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레즈 데케루 펭귄클래식 106
프랑수아 모리아크 지음, 조은경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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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 요즘 읽고 있는 책들이.. 실존주의에 관련된 것들이다. 강신주의 다상담도 읽고 있는데 가족을 버리지 못하고 얽매여 고민하는 사람에게 과감히 자신이외의 모든 것을 버리라고 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기도 한 테레즈가 아마도 이에 딱 맞는 인물이지 싶다. 불행한 결혼생활은 시작부터 삐걱거린다. 다른 사람의 이목을 최고로 여기는 남편, 가족의 명예를 최고로 여기는 남편에 대한 분노는 테레즈의 가슴 저 깊은 곳에서 그 무엇인가를 이글거리도록 한다.

 '이제부터는 이 강력한 '가족'이라는 기계가 나를 향해 돌진할 거야. 그것을 없애거나 그 사이에서 제때 빠져나오지 못했기 때문이야. 다른 이유를 탓할 필요도 없어. 그들이었으니까, 나였으니까 이렇게 된 거지. 2년이 채 안되는 동안 나를 감추고, 체면을 세우고, 남을 속이기 위해 내가 했던 이 노력. 다른 사람들은 습관 때문에 익숙해지거나 무감각해져 따뜻하고도 전지전능한 가족의 품 안에서 포근하게 잠이 들어 죽을 때까지 그렇게 지내려고해. 하지만 나는, 하지만 나는,... p.140

 테레즈의 말처럼 대부분의 사람은 익숙해지고 무감각해져서 살아간다. 최소한 참고 묵묵히 견디면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전지전능하게 느껴지니까 말이다. 마지막에 그래도 한번은 진정한 대화가 통할까 했으나 역시나 서로의 대화는 벽으로 튕겨져 원점으로 되돌아 온다. 남편에게는 인습이라는 탄탄대로가 죽는 그 날까지 필요했기 때문이다.

 테레즈와 시누이인 안의 대조적인 성격이라든가, 안이 짝사랑했던 그리고 테레즈의 마음에 불을 지른 장 아제베도와 테레즈의 남편을 비교해보며 읽는 것도 재밌었다. 사람이 꼴보기싫으면 사소한 모든 것이 싫은 법.. 자세히 묘사되는 그 꼴보기 싫음에 속으로 큭큭거리면서 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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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날들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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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스승이 되어주는 건 우리에게 친숙한 것이지 일반적인 게 아니다. 사랑의 관념은 사랑이 아니다. 바다의 관념은 소금도, 모래도 아니다. 물개의 얼굴은 관념에서 솟아올라 우리를 바라보고 우리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사건과 함께 풍성해지고 즐거워져야만, 비로소 생각이 시작될 수 있다. -1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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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식탁 위의 책들 -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종이 위의 음식들
정은지 지음 / 앨리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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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숙해서 실제로 원작을 읽지 않았는데도 읽었다고 착각하게 되는 책들이 있다. 이 책에 소개되는 많은 책들 중 <빨간 머리 앤>, <작은 아씨들>, <소공녀>, <키다리 아저씨>등은 어렸을 때 만화영화로 봐서 더욱 그런 것 같았다. 왜 이 이야기들을 실제로 찾아서 읽어보겠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을까. 줄거리보다는 하나의 이미지로 남아있는 이 주인공들에 나는 얼마나 감정이입을 하며 어린 시절을 지나왔는지..

 그런데 이 책은 내가 예전부터 이런 식으로 한번 써보고 싶었던 책이었다! 귀여운 일러스트들이 책의 내용이 말랑말랑하고 가볍기만 할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저자의 내공이 대단함을 알게 해준다. 그 내공은 사실의 근원(?)을 밝히고자하는 집요함에서 나오기도 한다. 그것은 가히 음식에 대한 탐구정신이라 할만하다. 가령 작은 아씨들에서 라임 피클이라는 것이 나오면 원판을 뒤지는 것은 물론 인터넷 사이트나 다른 책들을 집요하게 참조하여 만드는 방법까지 알아내는 것이다. 신기했던 것은 그 라임 피클에 의문을 품은 사람들이 전세계에 그렇게 많이 있다는 것! 음식과 음식먹기를 진심 사랑하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혼자 먹는 밥이야말로 음식의 맛을 즐길수 있는 가장 은밀한 행복이라는 저자의 서문에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오늘은 무슨 맛있는 것을 먹을까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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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사막 펭귄클래식 124
프랑수아 모리아크 지음, 최율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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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삼각구도는 마리아 크로스라는 여인과 이 한 여자를 좋아하는 아버지와 아들이다. 아버지는 의학박사, 성인군자라 지칭되는 평범한 가정의 남자이지만 가정생활의 권태를 이기지 못하고 다른 여자를 엿보게 된다. 자신에게는 조금도 관심없는 한참 어린 여자를 사랑하는 중년 남자의 질풍노도(?)의 마음이.. 마른 세수를 습관적으로 하는 모습으로 다소 귀엽게 표현된다. 그의 아들 레몽은 마리아라는 여자에 의해 드디어 내면의 남성성이 드러난다. 김춘수의 시처럼 그대 이름을 불러주었을 뿐인데를 전차에서 눈길 한번 주었을 뿐인데로 바꾸면 된다. 쉽게 정복되지 않는 마리아는 레몽이 삼십대 중반의 중년이 될 때까지 복수의 대상으로서 첫 사랑의 기억으로서 레몽의 사랑의 역사를 좌지우지하게 된다.

