 인간들에게는 얼간이 취급을 당한다.
“표트르, 난 작곡하고 있어. 새벽부터 밤에 잠들 때까지 작곡을 해. 심지어는 잠 속에서도 음악이 나를 내버려두려 하지 않아. 음악은 계속 내 안에서 싹트고, 5월의 잡초처럼 돋아나고 있어. 그래서 작곡하는 것은 결코 억지로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현재의 상태야. 다만, 내가 그것을 그때 적어두지 않아서 달아나버린 거야.” (p. 248)
음악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그가 모차르트임을 증명할 수 없는 그.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지만 그 여인에게 자신을 밝히는 순간 일은 뒤틀리고, 그는 살아있는 모차르트이기에 정신병원에 보내진다. 그리고 21세기에 와서도 레퀴엠의 완성은 정점에 다다랐지만, 끝내 라크라모사만은 그의 손끝에서 펼쳐질 수 없었다. 그리고 12월 5일 그는 또 한 번의 죽음을 맞게 된다.
모차르트의 위대한 음악성은 끊임없이 마음과 머릿속에서 음악 그 자체로 샘솟고 흘러나와 그의 영혼을 꽉 사로잡고 있다. 그가 일생을 그저 그 자신에게서 흘러나오는 음악들 안에서 지냈다는 것이 너무 동화적이었다. 그런 엄청난 대곡들을 단번에 그려내고, 연주해내고, 변형하고 모방할 수 있다는 천재성이 이 작품에서 고스란히 보여준다. 모차르트가 가진 음악적 위대함은 시대를 초월했고, 장르를 가리지 않았다.
저자는 작품의 전개를 레퀴엠의 순서에 따라 나누었고, 그 부제와도 상통하는 느낌을 가지고 모차르트의 부활기를 그려내고 있다. 레퀴엠을 위한 모차르트의 또 한 번의 삶이 온전히 레퀴엠의 삶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것에서 인상적이었다.
다만, 모차르트가 죽기 직전의 정신상태, 즉 박약한 인격체 그대로 21세기를 만났고, 빈대처럼 빌붙으면서 뻔뻔하고 책임감 없는 인간상으로 그려져서 속상했다. 물론 시대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그에 대한 존경심이 도저히 발휘될 수 없는 캐릭터로 존재해서 저자에게 서운하다. 가령, 마도라는 여자를 만나 하룻밤 사랑을 하는 장면이라든가, 미래에 대한 계획 없이 사랑에만 몰두하는 성격 등이 낭만적이라기보다 연민을 자아냈다.
화려한 필력이라든가, 치밀한 구성이 있지는 않지만, 사건의 진행 안에서 보여주는 모차르트의 심리와 상황전개가 흥미로운 소설이다. 모차르트에 대한 놀라움보다는 그에 대한 친근함을 심어주는 소설이다. 그리고 더불어 작품 안에서 그의 음악 또한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도록 이끌어준다.
실제로 모차르트를 만난다면 이런 꼴이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이런 죽음은 그에게 절대 온당치 않기에 작가에게 드는 의문이 있다. ‘왜 굳이 틀을 깨는 캐릭터를 취했을까’하는. 그러나 그런 성정의 그였기에 21세기에서도 자유롭게 많은 작곡을 하며 좋은 친구를 사귈 수 있지 않았을까. 모처럼 상상력 풍부한 작가의 재미난 발상을 읽으며 귀여운 모차르트의 삶을 만났다. 앞으로 한동안 모차르트의 깨끗하고 맑은 음악을 들으면서 저자가 부여한 독특한 감성을 듬뿍 느끼게 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