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장 가는 길 - 그림감정사 박정민의 행복한 뉴욕 경매일기
박정민 지음 / 아트북스 / 2005년 9월
평점 :
절판


내용과는 상관없이 보는 것 만으로도 그냥 느낌만으로 기분 좋아지는 책이 있다. 이 책도 그런 책 중에 하나이다. 무엇보다 표지의 그녀는 정말 기분 좋게 생겼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안좋은 일이지만 이 책을 읽기 전 표지를 볼때 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딱 내가 기분좋아지는 얼굴 생김새이니..

저자는 미술작품을 경매하는 감정사(?)이다. 사실 이 책을 읽기전에는 이런 직업도 있구나 했으니, 흥미로운 직업의 세계를 탐구하듯 읽어가면서 괜히 기분좋아지고 명랑해지고 싶었다. 나의 직업이 아닌 일은 모두 신기하고 재밌어보이는 걸까. 아, 그녀의 삶은 얼마나 다이나믹하고 고고하고 멋진지 읽는 내내 부러움이 증폭되어만 간다.

직업엔 귀천이 없다고들 말한다. 맞는 말이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그 일을 즐겁고 보람있게 할 수 있으면 그 직업이 자신에게 가장 좋은 직업인 것이다.  사람이 어떤 직업을 갖고 그 일 속으로 얼만큼의 보람을 느끼며 산다는 것 아주 쉬운 것 같지만 또 가장 어려운 일인것 같기도 하고..  명랑하고 밝은 사람 그래서 주변사람들에게 좋은 기운을 마구 뿜어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책속의 그녀 처럼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는 왜 달리는가 - 동물들이 가르쳐준 달리기와 진화에 관한 이야기
베른트 하인리히 지음, 정병선 옮김 / 이끼북스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손에 쥐고서는 한때 달리기에 버닝했던 나의 경험이 떠올랐다. 그때가 언제인가 생각해보니 재작년 가을이었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갑자기 마라톤이라는 것을 취미로 삼아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마도 그 시기에 마라톤이 유행했던 영향도 있었고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웬지 멋져보이기도 하는 이유아닌 이유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내성적인 성격탓에 마라톤 동호회에 가입같은 건 생각도 못했고 어떻게 나의 열정(?)을 불살라 볼 수 있을까 생각하던 차에 모 기업에서 주최하는 10km구간 마라톤 대회를 덜컥 신청해 놓고 만다. 그리고 3개월 헬스까지 끊어놓고 러닝머신을 하면서 기본기를 다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3개월중 한달은 일주일에 세번정도는 갔고 갈때마다 5km씩은 뛰었던것 같다. 헬스장가서 다른 기구들은 하나도 안하고 러닝머신만 했는데 그 의지가 한달을 못하고 나머지 두달은 거의 가지 않았으니 대회날은 다가오는데 연습은 거의 안한 상태로 대회날을 맞게 되었다. 미리 받은 유니폼을 입고 가슴엔 번호까지 달고 초등학교 달리기 이후로 총소리전의 설레임까지 느끼면서 나는 연습도 없이 10km 마라톤에 참가하게 되었다.

두둥. 결과는 1시간 13분 정도였던 것 같다. 나는 평소 약골이라 회사사람들이 모두 그런데를 왜 나가냐고 다들 황당한 반응을 보였었는데 그런 기우를 뒤로하고, 또  연습량이 없는 걸 감안하면 놀라울 정도의 성과인것 같은데 문제는 뛴 다음날 부터 일주일정도였다. 뛸때는 오기 비슷한 것으로 들어오긴 했는데 갑작스런 과도한 운동에 엄청난 근육통으로 일주일을 고생했다. 같이 나갔던 회사의 과장님은 평소에 꾸준히 운동을 하신 분이라 다음날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는데 말이다. 이때 깨달은 것이 연습이 없이 하는 마라톤은 몸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속도가 평소에 운동을 했던 사람과 현저히 비교가 되는구나 하는 것이었다. 나는 자랑스러운 참가 메달을 받아들고 아픈 몸을 이끌고 총총 인파를 뒤로 한채 집으로 왔다. 그 이후로 이제 본격적으로 마라톤을 해봐야겠다 연습도 없이 이 정도 실력(?)인데 연습을 하면 괜찮은 아마추어 마라토너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마라톤 동호회 사이트에 가서 기초 지식도 모으고 마치 몰랐던 신세계를 발견한 양 그렇게 나의 의지는 하늘을 찔렀던 것 같다. 이 대회를 참가했던게 가을이었는데 곧 겨울이 왔고 갑자기 추워지는 바람에 그 의지는 어디론가 쏙 사라진것이 지금도 의아한 일이지만 어쨌건 그런 경험이 있었던 것이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달리기에 대한 열정을 느끼는데 도움을 준 것 만은 확실하다.

