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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 여섯 개의 도로가 말하는 길의 사회학
테드 코노버 지음, 박혜원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7월
평점 :
보통 크면서 ‘해라’ 보다 ‘하지 마라’ 소리를 더 많이 듣고 자란다. 그러니까 ‘안 된다’하는 세뇌에 너무 일찍 노출되고, 오히려 그 때문에 반항기의 정도가 더 심각한 수준이 되어간다. 커서 철들고 나야, 혹은 자기도 애 낳아서 길러봐야 그 때 왜 ‘안 된다’가 그렇게 많았는지 끄덕이게 되고, 지 애한테도 ‘안 돼’하는 게 속속 생긴다. ‘로드’란 책을 읽고 났는데, 서두부터 뭔 자다가 봉창일까. 이 책에서 나는 저자를 이런 포커스로 좀 건드리고 싶었다.
저자. 테드 코노버. 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여러 유력매체에 기고하고 있는 논픽션 작가다. <뉴잭>이라는 책으로 2001 퓰리처상 후보에 오르고, 2000 미국 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다. 2003 구겐하임 펠로우십 논픽션 부문을 수상했다. 다른 저서로는 <화이트오웃><코요테들><정처 없이 떠돌기>등이 있다.
책은 세계의 중요한 사회적 문제들을 주제로 다루고 그것이 ‘길’을 통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몸소 겪은 체험기다. 형식은 그 ‘길’을 따라 동행한 일반적인 기행문이다. 주제는 6가지로 보다 장기간에 걸쳐 저자가 다녀온 길들을 소개하고 있다.
마호가니의 유통을 다루기 위해 페루 고산지대의 깊은 숲속까지 들어가서 직접 나무 베는 이들과 동행한 여정. 인도 잔스카르에서 교육을 위해 얼음길을 나서는 이들과 동행한 여정. 거기서 개발의 폐혜를 막기 위해 길을 닦지 않는 정부의 입장과 개발이 없으니 빈곤의 수레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는 국민들과의 대립된 입장차를 만난다.
이스라엘 ‘웨스트뱅크’주변의 검문소들을 거치면서 권력이 장악한 도로 내 만행들을 목격한다. 케냐의 화물트럭에 동승하여 ‘에이즈를 퍼뜨리는 길’을 다니고, 나이지리아 라고스에서 앰뷸런스에 올라 가난의 처참한 비극을 본다. 이것은 또 하나의 주제인 중국의 신흥 고속도로의 부의 편중과 대치된다.
여러 가지 시각이 나올 수 있는 사회학적 접근인데, 정작 저자는 보고서를 내민다. ‘이런 상황이었고, 뭘 봤고, 그곳 주민들은 이런 얘기를 하더라.’ 정도? 더 나아가 저자 자신이 취하는 입장이나 주장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때문에 더 기행문 정도로만 보게 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 때의 문제점은 단순한 기행으로서의 전개라 쳐도 이 책은 재미가 없다. 눈앞에서 겪은 세계적인 중대 사안을 가지고도 흐리멍덩한 경험들을 풀거나 단편적인 사람들만 모아놓은 흥미롭지 않은 얘기만 이어나간달까.
그래도 아주 은연중에 내비치는 저자의 입장이라는 것은 이렇다.
‘미국은 개발의 정점을 찍었고, 자국에는 더 이상 좋은 나무가 없어서 마호가니를 수입하는 주제에, 빈곤한 국민들이 떼로 드글거리는 페루의 경제는 아랑곳 않고 환경조약에 서명시키고, 환경수호에 협조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나’.
‘미국은 길이라는 길은 다 닦아서 기반시설 다 확충해놓고 인도에는 길 닦아서 누릴 발전보다 환경보호가 우선이라고 말할 수 있나’,
‘미국은 자동차산업을 이만큼이나 벌려놓고 몇 억대의 차를 굴리면서도 중국에게는 미국을 본받지 말라고 말할 자격이 있나’.
