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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독설 2 - 흔들리는 30대를 위한
김미경 지음 / 21세기북스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언니의 독설 2권이다. 그래서 나는 1권과는 조금 다른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사실 내용면으로 보면 개인적으로 2권이 더 좋았다. 남자이야기, 결혼 후 회사와 가정에서의 처세이야기, 돈에 관한 이야기 등. 생활에 밀접하게 이모저모 다 끄집어내서 노하우 공개해주고, 건어물녀를 비롯한 다양한 여성들을 상대로 정신교육 제대로 시켜준다.
일단, 저자한테서 ‘세팅’이라는 말을 듣는다. 테이블 세팅하듯이 결혼 전이나 신혼 초에 잡아야 할 건 잡고, 정리할 건 확실히 해놔서 나중에 뒤탈 없게 만들자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물렁물렁하게 회사생활 할 거면 차라리 집에서 애보고 놀아! 라는 말이다.
저자의 주장 중에 내가 의문을 갖는 것들이 있다.
‘시어머니, 생일은 챙겨라. 두둑이. 그러나 제사 때마다 가서 상 차릴래? 차라리 몇 푼 더 드리고 해외 출장 나갈 때마다 좋은 걸로 사드려라.’
요즘은 제사 차리는 집도 얼마 없다. 그래서 이런 거 가지고 싸움하는 집도 줄었다. 그러나 사고방식자체가 ‘나는 일하는 여자니까 집안대소사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끼리 이 돈 가지고 하세요.’라고 들이민다면, 동서지간은 포기해야 된다. 만약 일하는 동서들을 뒀다면, 판은 ‘둘째는 얼마 했고, 셋째는 얼마짜리 해줬다고 하는데, 나도 지금 한다고 하는 거다!’로 변질된다.
‘내가 애기 엄마 됐으면 남편도 애기 아빠 된 거다. 육아 같이 하면서, 가사분담 철저히 하고 교육 제대로 시켜서 파트너십으로 살아라.’
맞는 말이다. 또 요즘은 그런 열린 사고를 가진 남자가 많기도 하다. 그럼 처음부터 그냥 그런 남자를 골라야 한다. 결혼해서 내가 원하는 남자로 세팅하는 일은 쉬운 게 아니다. 나는 그런 면에서 작가가 남편을 참 잘 얻은 것이라 생각한다. 남자들은 대개 결혼을 할 때, 아내랑 같이 밥하려고 결혼하는 게 아니라 한 끼라도 더 얻어먹으려고 결혼을 한다. 군소리 없이 내 양말 빨아주는 아내를 기대하지, 지가 아내 스타킹 빨아줄라고 결혼하지 않는다. 돈 많이 벌어오는 아내는 인정해도, 집에서까지 지랑 맞장 뜰 수 있는 사이즈는 원하지 않는 것이다. 특히나 헌신적인 엄마의 허세 섞인 교육 뒷바라지로 받아 누리는 것만 할 줄 아는 애들을 세팅하겠다고 나대다가는 몇 년을 지뢰밭 같은 집안에서 서로 상처주고 살아야 할 수도 있다.
워킹맘의 아이는 독해야 된다. 강하지 않으면 애가 버텨낼 수 없으니, 중학교 1학년에 들어가면 모든 것을 혼자 할 수 있게끔 애들 또한 멋지게 세팅해 놔라. 강하게 키워야 결국 돈버는 거다. 지네들 크면 엄마 다 이해한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엄마밥 먹고 크는 애랑 아줌마밥 먹고 크는 애랑은 차이가 있다. 겉보기에는 차이가 없다. 어려운 일 있을 때, 엄마한테 짜증내는 애랑 일기장에 쓰는 애랑은 차이가 있다. 슬픈 일이 있을 때, 엄마 품에서 우는 애랑 방구석에 처박혀서 혼자 우는 애랑은 차이가 있다. 정서적인 차이다. 물론, 강한 아이와 나약한 아이라고 구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엄마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가 있다. 그 시기를 놓치면, 나중에 엄마랑 손잡고 있는 것도 어색해진다.
