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마음산책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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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껏 한번도 다른 사람들의 불행한 연애사건에 대하여 관용을 베푼 적이 없다. 그들의 연약함을 싫어한다. 그리고 그들이 무지개끝에 있는 남자를 찾는 것을 안다. 그들이 아이를 낳고 실버 크로스제로열 블루 유모차를 사서 봄 햇살 속에 강둑을 걸으면서 짐짓 겸손한 체 나를 비웃으며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을 본다. 불쌍한 스밀라, 자기한테 없는 게 뭔지도 모른다니까. 우리처럼 아이도 있고 결혼 증명서도 있는 여자들의 삶이 어떤지 모르지. 네 달 뒤 옛 임산부 친목회가 열리는 날, 다시 나쁜 병이 재발하여 거울 앞에 마약 주사를 죽 늘어놓던 사랑하는 남편 페르디난드가 급기야 욕실에서 행복한 엄마 중의 한 사람과 놀아나고 있는 모습을 목도하는 순간, 10억분의 1초만에 그녀는 위대하고, 자부심 강하며, 최상이고 절대 흔들리지 않는 어머니의 위치에서 난쟁이 요정으로 격하된다. 한방에 내 수준 이하로 굴러 떨어져 곤충, 벌레, 지네가 되어버린다.
-250쪽

그렇게 되면 그 여자들은 오랜만에 내 생각을 하고 연락을 해온다. 그러면 나는 이혼 후의 독신모의 삶이 얼마나 힘든지, 스테레오를 나눠갖기 위해서 어떤 싸움을 했는지, 애들 때문에 청춘이 어떻게 날아가버렸는지, 애들은 자기를 이용해 먹고 아무것도 보답하지 않는 기계라느니 하는 얘기를 들어줘야 한다.
"그럼 대체 네가 원하는게 뭔데?"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251쪽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대단히 과장된 얘기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상대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리라는 두려움 45퍼센트와 이번에는 그 두려움이 무색하게 되리라는 굉적인 희망 45퍼센트, 거기에 소박하게 사랑의 가능성에 대한 여린 감각 10퍼센트를 더하여 이루어진다.
나는 더이상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 내가 더이상 볼거리에 걸리지 않는 것처럼.
그렇지만 물론, 누구나 사랑에 압도될 수는 있다. 지난 몇 주간 나는 매일 밤 몇 분씩 그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나 자신에게 허락해 주었다. 나는 내 마음에 승낙을 내려놓고 내 몸이 그를 갈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한다. 나는 그의 고독을 안다. 더듬거리던 습관, 포옹, 개성의 거대한 핵심에 대한 깨달음을 기억한다. 이런 이미지들이 지나치게 갈망을 발산하기 시작하면 나는 이들을 잘라버린다. 적어도 그렇게 하려고 노련한다.
나는 사랑에 빠진 적이 없다. 그러기에는 지나치게 명확하게 사물을 바라본다.-4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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