세계가 환경문제를 화두로 꺼낸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심각성을 인지하고 행동으로 나선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린피스가 1971년도에 출범했고, 우리나라는 1996년에 와서야 환경의 날을 지정했다. 그리고도 한동안 환경문제의 심각성은 ‘경제적 개발’의지에 밀려 뒷전이었다. 세계 각국은 이제야 발등에 불이 붙은 것 마냥 ‘환경 보호’하자고 난리버거지를 치고 있다. 얼음이 녹는 속도를, 이상기후의 변화를, 바다의 조류와 대기오염의 정도를 실제로 경험하면서 그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 이제야 ‘개발’의 단맛이 보겠다고 ‘길 닦자는’ 후진국들의 그 후진 생각이 사회문제로 대두된다. 물론 그들의 극에 달한 가난과 도저히 해결 불가능해 보이는 여러 사회구조적·정치적·종교적 문제. 그런 것들을 다 무시하고 환경보호가 먼저 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선진국들이 그들에게 환경을 논하기에 무자격인 이유가 ‘내가 먼저 개발했으니까 할 말 없는 처지’라고? 그건 ‘거짓말하지 마라’라고 가르치는 부모에게 아이가 ‘엄마도 거짓말하잖아~’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물론, 엄마가 거짓말을 안 하고 살았다면 가장 좋은 본이 되겠지만, 해봤기 때문에 그 결과를 아니까 자기 자식에게는 ‘하지 말라’고 교훈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가뜩이나 계속 강수량이 줄어서 걱정인데, 아마존 유역을 개발하고, 그 세계적인 산맥들을 다 북한산 둘레길처럼 깎아서 ‘등산객 산불조심’이나 써 붙여 놓으면 대단히도 후회 없는 개발이겠다.
자동차 그만큼만 굴려도 중국은 그 많은 공장 때문에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다른 나라를 압도하고 있는데, 고속도로 길이로 미국을 따라잡아서 무슨 큰 업적을 세울 거라고 자국의 현 환경 오염도를 우습게 보는지 모르겠다. 저자의 말만 들으면 그 나라의 인구 절반 이상이 자동차 굴려대는 날을 목표로 삼았다는데, (안 그래도 미친 듯이 수입하는) 석유량을 앞으로 또 어디에서 다 감당한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사실 중국은 지금 고속도로 뿐만 아니라 고속철도에 더 열을 올리고 있다. 그야말로 개발의 온상이다.
개발, 발전만 가능하다면 한 나라가 먹고 사는데 그것만큼 쉽고 효과적인 것이 있을까. 그러나 우리는 이제야 환경의 소중함과 그 보존의 중요성을 절실하고 있다. 그리고 지구의 미래가 달린 그 문제는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나 타협할 소지가 전혀 없다. 고속도로? 산을 깎아? 그거 한 나라들은 지금 잔인한 환경재해를 계속적으로 만나고 있고, 개발이 얼마나 허망하게 인간의 목숨을 앗아가는지 똑똑히 보고 있다.
개발의 쓴맛으로 죽어나가는 것들은 살릴 방도가 없다. 개발의 도상 중인 나라들을 마냥 장려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개발을 꿈꾸는 나라들이 자체적으로 살아갈 방도까지 논하기에는 앞서 너무 장황한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 같다. 지금 당장 배고파서 허덕거리는 이들에게 환경문제는 엿이나 먹으랄 수 있는 이야기다. 그러나 큰 눈, 장기적 안목으로 봤을 때 절대 간과할 수 없는 중대사임에는 틀림없다. 때문에 저자가 본 처참함에 대한 연민으로 그 같은 시각을 내놓는 것은 ‘미래를 제쳐두고 일단 이 세대만큼은 책임지고 먹이자’는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생각이다.
모처럼, 저자의 지루하고 긴 여정 속에서 빈민사회의 심각성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었던 의미 있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