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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직업선택이 곧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한다고 생각하는 오늘날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에서 부단히도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 내가 하는 일은 나의 자아를 실현시켜 한 개인의 성장으로 이끌거나 설령 싫은 일을 하더라도 경제적인 활동을 가능하게 하여 사람구실(?)을 할 수 있게 해준다. 보수를 받는 일자리를 갖어야 한다는 관문이 가지는 의미는 실로 엄청나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이런 생각이 늘 옳았던 것은 아니어서 기원전 4세기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만족과 보수를 받는 자리는 양립할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노동하지 않고 소득을 얻어 여가를 즐기는 생활을 할 때만 음악과 철학이 주는 높은 수준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노동을 하지 않고 어떻게 소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인지 이해는 가지 않는다. 어쨌거나 오늘날 일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여가를 즐기려는 생각을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일 자체에서 즐거움을 얻을 수는 없는가. 즐거움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의 효용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에 이 책은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대부분의 일들은 대부분이 분업화되고 따라서 특정분야의 종사자가 자신의 분야에서만 전문적일 수 있음을 강조한다. 전문용어들을 천천히 따라 읽고 있으면 내 현실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들 같다. 하지만 나는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전기를 쓰고 있고 가게에서 비스킷을 사다 먹고 있으면 식탁위의 참치를 맛있게 먹고 있다. 자질구레하고 지루할 것 같은 그 모든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의해 나의 삶이 꾸려지고 있는 것이다. 의미 있는 일이란 의사나 변호사와 같은 직업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로 인해 세계의 수만 명의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일조하는 것들이다. 그리고 거의 모든 직업이 이러한 공헌을 한다는데 의심할 여지는 없다. 홀로 그림을 그리는 테일러조차 그의 노력의 결과물인 아름다운 나무의 모습을 담은 그림으로 누군가의 거실에서 그 그림을 보는 이에게 기쁨을 주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큰 일의 효용은 방향을 잃고 흔들리기 쉬운 우리들의 삶에 대한 물음들을 조용하게 잠재우고 지금 그 순간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보통은 단순하고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들을 행하는 것이 곧 삶의 지혜라고 하였다. 이러한 일의 측면이야말로 일의 기쁨과 슬픔이 아니지 않고 무엇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