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솔로지 : 신화의 시대 - 토머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
토마스 불핀치 지음, 김은실 옮김 / 오늘의책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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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하다가도 꼭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말이야~”하면서 운을 떼는 녀석이 있다. 자주 듣다 보면 지겨움에 “야! 나도 그건 안다 인마!” 하고 툭 잘라버린다. 그치만 그 녀석은 그 특정 신화가 가진 숨은 의미를 대화의 주제에 적용하여 해석함으로써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자 써먹는 것이기에 그 내공을 보면 혀를 내 두르게 될 때가 종종 있었다. 나는 그 많은 인물의 이름을 외우고 있기도 벅찬데 말이다.



이 책은 적어도 이 책을 읽은 독자가 타인과 대화를 할 때 혹은 고전을 읽을 때 신화 때문에 막히는 일이 없도록 함을 그 집필목적으로 한다. 저자는 토머스 불핀치. 미국 유명 건축가인 찰스 불핀치의 아들로 하버드대학을 졸업하고 교편을 잡다가 은행에서 금융 일을 했다. 50대 후반에 집필을 시작하여 <신화의 시대>로 당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고, <기사도의 시대><샤를마뉴 황제의 전설>과 같은 대작을 남겼다.



책은 총 400페이지인데, 88가지 챕터 안에서 그리스 신화를 압축하여 알맹이만 간소하게 전달하고 있다. 신화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름을 타이틀로 삼았기에 어찌 보면 인물소개기에 가깝게 전개된다. 그리고 그 인물에게서 알아야 할 중요한 핵심 내용, 사건 하나만을 간략히 다룬다. 지식을 충족시킨다기보다 얇게 저며서 펼친다. 어디서 들어본 듯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솔직히 방대한 신화를 책 한권에 깊이 있게 담았으리라는 생각자체가 어리석다고 봐야 한다.



읽히는 것이 쉽고 재밌다. 확실히 사건중심의 전개가 빠르고 결과가 금방금방 터지니 책장 넘기는 속도도 빨라진다. 그런 면에서 아주 재밌게 볼 수 있는 책이다. 저자는 그 신화가 사용된 고전 문학을 같이 첨부하여 신화의 사용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다양하게 보여준다. 이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차별성이라고 본다.



저자는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것 같은 재밌는 입담으로 신화의 사건을 정리해준다. 독자가 기대하는 감성과 교훈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적인 필력을 자랑한다. 진지함속에서 묻어나오는 위트들이 가끔 색다른 재미를 유발한다.



레안드로스가 헬레스폰토스 해협을 건너간 이야기는 순전히 꾸며낸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바이런이 직접 해협을 헤엄쳐 건넘으로써 실화일 가능성을 증명하였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어릴 때부터 절름발이였던 바이런의 경우 1시간 10분 정도 걸렸다고 한다. (…) 바이런 이후로 몇몇이 이 해협을 건넜는데 독자들 중에서도 누군가 시도한다면 좋으리라 생각된다. (p. 161)



오랜만에 신화의 숨결에 푹 빠질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연결 구성도 호흡도 아주 좋았다. 토머스 불핀치가 의도했던 그 목적을 독자가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책이라고 본다. 그가 소개한 고전 중에 생소한 작품들이 있었다. 시간 날 때 그런 작품들을 보며 깃들여진 신화적 미사여구를 만끽하는 것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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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독설 2 - 흔들리는 30대를 위한
김미경 지음 / 21세기북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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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독설 2권이다. 그래서 나는 1권과는 조금 다른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사실 내용면으로 보면 개인적으로 2권이 더 좋았다. 남자이야기, 결혼 후 회사와 가정에서의 처세이야기, 돈에 관한 이야기 등. 생활에 밀접하게 이모저모 다 끄집어내서 노하우 공개해주고, 건어물녀를 비롯한 다양한 여성들을 상대로 정신교육 제대로 시켜준다.



일단, 저자한테서 ‘세팅’이라는 말을 듣는다. 테이블 세팅하듯이 결혼 전이나 신혼 초에 잡아야 할 건 잡고, 정리할 건 확실히 해놔서 나중에 뒤탈 없게 만들자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물렁물렁하게 회사생활 할 거면 차라리 집에서 애보고 놀아! 라는 말이다.



저자의 주장 중에 내가 의문을 갖는 것들이 있다.



‘시어머니, 생일은 챙겨라. 두둑이. 그러나 제사 때마다 가서 상 차릴래? 차라리 몇 푼 더 드리고 해외 출장 나갈 때마다 좋은 걸로 사드려라.’



