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열한 살때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트럼펫 연주를 하던 이야기를 했다. 어찌나 긴장하고 손이 떨렸던지, 마우스피스를 입술에 대고 있을 수도 없었고 입을 내밀어 제대로 소리를 낼 수도 없었다. 그래서 마우스피스 전체를 이빨 사이에 끼워 놓치지 않도록 꽉 물고는, 내가 맡은 부분을 반쯤은 트럼펫으로 불고 반쯤은 목소리로 내다시피 했다. 아이들로 구성된 크리스마스 오케스트라였기 때문에 다른 불협화음에 묻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지금도 당신은 목욕할 때 트럼펫 소리를 곧잘 흉내 내잖아." 클라리사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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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반쯤만 공유된 신뢰할 수 없는 지각의 안개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 감각의 데이터는 욕망과 믿음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하며 굴절되고, 그에 따라 우리의 기억 또한 왜곡된다. 우리는 자신에게 유리하게 보고 기억하며 거기에 맞추어 스스로를 설득한다. 무지비한 객관성, 특히 우리 자신에 관한 무자비한 객관성이라는 사회적 전략은 언제나 실패하는 운명이었다. 우리는 절반의 진실을 얘기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 스스로도 믿어 버리는 사람들의 후예다. (중략)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가 아니라 '믿는 것이 보는 것이다.'인 것이다. -25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