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갇힌 사람들 - 불안과 강박을 치유하는 몸의 심리학
수지 오바크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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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여름 휴가철에 해변이나 워터파크로 몰려가는 이유가 있었다. 여성들은 몸매과시, 남성들은 몸매구경. 대놓고 자랑하고 구경할 수 있는 곳으로는 최적이었다. 지금은 뭐, 굳이 쌩돈 쓰면서 몸매 구경하러 멀리 나가지 않아도 된다. 하의실종패션이 장악한 서울의 패션거리들은 여성의 제모당한 각선미가 두루 넘치고 있고, 푹 파인 가슴골에 덥다고 부채질하며 지나다니는 여성들의 자신감이 뭇 남성들의 호기어린 눈빛을 제압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여름철이 되면 서점가에도 ‘다이어트 신간’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고, ‘여성의 몸 가꾸기 프로젝트’ 사업은 여름철 성수기를 지나 일 년 내 호황을 누리고 있다. 연예인들의 몸매나 화장, 그들의 패션이 여성들에게는 ‘교과서’가 되고 있다. TV 속에 장악된 여성들의 거울뉴런이 발전하여 ‘그들이 곧 나 자신’이어야 한다는 뜻 모를 압박에 거하는 지금의 시대. 부추김에 혈안이 되어있는 여러 매체를 등지고 이런 책이 나오다니. 어이쿠야. 누가 알아 줄란가. 요즘 같은 세상에.



수지 오바크는 1946년 영국 런던 출생으로 10대에 임신을 하고 퇴학당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했다. 30세에 런던 여성 치료센터를 열었다. <가디언>의 칼럼니스트이자, 10년동안 런던경제대학에서 방문교수로 강의했고, 고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폭식증을 치료해서 화제가 되었다. 저서로는 <단식투쟁><비만은 페미니즘의 주제다><섹스라는 불가능성><먹는 것에 관하여>등이 있다. 저자는 지금 시대의 몸에 대한 대중적 인식의 심각함을 말하고, 신체 불만족의 다양한 표현들을 알아보며 그 해법을 논하고자 이 책을 썼다.



먼저 사람의 몸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깊이 파고든다. 그 통로는 아가들을 관찰함으로써 시작된다. 아기와 관계 맺는 방법에 따라 발달에 물리적·정신적 환경이 된다. 특별히 저자는 ‘접촉’을 강조한다. 육체적 접촉이 사람에게는 근본적인 욕구이며, 유대감 형성과 심리적 안녕에 핵심적인 요소임을 말한다. 여러 사례를 통해 몸은 마음에 귀속되는 자연적인 것이 아니고, 문화와 양육환경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임을 주장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이론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몸을 언제나 마음에 포섭시켜서 마음의 하인이나 단역배우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 신체적 고통의 기원을 늘 마음에서만 정확하고 충분하게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다. (…) 신체적 증상은 몸이 몸 자체와 몸의 욕구들을 표현하려고 애쓰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몸이 그저 몸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을 표현하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것이 더 도전적인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은 중요한 시작점이다. (p. 149)



지금의 패션, 화장, 성형수술, 다이어트 같은 것들에 사람들이 얼마나 종속된 심리를 가지고 있는지를 말하고 있다. 현대인은 남보다 앞서려면 혹은 젊고 생생할 때는 괜찮지만 얼굴이 처지기 시작하면 당장 버림받는 직장을 지키기 위해서는, 특정한 외모가 필요하다(p. 170)는 관념에 잡혀있다. 저자는 이것이 ‘시장에서 광고하는 생각’이라고 단언한다. 시장의 권유를 받아들이면 자신의 가치가 상승될 것이라고 믿는 잘못된 생각이 '유통되는 이미지'에 자신을 끼워 넣으려는 몸부림을 낳고 있다.



그 외에도 여러 부분에서 ‘몸에 관한 잘못된 인식’을 꼬집고 있다. 나는 이런 책이 아주 반갑고 절실했다. 몸만 인정받으면 사람이 인정받는 세상이다. 젊음이라는 것이 소위 ‘몸짱’으로 대변되는 세상이 되었다. 마치 70대 할아버지도 식스팩만 박아놓으면 ‘청춘’이라고 불리는 것과 같은 이치로 말이다. 현대인의 몸의 가치는 물질적 가치관에 의해 온전히 매도되고 있다.