요즘은 제사 차리는 집도 얼마 없다. 그래서 이런 거 가지고 싸움하는 집도 줄었다. 그러나 사고방식자체가 ‘나는 일하는 여자니까 집안대소사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끼리 이 돈 가지고 하세요.’라고 들이민다면, 동서지간은 포기해야 된다. 만약 일하는 동서들을 뒀다면, 판은 ‘둘째는 얼마 했고, 셋째는 얼마짜리 해줬다고 하는데, 나도 지금 한다고 하는 거다!’로 변질된다.



‘내가 애기 엄마 됐으면 남편도 애기 아빠 된 거다. 육아 같이 하면서, 가사분담 철저히 하고 교육 제대로 시켜서 파트너십으로 살아라.’



맞는 말이다. 또 요즘은 그런 열린 사고를 가진 남자가 많기도 하다. 그럼 처음부터 그냥 그런 남자를 골라야 한다. 결혼해서 내가 원하는 남자로 세팅하는 일은 쉬운 게 아니다. 나는 그런 면에서 작가가 남편을 참 잘 얻은 것이라 생각한다. 남자들은 대개 결혼을 할 때, 아내랑 같이 밥하려고 결혼하는 게 아니라 한 끼라도 더 얻어먹으려고 결혼을 한다. 군소리 없이 내 양말 빨아주는 아내를 기대하지, 지가 아내 스타킹 빨아줄라고 결혼하지 않는다. 돈 많이 벌어오는 아내는 인정해도, 집에서까지 지랑 맞장 뜰 수 있는 사이즈는 원하지 않는 것이다. 특히나 헌신적인 엄마의 허세 섞인 교육 뒷바라지로 받아 누리는 것만 할 줄 아는 애들을 세팅하겠다고 나대다가는 몇 년을 지뢰밭 같은 집안에서 서로 상처주고 살아야 할 수도 있다.



워킹맘의 아이는 독해야 된다. 강하지 않으면 애가 버텨낼 수 없으니, 중학교 1학년에 들어가면 모든 것을 혼자 할 수 있게끔 애들 또한 멋지게 세팅해 놔라. 강하게 키워야 결국 돈버는 거다. 지네들 크면 엄마 다 이해한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엄마밥 먹고 크는 애랑 아줌마밥 먹고 크는 애랑은 차이가 있다. 겉보기에는 차이가 없다. 어려운 일 있을 때, 엄마한테 짜증내는 애랑 일기장에 쓰는 애랑은 차이가 있다. 슬픈 일이 있을 때, 엄마 품에서 우는 애랑 방구석에 처박혀서 혼자 우는 애랑은 차이가 있다. 정서적인 차이다. 물론, 강한 아이와 나약한 아이라고 구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엄마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가 있다. 그 시기를 놓치면, 나중에 엄마랑 손잡고 있는 것도 어색해진다.



가정에서 발생되는 문제가 심각한 이유 중의 하나는 그것이 ‘곪고 썩어서 완전히 드러날 때까지 당사자들이 모른다는 것’이다. 자주 부딪치고 얘기하고 뭐 먹고 사는지 아니까 문제가 있으면 서로가 금방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터질 때까지는 밑에서 깊게 도사리고 있다. ‘괜찮아요. 전 좋아요. 아무 문제없어요.’ 이게 사춘기일 수도 있는데, 부모가 바빠서 아이의 상태에 대한 예민함이 없다면, 아이는 아무도 모르게 슬그머니 겉돌기 시작한다.



‘나보다 일을 더 좋아하는 엄마. 나보다 일이 더 중요한 엄마. 우리 가족보다는 출장이 더 급하고, 내 숙제보다는 엄마 보고서가 더 중요하고, 내 꿈보다는 자신의 꿈에 더 부풀어 있는 엄마.’



