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구두
헤닝 만켈 지음, 전은경 옮김 / 뮤진트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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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실수인 의료사고를 이유로 모든 세상과의 문을 닫고 홀로 살아가는 예순여섯의 남자가 있다. 가족이라고는 키우는 개와 고양이가 전부이다. 만나는 사람은 딱 두사람 우편배달부와 해안경비원이다. 그렇게 살아간지 10년도 넘게... 이쯤이면 그 나이라면 인생에서 더 이상의 변화는 없을 거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인생은 모르는 법. 젊은 날 그가 떠나간 여자, 그것도 죽음을 앞둔 여자가 나타난다. 알고보니 그는 모르는 딸까지 있었던 것이다. 두 여자의 등장으로 주인공 벨린의 인생은 완전히 뒤바뀌어 버린다. 그는 인생의 짐이자 과제였던 자신의 실수로 팔 없이 살아가는 예전의 그 환자를 찾아간다. 팔을 잃은 수영선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버려진 아이들을 키우며 인생을 보내고 있었다.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고요했던 그의 삶을 뒤흔들어놓았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소설 초반의 벨린처럼 홀로 조용히 살아갈 수 있다. 풀어야 할 인생의 문제들은 그대로 먼지가 쌓이도록 남겨둔채 죽음 조차도 홀로 맞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설속의 벨린의 인생이 자의에 의한 것이든 타의에 의한 것이든, 또 달라질 수 있는게 우리의 인생이다. 어떻게 살것인가는 결국 자신의 몫이다. 자신에게 말한마디 없이 떠나간 남자를 수십년만에 찾아간 하리에트가 토해냈던 감정들. 그 감정들에 젖어 지나간 추억을 되씹어본다.  

 소설의 말미에 벨린에게 아주 멋진 보라색 구두가 도착한다. 딸이 구두의 명인에게 부탁해 만든 아주 고급스럽고 편한 구두이다. 누구에게나 이런 멋진 구두를 신을 권리가 있다. 그 권리는 용감하게 살아가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시간을 되돌려 다시 살아가면 지금의 나 보다 더 잘 살 수 있을꺼라고 후회하는 것보다 지금 여기까지 온 내 자신을 격려하며 살아가는자에게 이탈리아 구두와 같은 멋진 선물이 주어지는 것이 아닐까.. 잔잔하지만 밑줄치고 싶은 구절이 많았던 소설이다. 이 작가 왜 모르고 있었지? 

 나는 그 때나 지금이나, 놓아버리지 않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p.7) 

 결정을 내려야 했다. 계속 내 성채를 지켜야 하나? 아니면 패배를 인정하고, 어쩌면 아직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내 삶 속에서 뭔가를 다시 시도해보아야 할까? 결정할 수 없었다. 나는 자리에 누워 바깥 어둠을 내다보며, 내 인생은 그저 지금 같은 모습으로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정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p.29) 

 나에게 해명을 요구하겠지. 왜 내가 자기를 떠났는지, 그 긴 세월이 지난 뒤에 알고 싶어진 것이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삶은 지나갔다. 그저 그랬다. 나에게 벌어진 일을 생각한다면, 하리에트는 내가 자기 인생에서 사라진 것을 고마워해야 할 터였다. (p.40) 

 내가 기록을 남기는 이유는, 그것이 내가 내용이 없는 인생을 살아간다는 사실을 매일 기억나게 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공허한 삶을 확인하기 위해 황여새에 대해 썼다. (p.243) 

 "시마는 살면서 우리가 거의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을 겪었어요. 겉만 봐서는 어떤 사람의 내면이 얼마나 큰 장애를 입었는지 알 수 없어요." (p.281) 

 "당신을 절대 용서할 수 없는 한가지가 있어요. 더 이상 박수를 칠 수 없다는 거지요. 마음속으로 환호성을 지르고, 손바닥을 서로 부딪쳐 그 환호성을 표현하는 건 인간의 권리예요." (p.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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