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이영의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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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당신의 현실이 고통스러운가? 그렇다면 이 책을 읽어라. 수용소라는 추위,배고픔,노동으로만 이어지는 현실 속에서도 이반 데니소비치는 자신의 규칙으로 하루하루를 만들어간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살아가는데 어쩌면 '희망'따위는 필요치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하루 세끼 밥을 먹고 몸을 뉘울 지붕이 있는 집이 있고, 할 일이 있다면 그 어떤 곳에서도 인간은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단순히 목숨을 연명하는 것뿐 아니라 그것도 아주 품위있게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오늘 어떤 작업환경에서 얼마만큼의 일을 하고, 얼마만큼의 음식을 먹을 수 있는가,를 생각하는 것 뿐이다. 또 수용소에서 말도 안되는 꼼수를 부려서 빵 한덩이를 더 얻거나 담배한가치를 얻을 수도 있다. 여분으로 생긴 빵은 침대 구석에 숨겨놓으면 된다. 자기만 아는 곳에 그만 쓸 수 있는 연장도 숨겨 놓았다. 소포가 많이 오는 사람이 부럽기도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따로 있으므로 개의치 않는다.  

 가장 눈물나는 장면은 여분으로 얻은 빵들을 언제 먹을까 고심하는 부분이었다. 빵 껍데기로 바닥에 남은 국의 찌꺼기까지 박박 핥아 먹는 장면은 어떻고. 모든 것은 그만이 세운 수용소에서의 규칙에 의해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 있어서 자유를 박탈당한 수용소라는 제한된 공간은 그의 의지에 비하면 별로 큰 제약은 아닌 듯 하다.  

   
  지금 슈호프는 사백 그램의 빵과 이백 그램의 빵을 차지한 것이다. 게다가 침대 시트에 이백 그램짜리 빵이 하나 더 있다. 더 이상, 뭘 더 바랄 것인가? 이백 그램은 지금 처치하기로 하자! 그리고 내일 아침에 배급받을 식사와 이백 그램짜리 빵을 더 먹기로 하자! 그리고 내일 작업하러 나갈 때, 사백 그램을 더 가지고 가기로 하자. 그야말로 풍성하다!(p. 184)    
   

 매순간에 집중하는 이반 데니소비치는 열악한 환경에서 작업을 하면서도 '집중'이 주는 희열을 느낄 줄 안다. 이것이야 말로 몰입의 순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반은 벽돌을 쌓는 기술에 있어서는 다른 어떤 사람보다 노련하다. 반장도 그런 그의 실력을 인정해준다. 그렇다고 이반이 수용소에 들어오기 전에 벽돌쌓는 기술에 대해 배웠던 것도 아니다. 그냥 그런 기술이 필요했고 그런 필요에 의해서 기술을 익힌 것이다.   

   
  두 가지 일을 손으로 익힌 사람이라면 열 가지도 할 수 있는 법이다.(p.121)   
   

 일에의 몰입은 추위도 잊게 한다. 빨리 일을 하려고 서두르면 추위에도 불구하고 몸에서는 땀이 흐른다. 발가락이 시린것도 잊어버릴 정도다. 심지어 작업시간을 넘겨서 까지 하다가 된통 혼나기도 한다. 이것이 과연 수용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란 말인가. 무엇엔가 집중하는 것만큼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도 없다는 것을 새삼깨닫게 한다.  

 이반 데니소비치에게는 다른 사람의 특성을 잘 알고 배려하거나 적당히 무시하는 등 처세의 능력도 볼 수 있다. 가끔은 인간적이기까지 하다. 이 소설에는 다양한 특징을 가지는 사람들이 나오는데 수용소라는 제한된 공간이 아니더라도 만날 수 있을 법한 사람들이다. 알료쉬카에게 체자리에게서 얻은 비스킷을 나눠주는 장면은 코 끝이 찡하다. 비스킷 하나도 각박한 수용소에서는 사람사이의 온기를 확인하는 매개가 된다.  

   
 

-알료쉬카! 이거 받아!  비스킷을 그에게 한 개 내민다.
알료쉬카가 빙긋 웃는다.
-고마워요, 당신이 먹을 것도 부족할 텐데.........
-어서 들어!
 나 같은 놈이야 없으면, 또 뭘 해서든 벌이를 할 수 있으니까 상관없는 일이다. 그런 다음 슈호프는 소시지를 깨문다. 지근지근 씹어 먹는다. 향긋한 고기 냄새가 난다. 고깃물! 진짜 고깃물이 입안에 녹아든다. 아, 그리고 그것이 목구멍을 지나 뱃속으로 들어간다. (p.207)

 
   

  행복은 별다른 방법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옆 사람에게 나누어줄 비스킷이 있고, 나에게는 여분으로 먹을 소시지 하나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 있어서 우리는 이반 데니소비치의 사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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