가정에서 발생되는 문제가 심각한 이유 중의 하나는 그것이 ‘곪고 썩어서 완전히 드러날 때까지 당사자들이 모른다는 것’이다. 자주 부딪치고 얘기하고 뭐 먹고 사는지 아니까 문제가 있으면 서로가 금방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터질 때까지는 밑에서 깊게 도사리고 있다. ‘괜찮아요. 전 좋아요. 아무 문제없어요.’ 이게 사춘기일 수도 있는데, 부모가 바빠서 아이의 상태에 대한 예민함이 없다면, 아이는 아무도 모르게 슬그머니 겉돌기 시작한다.
‘나보다 일을 더 좋아하는 엄마. 나보다 일이 더 중요한 엄마. 우리 가족보다는 출장이 더 급하고, 내 숙제보다는 엄마 보고서가 더 중요하고, 내 꿈보다는 자신의 꿈에 더 부풀어 있는 엄마.’
이런 엄마를 다 이해해 주고 알아서 커주는 아이로 세팅할 수 있는 것도 저자의 복이고, 능력이다. 그러나 그 아이 혼자 삭이며 지냈던 세월로 다져진 가슴을 만질 수 있는 엄마로서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어릴 때 잡아주지 못해 생기는 크레바스는 평생 메울 수 없더라. ‘넌 너 인생 알아서 강하게 사는 딸이고, 난 내 인생 멋지게 사는 엄마다’는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결혼에 따른, 육아에 따른’ 희생이 없다. 어머니로서 짊어져야 할 짐은 최대한 포기하고 가야 워킹맘으로 자리잡을 수 있기에. 가정의 주체로서 질 의무는 돈 벌기, 세팅하기로 축약할 수 있는 것이다. 시어머니를 육아도우미로 유용하게 써서 궁극적으로 돈 절약하라는 조언은 있다. 다른 가족 구성원은 돈 몇푼에 그 가정을 위해 애봐야 할 부여받을 책임이 있다고 보는 것인가. 며느리 애봐주는 게 시어머니로서 부업인가, 친정어머니니까 당연한가. 자기에게 굴레이면 남에게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회사에서는 좀 더 희생하고, 가정에서는 좀 더 너 자신을 챙겨라’라고 조언한다. 사회에서 자기 일로 성공하고 싶은 사람들은 차라리 결혼을 미뤄야 하는 건 아닐까. 회사를 위해 나를 돌리고, 나를 위해 가정을 돌려야 하나? 사랑한다는 명목 하에 결혼해서 남편 하는 만큼 회식하고, 남편 하는 것 만큼만 집안일하며 돈을 번다. 가정도 회사만큼이나 이해타산적으로 돌아간다.
임신도 승진 뒤에 세팅기간 잡아서 하고, 강하게 키운다는 명목 하에 엄마 노릇 제대로 못하면서도 애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건 다 받는다. 출산휴가도 회사에 폐 끼치지 않게 세팅하고, 회사일 바쁠 때는 집에서라도 도와주고, 애를 낳아도 상사한테는 먼저 전화하고, 1년에 한번은 가족을 떠나 친구끼리 지내는 해외여행시즌도 필요하다. '나'로서의 삶을 이만큼 강조하기엔 한국사회에서 어머니가 가진 자리가 너무 크다. 저자는 참 행복하게 산다. 그래서 세상이 일하는 여자에게 다 그만큼의 여유와 능력을 부여해준다고 생각하나보다.
이 책이 일하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도서이고, 그런 여성들에게 더 멋지게 살 수 있는 삶에 대한 조언을 한다. 그런 면에서 흠잡을 데 없이 잘 쓰인 책이다. 많은 여성들이 도전을 받고 공감할 것이고 힘을 얻을 것이며 생활의 지혜도 발견할 것이다. 다만, ‘저자가 가정에 대해 그렇게 자신 있게 무엇을 권할 수 있나’라는 의문 하나로 말이 길었다. 회사생활 더 잘하고 싶고, 결혼과 일을 병행하면서 승진하는 노하우를 알고 싶은 모든 여성에게 권함직한 아주 실용적인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