몸을 몸으로서 보지 못하고, 존중하지 못하는 현 세태에게 경종을 울리는 제대로 된 책이다. 그리고 상술적인 의도로 이미지화된 몸에 대해 분별력을 키워주는 책이다.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교육시켜야 될지도 분명하게 드러나 있어, 어머니들이 읽어도 좋을 책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몸을 건강하게 인식하도록 도와 주며, 현대인의 지나친 몸 관리가 시대적·심리적으로 어떤 지경에 처했는지를 알게 해주는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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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의 연애법칙 61
Dr.굿윌 지음, 박금영 옮김 / 이젠미디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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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하도 대작들을 많이 읽어댔더니, 머리도 피로하고 두꺼운 책 들고 있느라 팔도 많이 쑤셨다. 그래서 가볍고 통통 튀는 책을 하나 골라서 머리를 식히고 싶었다. 그리고 목적에 딱 맞는 책을 만났다. 연애비법서. 다 생긴대로 사귀면서 사는 거라 연애하려고 책을 뒤적거린다는 것이 자칫 타인의 비웃음을 유발할 수도 있겠다.



연애서를 보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가끔씩 “얘 왜이래? 원래 이래?” 혹은 “이런 식으로 계속 만나도 괜찮나”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은 아닐까. 상황별 남녀의 연애세포에 담긴 심리를 정확하게 분석하는 전문가의 눈에라도 의지하고픈 마음. 보다보면 ‘놀고 있네’ 소리 절로 나는 시대지난 발언이나 덜떨어진 조언들도 있겠지만 감안하고 읽는 것이 또 요런 종류의 서적이 아닐까 한다.



저자는 생명공학분야의 박사이다. 실연을 극복하고자 여자들과 연애상담을 시작했다가 여기까지 왔다. ‘여기’란, 연애 조언서만 5권을 냈고, 또 이 책을 발간한 것이다. 인기 사이트 ‘연애전문닷컴’의 운영자이기도 하다.



책은 61가지의 연애심리와 기술을 담고 있지만, 그렇게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다. 오히려 아주 기본에 충실한 편이다. 남자를 성욕에 지배되는 동물로 정의하고, 다 그 놈이 그놈이니까 ‘이 남자는 달라’같은 생각은 일찌감치 버리라고 조언한다. 남자의 연애심리에 대해 여러 가지를 말하고 있다. 남자의 편이 되라, 인정해줘라, 말할 때 리액션을 줘라 등의 이야기는 좀 식상하다.



저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밀고 당기기다. 이 책에서 여우가 되는 비결은 한 마디로 ‘밀당’에 있다. 손에 넣은 것을 잊어버리는 동물이기에 ‘넣었다’고 생각하지 않게끔 늘 긴장감을 유지시켜주는 연애를 하라는 것. 거리 조절, 완급조절이 연애의 성패인 것처럼 가장 중요시한다.

먼저 그 남자에게 자신이 ‘연애대상’인지를 알아야 하고, 만약 아니라면 ‘편한 친구’사이부터 공략해서 남자의 편이 되어있으면서 때를 기다리라고 말한다. 아, 이런 방법은 그 짝사랑 지켜보는 친구들 입에서도 쉽게 나오는 소리다. 여우의 연애법칙이라 말할 수 없는 너무 안일한 조언 같다.



가장 어이없는 것은, 법칙 44에 ‘당신과 그를 주연으로 드라마 시나리오를 제작한다’ 편이다. 아. 모냐. 이건. 그와 나를 주인공으로 삼아 연결시켜가면서 가상현실로라도 재미보란 소리냐. 웬 3류 드라마 작가 합숙소에서나 나올법한 소리인지. 연애하는 법을 조언하는 건지 오타쿠 되는 법을 조언하는 건지 모르겠다. 일본인들 정서에는 이런 방법이 맞나보다.



여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침묵’다. 침묵기를 잘 활용해서 목적을 달성할 줄 알아야 비로소 여우의 연애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주의할 점은 요즘의 ‘인스턴트 연애’에서 침묵을 써먹다가는 미련한 ‘곰의 연애’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오히려 밀기보다는 센스 있게 당기기가 더 고도의 테크닉이다.