이런 엄마를 다 이해해 주고 알아서 커주는 아이로 세팅할 수 있는 것도 저자의 복이고, 능력이다. 그러나 그 아이 혼자 삭이며 지냈던 세월로 다져진 가슴을 만질 수 있는 엄마로서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어릴 때 잡아주지 못해 생기는 크레바스는 평생 메울 수 없더라. ‘넌 너 인생 알아서 강하게 사는 딸이고, 난 내 인생 멋지게 사는 엄마다’는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결혼에 따른, 육아에 따른’ 희생이 없다. 어머니로서 짊어져야 할 짐은 최대한 포기하고 가야 워킹맘으로 자리잡을 수 있기에. 가정의 주체로서 질 의무는 돈 벌기, 세팅하기로 축약할 수 있는 것이다. 시어머니를 육아도우미로 유용하게 써서 궁극적으로 돈 절약하라는 조언은 있다. 다른 가족 구성원은 돈 몇푼에 그 가정을 위해 애봐야 할 부여받을 책임이 있다고 보는 것인가. 며느리 애봐주는 게 시어머니로서 부업인가, 친정어머니니까 당연한가. 자기에게 굴레이면 남에게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회사에서는 좀 더 희생하고, 가정에서는 좀 더 너 자신을 챙겨라’라고 조언한다. 사회에서 자기 일로 성공하고 싶은 사람들은 차라리 결혼을 미뤄야 하는 건 아닐까. 회사를 위해 나를 돌리고, 나를 위해 가정을 돌려야 하나? 사랑한다는 명목 하에 결혼해서 남편 하는 만큼 회식하고, 남편 하는 것 만큼만 집안일하며 돈을 번다. 가정도 회사만큼이나 이해타산적으로 돌아간다.



임신도 승진 뒤에 세팅기간 잡아서 하고, 강하게 키운다는 명목 하에 엄마 노릇 제대로 못하면서도 애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건 다 받는다. 출산휴가도 회사에 폐 끼치지 않게 세팅하고, 회사일 바쁠 때는 집에서라도 도와주고, 애를 낳아도 상사한테는 먼저 전화하고, 1년에 한번은 가족을 떠나 친구끼리 지내는 해외여행시즌도 필요하다. '나'로서의 삶을 이만큼 강조하기엔 한국사회에서 어머니가 가진 자리가 너무 크다. 저자는 참 행복하게 산다. 그래서 세상이 일하는 여자에게 다 그만큼의 여유와 능력을 부여해준다고 생각하나보다.



이 책이 일하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도서이고, 그런 여성들에게 더 멋지게 살 수 있는 삶에 대한 조언을 한다. 그런 면에서 흠잡을 데 없이 잘 쓰인 책이다. 많은 여성들이 도전을 받고 공감할 것이고 힘을 얻을 것이며 생활의 지혜도 발견할 것이다. 다만, ‘저자가 가정에 대해 그렇게 자신 있게 무엇을 권할 수 있나’라는 의문 하나로 말이 길었다. 회사생활 더 잘하고 싶고, 결혼과 일을 병행하면서 승진하는 노하우를 알고 싶은 모든 여성에게 권함직한 아주 실용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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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들의 나침반
미즈키 히로미 지음, 김윤수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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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한 여배우의 등장으로 시작한다. 그리 잘나가지 않는 배우인데, 영화에 캐스팅되어서 촬영 장소에 도착한다. 여기 이 지점, 배우와 감독이 만나서 얘기하고 하는 이 부분부터가 상당히 어려웠다. 도입 자체가 명확한 무언가를 내 던지지 않고, 미적지근하게 흐르고 있어서 소설에 들어가는 입구부터 집중이 안 되었다.



액자식 전환구성이다. 주인공들의 고등학교 시절로 올라간다. 연극부에 환멸을 느낀 루미, 바타, 가나메. 다른 학교의 가난한 여학생 란을 섭외하여 따로 극단을 차리고, 안 쓰는 건물을 몰래 들어가 연습실로 삼는다. 그 연극단 이름이 ‘나침반’이다. 길거리공연을 시작해서 반응이 좋아지려는 시점에 알 수 없는 방해공작을 받는다.



연극대회에 참가하지만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고, 집안 반대에도 계속 연극을 하려는 란은 기획사 오디션을 본다. 하지만 정작 따라간 가나메가 오디션에 발탁된다. 그리고는 가나메에게 안 좋은 일이 연속적으로 일어나고 결국 자살로 추정되는 죽음에 이른다. 범인은 바로 앞서 등장한 여배우이다. 그리고 책의 전개는 계속적으로 그 여배우가 누구인지를 좇아나간다.



사실 작가는 앞서 드문드문 힌트를 제공하지만, 독자는 애먼 데서 헤매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 여배우의 촬영현장에서 범인의 행각을 낱낱이 밝혀낸다. 증거는 하나, 그래서 끼워 맞추기 형식의 대사처리로 급박히 사건의 전말을 넘겨버린다. 소설의 전체적인 비중은 16세 소녀들의 극단이야기를 중심으로 펼쳐나가기에, 사건 처리 과정에서 치밀하게 짜이지 않은 구성이 아쉽다. 그냥 아스크림 케이크 등장 하나로 모든 걸 추측해내니까.