나는 이 책을 처음 제목과 표지만 봤을때 단지 한사람의 취미로서의 마라톤에 대한 이야기인줄 알았다. 좀 읽다가 보니 인간이 어떻게 달리기를 하게 되었으며 다른 동물들의 예를 들면서 동물에게 달리기가 갖는 의미, 달리기에 적합한 신체적 구조와 인문학적 배경등이 나와 있어서 생각했던것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저자가 동물학자라는 것이 큰 몫을 했을 것이다. 호흡이 달리기에 미치는 영향 장거리 구간을 뛸 때 연료소모는 어떻게 되고 어떤 방식으로 하는 것이 좀더 나은 효율을 내는가 등에 대한 과학적 지식들이 비교적 구체적으로 나와있다. 그런 동물을 보고 자신을 대상으로 그런 방법들을 어떻게 적용해 볼수 있을까 생각했다는게 놀라웠다. 그 만큼 그는 이미 달리기의 매력에 푹 빠져있는 것 같았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다양한 신체활동중에 아무런 도구도 사용하지 않으면서 단 하나 앞으로 나아간다는 목표하나로 순수할 수 있는 운동이 달리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적절한 비유일지는 모르겠으나 달리기는 그래서 축구나 농구와 달리 어떤 (영악한)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 순수함 그 자체에 대한 고행, 자기 자신과의 싸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팀원과의 협동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어떤 치밀한 전략이나 상대팀을 (물론 규칙을 준수하는) 속이는 행위 등이 없으니까 말이다. 오로지 집중해야 할 것은 나의 숨소리, 흔들리는 근육, 흐르는 땀이고 반복되는 행위속에 잡념이 사라질 것도 같은 어딘지 모르게 고행, 수행같은 느낌이 든다는 말이다. 가장 동물적인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인간이라는 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달리기는 바로 그런 운동인 것이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하다가 분명히 힘들어지는 순간이 온다. 그때 우리에게는 목표를 향한 확실한 신념을 필요로 한다. 달리기를 하면서 느꼈던 저자의 인용을 보는 순간 놀랐다. 이것은 우리 인생의 다반사에 적용되는 말이 아닌가!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지? 여기 있어야 하는 걸까? 왜? 그러나 답은 없다. 그 지점에서 사람들은 신념을 필요로 한다. 무시와 고의적 외면, 희망과 낙천주의가 결합된 그런 종류의 신념 말이다. 신념은 논리에 도전하면서 우리가 싸워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해준다. 그 신념이 아마도 마음과 계산기를 구분해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p. 302)

책의 말미에 저자가 100km 마라톤을 6시간이 넘은 시간에 완주하면서 그 희열을 적어놓은 부분이 있다. 살면서 우리가 어떤 목표를 향해 도전할 때 사람이 가장 순수해지는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한가지 목표를 향해 계획을 세우고 힘을 하나로 모으고 준비하는 과정을 읽으면서 어떤 하나에 집중하는 사람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전체 인생이 몇 시간 동안의 이 짧은 삶으로 응축되고 있다. 과거, 현재, 미래가 타는 듯한 매듭으로 녹아든다. 그곳에서 몸은 뒷걸음질치고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찬란하게 빛난다. 한계가 사라진다. 나는 점점 더 냉혹하게 고통을 즐기고 있다. 고개를 들어 앞에 있는 나무를 응시한다. 저 나무까지만 페이스를 유지하라. 거기까지 달려가서는 나 자신을 위로한다. 해냈다. 이제 저기 저 나무까지다. 그렇게 한번에 조금씩 더 나아간다. 앞으로의 내 인생에서 결코 다시는, 다시는 달릴 필요가 없는 거리이다. 중요한 순간은 바로 지금일 뿐이다. 지금, 지금. 이 순간인 것이다.(p. 306)

이 책에서 이 문장을 읽은 것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크다. 끊임없이 나 스스로를 실험하고 내 목소리에 귀를 귀울이는 것, 살면서 삶의 어떤 상황에 놓여 있을지라도 잊지 않겠노라고 내 자신에게 다짐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2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다가 울어본게 정말 오랫만인것 같다. 이 책을 재미있다고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삶과 죽음이라는 단어,그리고 그 의미가 갖는 숭고하고도 엄숙함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정말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나에게 주어진 것들이 너무 당연해서 행여라도 그것들의 소중함을 잊고 살지는 않았는가 하는 물음을 던져준다. 삶이 나를 속일지라도 슬퍼하지 말라는 어느 시인의 말이 생각난다. 나를 속였다고 생각했던 것이, 내가 속았구나 아차!했던 그것이 참으로 부질없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그런 모든 것이 나의 삶의 일부이고 내가 감내해야하는 나의 몫인 것이다.