어린 것들에게 추천하기에는 좀 낡았고, 연륜 있는 이들에게 추천하기에는 좀 어설픈 면이 보이는 연애서다. 일반적으로 누구에게서든 ‘공략점’은 반드시 있다. 그것만 제대로 알아도 ‘연애 걸기’는 쉽다. 그리고 연애를 많이 하다보면 감각적으로 ‘밀당’의 테크닉은 늘 수밖에 없다. 너무 여러 사람 조언에 목매지 말고 마음가는 대로 연애하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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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레드 라인
제임스 존스 지음, 이나경 옮김, 홍희범 감수 / 민음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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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관한 영화나 다큐멘터리 같은 영상물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이 뭘까. 더 크게 한방 날리고, 터지는 수류탄 사이로 전진하고, 사지가 절단되어 피가 철철 나는 부상병이 소리소리 지르고, 날아오는 총알에 픽픽 쓰러지는 놈들을 보면서 느끼는 분리감이 아닐까. 저긴 저러고 있는데, 나는 영화관에서 팝콘에 콜라를 들고 실재했었던 죽음에 전율하고 있다 하는 느낌.



그래서 우리는 전쟁관련 문학에서도 ‘크헉’, ‘타다다다’, ‘쿠오오옥’, ‘콰아앙’와 같은 만화책 의성어가 난무하여 박진감을 의도하는 한 판을 기대할는지도 모른다. 진정한 전쟁문학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2차 대전 전문작가 레마르크의 작품들이 대표적이며 독보적이다. 제임스 존스의 이 소설 또한 소재의 사실성에 입각하여 최대한 영상미를 죽이고, 인물들의 심리 전개를 중심으로 한 작품이다.



저자는 1921년 일리노이 주 로빈슨 출생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미 육군에 입대하여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다. 이 경험이 저자의 작품 기조를 형성하는 가장 큰 자원이 되었을 것이다. <지상에서 영원으로> <어떤 사람들은 뛰어서 왔다>같은 작품들은 영화로 제작되었고, 1962년 발표된 <신 레드 라인>은 1998년에 조지 클루니, 우디 해럴슨, 숀펜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참여한 영화로도 리메이크되었다.



배경은 남서태평양 솔로몬제도 남동부에 있는 섬인 과달카날. 세계2차대전 당시 아주 전설적인 전투가 벌어진 것으로 유명한 곳이다. 작품 속 이야기는 허구이지만, 저자는 동시대를 보냈던 이들에게 특별한 느낌을 선사하고자 이 지역을 선택했다. 중심인물은 1연대 소속 C중대이며 특정 주인공 중심의 이야기가 아닌 ‘중대원들’의 이야기이다.



소설은 160페이지가 다 되도록 그들이 전장에 들어서기까지를 다룬다. 그러니까 초반부부터 어떤 ‘액션’이 나오기를 기대한다면 자칫 책장 넘기기가 지루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그 뜨거운 정글을 걷고 기어가면서 서서히 맞닥뜨려오는 죽음에 관해 병사들은 ‘다 죽어 나자빠져도 나는 아니다’라고 믿는 수밖에 없다.



이 전쟁이 ‘재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는 웰시 상사, 심신이 허약해서 발발 떠는 행정병 파이프, 아내의 불륜을 확신하고 거기서 촉발되는 심리로 움직이는 존 벨, 취사병을 뛰쳐나와 진급에 목숨 거는 보병 찰리 데일, 자신의 무운을 믿고 과감해 지는 돌. 웰시에게 밉보이고 방출되었지만 여전히 C중대를 찾아오는 위트 등. 전투에 들어가기 전 C중대는 너무나 인간성 짙은 병사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전투가 시작되면서 광기어린 전투에 대한 흥분으로 살인에 대한 감각이 없어지는 그들의 심리를 세심하게 다룬다. 정글과 무더위에 지쳐가면서도 젊은이다운 건강함으로 서서히 적응해 나가듯, 부상병의 신음이나 시체에 에 대해서도 점점 무뎌졌고, 이내 살인 이후에 시체훼손으로 금니 같은 전리품을 취득하는 것이 정례가 되었다.