작가의 문투가 인물의 심리를 그리는데 있어 너무 뚝뚝 끊긴다. 시점을 아주 애매하게 쓰고 있다. 읽는 사람으로서는 감정 공감에 많은 애를 먹는다. 또한 작가가 보여주는 인물의 감정과 실제로 인물의 마음속 외침 사이의 구별해 놓은 따옴표 등의 기호가 없어서 설명과 감정이 교차되는 지점에서 독자의 알아서 구별해야 할 몫이 있었다.



그런 루미가 얄미웠다. 그리고 부러웠다.

루미는 천성적으로 내가 갖지 못한 걸 가지고 있어.

그런 루미가 만드는 폭풍우 속으로 휘말리는 건 분명 겁이 난다. 상처받는다. 하지만 그 바람을 타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자신을 상상도 못할 곳으로 데려가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는다. (p. 166)



가장 많이 남았던 구절은 란의 엄마가 란에게 훈계할 때 내뱉는 대사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동안 자신이 알던 상식이 뒤집어지는 일이 있어. 자신의 시야에서는 보이지 않는 세상이 있다는 걸 알게 돼. 너도 장차 그런 일이 많이 있을 거야. 그래서 젊을 때부터 한 가지 일에만 계속 얽매이면 손해라고. 더 많은 세상을 알고-.” (p. 178)



‘미스터리 살인’이라는 소재만 보고 남자들이 섣불리 집었다가는 기대와는 많은 격차를 보일 수도 있겠다. 워낙 소녀들의 ‘이러쿵저러쿵’이라서 그 시절 그 아이들의 배경과 감정선을 따라갈 수 있어야만 끝까지 흥미롭게 읽어낼 수 있다. 용기 있는 소녀들의 강한 우정과 묘한 반전이 섞인 새로운 느낌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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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미친 바보 - 이덕무 산문집, 개정판
이덕무 지음, 권정원 옮김, 김영진 그림 / 미다스북스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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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실학자 이덕무의 책이다. 책에 미친 바보라는 타이틀에 딱 걸맞은 그는 평생 2만권이 넘는 책을 읽었고, 읽은 책은 반드시 필사하는 습관이 있었다. 문장가로서 많은 문집을 냈고, 그의 문장 실력은 임금에게 신뢰를 얻어 규장각에서 관직생활을 오래했다.

그의 성품 중에서 가장 존경하고 싶은 점은 겸손함이다. 사람이 글을 많이 알고, 벼슬에 올라 임금의 총애를 받으면 자연히 배는 나오고, 목소리는 커지면서 인간미는 사라지게 마련인데 그는 정반대였다. 그는 수줍음이 많았고, 자기를 드러내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으며, 칭찬 한마디에도 얼굴빛이 붉어질 정도의 성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영처'라 칭했고, 대군자가 9분이면 자기는 현인의 경지인 8분을 목표 삼겠다 하여 ‘팔분의 꿈’을 꾸었다.

이 책에는 그가 비평가로서 조선과 중국 문장가들의 문풍과 그 수준을 적나라하게 평가함이 담겨있다. 인상적인 것은 그 평론의 수준이 아주 전문적이고 기반지식이 많이 배어져 나온다는 점이다. 저자의 독서습관 중첩이 문장을 보는 안목을 길러냈으리라 짐작한다.

나는 하루도 글 읽기를 빼먹은 적이 없었다. 아침에 사오십줄을 배우면 그것을 하루에 50번씩 읽었는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다섯 차례로 나누고 한 차례에 열 번씩 읽었다. (p. 53)

독서는 입신과 같으니 당연히 처음과 끝의 순서를 잘 지켜야지 아무렇게나 할 것이 아니다. 지금 선반 위에 있는 몇 권의 책을 대강 훑어보고 곧 싫증이 나서 팽개쳐버린다면, 거칠고 엉성해서 앞에서 잊고 뒤에서 잃고 할 것이니 학문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p. 55)

저자는 되도록 많은 책을 읽으라고 권하지만, 소설에 대해서만큼은 가차 없이 비판하고 나선다. 국가를 어지럽히는 타파의 대상으로 여겨 단죄한다. 특히 자신이 읽었던 수호전을 대표적으로 비난하고, 작가를 조롱하는 언급도 그 수위가 세다. 소설은 말하는 사람, 논평한 사람, 탐독하는 사람 셋을 모두 미혹시키는 타락의 매개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벗들에게 쓰는 편지도 인상적인 대목이 많았다. 그러나 그 서간을 공개하기 전에 저자가 쓴 말에서 더 큰 가르침을 얻게 된다.