아, 나의 생.

한때는 징글맞다고 생각했던 나의 삶, 몇번이라도 다시 오라!

얼마든지 맞아줄테다. 니체의 말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마음산책 / 200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마지막 문장 '결코 결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한 남자아이의 의문의 죽음으로 시작되는 이 책은 무려 600페이지에 달하는 추리소설이다. 대학교 2학년때인가 이 책이 두권짜리로 나왔을때 매일 도서관문을 닳도록 드나들었던 시절 이 책을 읽기를 시도하다 포기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거의 10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왜 이책이 다시 출간되어 관심을 받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때 읽지 못했다는 기억이 있어 서점에서 이 책을 샀다. 보통 소설은 잘 사지 않는 편인데 오기로라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에서... 그리하여 나의 책장에는 소설책의 경우에 한해서는 재밌게 읽었던 책보다 오기로 꼭 읽어야지 하는 두툼한 소설들이 주류를 이룬다.

이 책을 잡고 거의 한달이 다 되어서야 책을 덮을 수 있었다. 첫째는 하루에 찔끔찔금 30분이나 그 이하의 시간만을 이 책을 읽는데 할애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추리소설이면서 스밀라의 심리묘사나 실제적으로 사건과는 상관없어보이는 관념적인 문장들이 많아서 읽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김훈이 그랬던가.. 소설가가 한달음 소설을 쭉 내려가듯이 독자도 책을 읽을 때 한달음 쭉 읽어내려갈수가 있어야 한다고. 그런데 나는 하루에 찔끔찔끔 읽었으니 이 책의 중요한 부분인 문장의 흐름을 음미하기는 커녕 비슷비슷한 등장인물의 이름이 생소하기까지 한 사태가 발생했지 무언가.. 이 인물이 누구였지 앞으로 가서 찾다가 하는 행위를 반복..

아이의 죽음을 파헤쳐가면서 다다른 결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에 이해되지 않는 것만이 결론이 날뿐이며 그 외의 것들은 결론이 나지 않는다라니.. 이 문장에 대해 한참을 생각했다. 겨울, 얼음, 눈, 빙하 온통 차가운 것들 뿐인 스밀라의 세계, 살면서 한번도 사랑을 하지 않았다고, 타인에 대한 동정은 없다고 냉정하고 차갑게 말하는 그녀가 한 아이의 죽음의 원인을 파헤쳐가는 힘은 역설적이게도 결국은 모든 것이 다 사라져도 마지막에 남는 인간의 따뜻함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한번 읽고 끝내야할 책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 언젠가 또 매력적인 스밀라의 또다른 내면세계를 발견하게 될 날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 읽기의 방법
유종호 지음 / 삶과꿈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시를 읽기 시작한 것은 대학교때도 아니고 대학을 졸업하고도 한참 뒤의 일이었다. 왠지 시집은 봐도 내용이 와 닿지 않았고 내가 느끼는 것이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였을까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생각한 것 부터가 우리가 중고등학교때 시를 공부했던 방식이 잘못된 되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어떤 시를 읽고 내가 느끼는 바가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라는 의심을 벗어던진 뒤에야 비로소 그 시 속으로 들어가 감상이란 것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 같다.  김수영의 풀에서 풀은 억압받는 민중 밑줄 쫙 이런식으로밖에 가르쳐주지 않았던 것, 참으로 안타까운 우리나라 국어 교육의 현실이다. 지금은 좀 달라졌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공부하던 시절에만 해도 그랬다.

교과서에서나 어딘가에서 한번 보았을 법한 시들을 읽으며 이 시가 교과서에 있을 때는 왜 아무런 감흥이 없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중학교 1학년 때 국어 선생님이 하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취미란에 독서라고 쓰는 것보다 시 외우기 이렇게 쓰는게 훨씬 멋지지 않냐고.. 왜냐하면 살면서 독서하는 것은 우리가 밥을 먹는 것처럼 당연하고 기본적인 일이고 이에 더하여 시를 외우거나 하면 얼마나 멋진 일이냐고... 그때도 멋진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그런 것 같다. 시를 외우는 것을 고품격 문화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나만의 생각이겠지만 누가 뭐라하든 나는 영화 한편을 보는 것 보다 시집 한권을 보는 것을 더 고품격이라고 생각하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