그들은 우위를 점했고 우세한 상황이었다. 온갖 도덕률에서 벗어나도 좋은 방학이라도 맞이한 것처럼, 미친 듯이 피를 보고 싶은 욕망이 그들을 사로잡았다. 그들은 처벌받지 않고서 살인을 할 수 있었고, 그 기회를 즐기고 있었다. 어제의 진땀나는 공포와 고생, 후위에서 발각되지 않고 진격했다는 흥분, 정상에서 무방비 상태였던 열다섯 명의 일본군을 살해했던 일 모두가 이 열광적인 분위기에 일조했으며, 지쳐 떨어질 때까지 그들을 멈출 수 없었다. (p. 448)



이 작품에서는 정글에서 많은 이들이 남색을 했음을 여러 차례 언급하고 있다. 성욕을 참지 못하는 상급 병사들이 진급을 빌미로 어린 병사들을 갖는 일이 많았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C중대에서도 여러 병사가 그런 성적 충동을 느낀다. 오지에서 죽음에 관한 공포와 스트레스로 적군을 죽이면서 젊은 혈기가 드글드글한 남자끼리 기약 없는 세월을 보낸다고 하면 이해할 수도 있는 부분이지 싶다.



돌로 된 감옥에 갇혀있어야만 죄수가 아님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정부는 한 사람을 남태평양의 정글 섬에 가두고, 정부가 시킨 일을 만족스러울 정도로 해낼 때까지 내버려 둘 수도 있었다. (…) 살아남은 자들을 강인하고 잔인하며 완전히 냉소적인 보병으로 만들어 버릴 때까지 마음속에서 점점 더 깊이 뿌리를 박고 자라나는 씁쓸함. (p. 487)



“남들이 뭐라든 나는 기계의 나사가 아니야.” 그건 생각일 뿐 페인에게 말한 것은 아니었지만, 모두가 맹렬히 느끼고, 믿고 싶었던 사실을 대변해 주었다. 그들은 그 말을 암기하고, 각자 자신의 상황에 적용했고 믿었다. 누가 뭐라든 그들은 기계의 나사가 아니었다. (p. 558)



이 소설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부분 중에 하나는, ‘리더십’이다. 다른 일도 아니고 자기 수하의 부하가 죽느냐 마느냐하는 시점에서 중대장의 능력은 그야말로 절대적이다. 처음 C중대의 리더는 스타인이었다. 그는 인간적인 리더였고, 부하의 목숨이 상사의 명령보다 우선이었다. 그는 강압적이지 않았고, 부하 한명 한명을 챙겼으며, 자신의 중대에 ‘인간적’인 애정이 있었다.



인간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 전시상황에서 그는 리더의 자질부족으로 물러났고, 새로운 리더 밴드가 C중대로 발령받는다. 그는 부대원을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았고 권위를 중시했으며 인간적인 면모로 부대원들과 소통하기를 거부하며 진급에만 목을 맸다. 부하들은 그의 판단착오로 개고생을 하며 희생되었고, 그는 후에 해임된다.



정글에서 부하들을 이끌고 절체절명의 순간들을 지나가야 하는 리더의 자리에 누가 앉느냐에 따라 중대의 모습은 달라졌다. 위에 앉은 이의 지력에 따라 생사가 갈리는 전쟁터에서 병신 같은 리더를 모시는 부대원들은 딛는 걸음 자체가 절망이었다.



숨넘어갈 듯한 양상으로 긴박감 넘치게 그려내고 있다거나, 죽음에 대한 오싹한 공포를 과장하지 않는 순도 있는 작품이다. ‘그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그들을 기억하게 하는 작품이다. 죽을까봐 벌벌 떨면서, 죽이기 위해 눈을 번뜩이면서, 기계 속의 나사로, 총알받이로, 그렇게 자국을 위해 비명횡사했던 그들을 애도하게 하는 작품이다.



작품에 전투에 대한 전략과 위치 언급이 많아서, 고지번호를 단 지형도가 하나 실려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치열했던 전투만큼이나 치열하게 갈등했던 그들의 심리를 고스란히 전해준 작품, 제임스 존스의 <신 레드 라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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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완 송 1 - 운명의 바퀴가 돌다
로버트 매캐먼 지음, 서계인 옮김 / 검은숲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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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매캐인의 ‘소년시대’는 마지막까지 독자를 붙들고 있는 힘이 참 강렬해서 인상 깊게 읽었다. 작가의 다른 작품을 찾아봤는데, 번역본은 없었다. 동일 출판사에서 얼마 전 ‘스완송’을 출간했고 나는 이제야 읽는 행운을 누렸다. 전작은 500페이지 두 권, 이 작품은 700페이지 두 권이다. 로버트 매캐먼의 1400페이지 넘는 대작, 크게 호흡한번하고 펼쳐야 했다.