모름지기 벗이 없다고 한탄하지 마라. 책과 함께 노닐면 되리라. 책이 없다면 구름과 노을이 내 벗이요, 구름과 노을이 없다면 하늘을 나는 갈매기에 내 마음을 맡기면 된다. (…) 내가 아끼더라도 시기하거나 의심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면, 이 모두가 내 좋은 벗이 될 수 있다. (p. 121)

책의 구성이 조금 아쉽다면, 저자의 글만 읽어도 자연적으로 알게 될 많은 것에 부연적으로 덧붙인 말이 너무 많았다. 책을 읽는 흐름을 깬다. 그리고 옮긴이의 생각이 너무 많이 전달되고 있다. 독자의 감성을 깨고 분위기를 한정해버리는 듯하다. 옮긴이의 말이 많이 필요할만큼 어려운 책은 아니다. 첨부할 수 있는 자료같은 것이나 더 신경썼으면 좋았을 듯하다.


벗에 대한 그의 생각, 그리고 자연으로 나가 여행을 하면서 담아놓은 그만의 이야기들이 많은 위로와 깨달음을 전달한다. 옛 사람을 배울 때는 실천하는 것을 최선의 공부로 삼아야 한다는 저자의 골수가 담긴 그 말을 중심으로 하여 부지런히 정진하여야겠다. 조선이 남긴 귀한 학자의 삶이 배인 따뜻한 가르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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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사람들 NFF (New Face of Fiction)
톰 래크먼 지음, 박찬원 옮김 / 시공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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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크리스토퍼 라이히의 룰스 오브 디셉션을 읽으면서, 주인공의 삶보다 조연의 인생이 더 궁금한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평범한 의사가 사건에 휘말리면서 벌어지기 때문에, 똑똑한 것 외에는 개성이 별로 없는 주인공이었고 오히려 다른 인물들에게서 매력을 많이 느꼈다. 불완전한 사람들은 조연이 없는 옴니버스 소설이고, 주인공들의 매력 넘치는 개성이 한껏 펼쳐지고 있는 탁월한 소설이었다.
 
저자는 톰 래크먼. 1974년 런던에서 태어나 밴쿠버에서 자랐다. 토론토 대학교에서 영화를 공부했고 콜롬비아 대학교에서 저널리즘으로 석사를 취득했다. 1998년부터 뉴욕 AP 통신의 국제부 기자를 시작으로 특파원생활을 오래했다. 2006년에 파리의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에서 시간제 편집자로 일하며 처녀작인 이 소설을 썼다.
 
작가 자신이 언론계에 오래 몸담고 있기 때문인지, 배경은 신문사요 이야기의 인물들은 회사의 모든 직급을 망라하고 있다. 요즘의 신문사는 인터넷기사를 중심으로 한 광고수입만으로 버티고 있다. 쇠락의 한 줄기 밑에서 적자를 내고 있더라도 웹 개설의 의지가 없는 신문사. 그 안에 속한 이들이 주인공이다.
 
중요한 것은 신문사라는 배경보다는 인물이다. 인물을 엮어내고 있는 줄이 신문사이고, 각각의 이야기는 인물의 삶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아무 데서도 일감을 안주는 노쇠한 프리랜서 기자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기사조작 시도 이야기를 시작으로 총 11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모든 인물의 이야기에 다 임팩트가 존재한다. 반전도 있고, 스릴도 있으며, 독자의 상상력을 요구하면서 섣불리 마감하는 위트도 있다.
 
이 소설은 인물의 연령대가 아주 다양하다. 그리고 평범하거나 무난한 성격은 거의 없다. 거기에 신문사 일처리보다는 그들의 사랑, 가족에 대한 감정이 많이 드러나 있기에 처녀작치고는 굉장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의 심리묘사나 인물들 간 적절한 관계 설정이 소설속으로 몰입하기가 딱 좋았다.
 
인상적인 것은 신문사 직원뿐만 아니라 그 회사 카이로통신원 구직 희망자의 바보스러운 이야기나, 10년 전 신문을 한부씩 모아다가 홀로 독파하고 있는 구독자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구성자체가 아주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어떤 의미 더하고자 소설 말미마다 회사 창립시기 이야기를 집어넣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부분을 읽다가 오히려 원소설의 느낌을 퇴색시키기도 했다.
 
이 소설은 현실감각이 무겁게 서려있었다. 작가가 참 비범한 재주를 지녔다고 생각한다. 신문사를 다니면서 그의 눈은 동료들의 인생을 주시하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각 인물에게 흡수될 수 있는 소설이었다. 한 번 읽기시작하면 계속적인 흥미가 발생하여 놓을 수 없는 소설이다. 그렇게 단숨에 읽었던 책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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