 사랑은 이 세 사람의 내부에 격동의 폭풍을, 정염의 화신을 불러온다. 이런 과정들이 재밌게 표현되어 있다. 줄거리로만 따지면 그리 새로울 것 없는 통속소설인데 역시나 이것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구나,를 느끼게 한다.

 소설의 말미에 일흔살이 된 박사는 한 남자에게 아내와 아이들이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 말한다. 그것은 일종의 보호막인데 남자들을 수많은 유혹으로 부터 지켜준다고 하면서 말이다. 결혼에 관심없는 레몽에게 혼자 살아서는 안된다는 조언까지 한다. 이 소설은 지극히 남자의 입장에서 쓰여진 게 맞는 것 같다. 마리아라는 신비스러운 존재를 다소 과장되게 표현하고 아내나 어머니의 의미를 남자의 입장에서 그리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을 남자가 읽는다면 어떤 느낌일까, 사실은 궁금했다. 책소개에 프랑수아 모리아크는 일평생 인간 본연의 내적 갈등과 고통의 문제를 연구했다고 한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게도 관심이 생겼다. 

 

 

"마리아는 정말 누구와도 같지 않은, 희한한 여자예요. 그래서 내가 집을 떠나 있을 때면, 어처구니없는 결단을 내리지 않을까 걱정이 된답니다. 종일 꿈만 꾸고, 묘지 아니면 외출도 안 하고.... 혹시 그게 다 독서의 영향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네, 책 때문일지도 모르지요.”

p.131

 

사랑하는 사람들을 우리에게서 빼앗아 가는 것은 죽음이 아니다. 오히려 죽음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존시킨다. 그들의 가장 젊고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 그래서 죽음은 사랑을 썩지 않게 보존하는 소금이라고 할 수 있다. 진짜로 사랑을 분해시키고 사라지게 만드는 것은 삶이다.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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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가는 문 - 이와나미 소년문고를 말하다
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8월
구판절판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만들 때였습니다. 치히로는 처음에 터널로 들어갈 때와 나중에 나올 때 똑같은 모습입니다. 어머니 손에 달라붙어 무서워하는 얼굴로 걷고 있지요. 그에 대해 치히로가 전혀 성장하지 않은 것이냐는 비평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모가 아무리 못미덥다 해도 아직 초등학생일 뿐인 아이가 부모로부터 완전히 독립하기란 블가능합니다.
때가 올 때까지 아이는 제대로 부모의 보호 아래 있어야 합니다. 서둘러 성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부모를 불신하는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차라리 의존하는게 낫습니다.
불신과 의존은 물론 공존하지만, 의존을 인정하지 않으면 아이의 세계를 이해했다 할 수 없습니다. 아이의 성장과 자립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은 틀리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수업을 거쳐 어느 시점에 이르면, 이제 어엿한 어른이 되었구나 하는 선을 긋는 독일교양소설과는 다르지요.

아이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현명해지는 만큼 또 몇 번이고 바보같은 짓을 합니다. 아이에게는 거듭 바보 같은 짓을 할 권리가 있습니다. 어린아이의 세계는 특히 더 그렇습니다. -99쪽

책에는 효과 같은게 없습니다. '이제야 되돌아보니 효과가 있었구나'하고 알 뿐입니다. 그때 그 책이 자신에게 이러저러한 의미가 있었음을 수십 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 것입니다.

책을 읽어야 생각이 깊어진다는 말은 생각하지 말기로 합시다. 책을 읽는다고 훌륭해지는 것도 아니니까요. 독서라는 것은 어떤 효과가 있다든가 하는 문제가 아니니까요. 그보다는 어렸을 때 "역시 이것"이라 할 만큼 자신에게 아주 중요한 한 권을 만나는 일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1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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