표지부터 기대되는 이 작품은 1987년 작으로 제 1회 브램스토커상을 동시 수상한 베스트셀러다. 그것도 스티븐 킹의 ‘미저리’와 함께 수상했다. 옮긴이만큼이나 왜 이제야 이 작가가 한국에 소개될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 든다. 1952년생인 그는 절필의 기간을 거쳐 지금은 왕성한 집필을 하고 있다. 앞으로 그의 최신작과 그리고 아직 소개되지 않은 여남은 개의 작품들을 계속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소설은 세계 3차 대전 그 이후를 그린 환상소설이다. ‘소련’과 ‘미국’의 핵전쟁으로 미국전역이 핵미사일로 초토화된다는 거대한 사건구성은 저자가 80년대에 집필했음을 감안해야 한다. 살아남은 소수의 인간들이 핵으로 파괴된 도시 속에서 어떤 형국을 맞이하게 되는지를 장장 1400 페이지를 넘기면서 그려내고 있다.



소설은 크게 세 공간에서 각자 살아남은 인물들을 조명한다. 스완의 무리, 시스터의 무리, 매클린의 무리이다. 스완은 생명을 일으키는 능력을 지닌 소녀이다. 시스터는 유리고리의 인도에 이끌려 스완에게로 향하는 여성이고, 매클린은 악령에 이끌려 악한들을 수하에 두고 부대를 이끄는 대령이다.



그 무리들이 각자의 길을 가면서 닥치게 되는 상황, 만나서 손잡는 인물들을 통해 독자는 전율하게 된다. 전혀 종잡을 수 없이 흘러가는 스토리의 전개 때문에 각자의 이야기들이 섞여 어떤 맥을 이루게 될지 흥미롭게 책장을 넘길 수밖에 없다. 결국 선악의 대치를 피할 수 없고, 꺼림칙하지 않은 깨끗하고 환상적인 결말을 만날 수 있다.



작가가 이야기를 풀어내는 역량에 혀를 내두른다. 완전히 매료될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혹자는 등장인물이 너무 많다고 하지만, 작가는 각자의 캐릭터에 완전한 개성들을 분출시킴으로써 혼란의 여지는커녕, 오히려 작품성을 더 돋보이게 한다.



우리나라는 핵전쟁이라는 단어에 굉장히 민감할 수밖에 없다. 북한에 대한 우리의 염려는 늘 존재한다. 언제 또 연평도 사건 같은 도발이 시작될지 모르고, 그것이 전쟁국면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그때의 전쟁은 핵을 중심으로 한 ‘단 몇 분간의 작전’이면 족하게 될 터이니 말이다. 이 소설의 소재는 ‘핵전쟁 그 이후’의 비참하고 잔혹한 현상들을 적나라하게 상상하고 있기에, 우리나라 독자에게는 보다 심각한 공포를 심어줄 수 있으리라.



저자의 ‘악’에 대한 상상이 돋보였다. 죽음의 그림자가 온 땅을 덮고 있는 상황, 가까스로 살아남은 소수의 인간마저 방사선 때문에 깡그리 멸망할지 모르는 형국에서 악의 성장과 광적인 살인 행태는 인간의 권력욕이 ‘단순하게 살고자 하는 의지’를 넘어서는 것임을 느끼게 한다. 핵전쟁 이후에 펼쳐지는 것은 ‘살아남은 자들 간의 참혹하고 비열한 전쟁’이다. 작가는 이 전쟁의 끝을 선악간의 거대한 대결흐름으로 연계시킨다.



“지금 세상에는 이제 선도 악도 없다오. 남아 있는 거라곤 더 빠른 총 솜씨와 더 거친 폭력뿐이오.” (2권 p. 54)



“전쟁을 벌이다니, 대체 뭘 위해 싸우는 거죠?”

“토지, 마을, 식량, 총, 휘발유, 뭐든지 남아 있는 걸 위해서요. 그들은 제정신이 아니오.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서 안달이 난 놈들이오. 소련을 상대할 수 없게 됐으니 자기들끼리 적을 만들어내는 거요.” (2권 p. 63)



아주 동화적인 부분들이 많다. 주인공들이 자연히 ‘욥의 가면’을 쓰게 되고 일정시간 이후에는 그 가면이 벗겨지면서 그 인물의 마음에서 비롯된 ‘진짜 얼굴’을 갖게 된다. ‘선’의 세 얼굴이 더 아름답게 회생하고 ‘악’의 두 얼굴과 그 목소리가 변하게 되는데, 그 악의 생김새라는 것이 가히 가관이다. ‘마음이 담긴 얼굴로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기에 ‘악’에게는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생각해보게 되었다.



‘삶과 죽음 아래, 인간이라는 미물이 얼마나 헛된 인생들을 영위하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인물들을 통해 ‘무엇이 그렇게까지 해서 살아내야 할 이유인가’를 살피면서, 희망이 곧 의지인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희망의 주체인 스완과 그녀의 선한 마음들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내 영혼의 수질을 점검하게 된다.



절망만 가득찬 죽음의 늪지대에서 한 톨의 씨앗을 틔워내는 힘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작품, 로버트 매캐인의 <스완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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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내지 않고 평안히 사는 법 - 찰스 스탠리의
찰스 스탠리 지음, 홍종락 옮김 / 두란노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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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스탠리 목사님는 개인적으로 외국 목회자 중 가장 존경하는 분이다. 사실 우리나라 유명 목회자도 잘 모르는 편이기에, 이 목사님의 존재감은 참 특별한 케이스다. 크리스천들 중에서 ‘찰스 스탠리’ 목사님을 모른다면, 나는 그냥 그의 설교 아무거나 찍어서 하나만 들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러면 그냥 뭐 한방에 훅 갈 것이다. 특별히 ‘심령이 상한, 고름나는 상처 부여잡고 가슴팍만 두들기는 영혼’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설교가 많은 분이다.



책은 크게 3장으로 분류되지만, 13장으로 나눈 타이틀에 더 큰 관심이 간다. 화를 분석하고, 다스려서 그리스도인으로서 건강하고 평안한 삶을 누리는 비결에 대해서 성경을 중심으로 한 설득력 있는 논조를 유지하고 있다. 저자 자신의 솔직한 간증들이나 비교적 직설적인 조언들이 인상적이다. 주제 중에서 가장 펼쳐보고 싶었던 챕터가 ‘하나님께 화가 날 때’였다. 쉽게 들어보지 못하는 부분이니까. 그리고 거기서 잊을 수 없는 한 구절을 마음에 담았다.



하나님께 반항하고 있다면, 용서와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당장 부르짖으라. 잠시도 미루지 말라. 당신이 겪어온 여러 어려움은 하나님께 반항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p. 163)



초반부는 ‘분노’라는 태도를 바라보는 영적 시각에 성경적 통찰력을 부여한다. 쉽게 분내는 태도의 원인을 분석하고, ‘화’에 대한 분별력을 제시한다. 특별히 이 책에서 화를 다스리는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용서’를 집중 조명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용서에 대해 가지는 책임의식을 심어주고, 용서에 이르는 과정 안에서 우리가 누리게 되는 평안이 무엇인지를 자세히 전달한다.



‘주변인들에게 어떻게 하고 살았나. 내 분을 이기지 못해 상처를 주면서도 어떤 식으로 합리화하며 지냈나’ 생각하며 많이 반성하게 되는, 개인의 삶에 대입이 쉬운 책이었다. 그리고 강경하고도 날카로운 한마디에 많이 깨지게 되는 책이다. 화를 다스리지 못해 자라난 내 영적인 상태의 결과물이 무엇인가를 새삼 점검하게 된다.



관계에 대한 조언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어쩌면 지금 내 생활에서 많이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주 확고한 그의 조언들이 지금의 나에게 위로가 되기도 하고, 지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설명 같기도 했다. 인간관계에 대한 조언은 참 여러 가지 형태를 띠고 있으나, 개인적으로 나의 신앙적 소신과 잘 들어맞는 편이어서 더 공감하며 읽었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분을 섬기려 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라. (p. 162)

성적으로 부도덕한 사람을 친구로 두었다면, 결국 자신의 가치와 기준까지 타협해야 할 것이다. 처음에는 그 과정이 미묘할 수 있다. (…) 그러나 미끄러운 내리막길로는 아예 들어서지 말아야 한다. (p. 194)



상처를 주는 언행에 맞서는 최고의 방어책은 아예 대응하지 않는 것이라고 확고히 말하는 저자. ‘성경 펼쳐놓고 알아서 판단하라’는 우유부단함 없이 어떻게 대응하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고, 하나님의 명령인지 제대로 가르쳐주는 정말 훌륭한 책이다. 어느 순간 분이 달아오를 때, 한 번씩 읽으면서 나의 뜨거운 혈기에 찬물을 끼얹어줄 수 있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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