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오랜만에 읽는 하루키의 장편이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은 스토리 자체보다는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인물들의 자세한 외양의 묘사가 그들의 성격, 직업, 행동, 말 등과 일치하는데 소설은 역시 서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예전의 편견들을 깨끗이 씻어주었다. 제목을 보는 순간 단연코 조지 오웰의 1984를 떠올리게 된다. 9를 Q로 바꾼 사연은 조지 오웰의 소설과는 그닥 상관이 없다. 우연한 계기로 남들과 똑같은 1984년의 현재와는 다른 세계로 가게 된다는 것이 이 소설의 주된 내용이다. 그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여정이 다소 판타지적이고 결말은 다시 현실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주인공 아오마메와 덴고는 열 살 무렵의 서로에 대한 강렬한 기억으로 평생을 살아간다. 소설에서도 언급했던 적이 있는데 누구에게나 살아오는 동안 잊지 못하는 풍경을 여러 개 가지고 살아간다. 그 풍경 속의 인물은 반드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없지만 늘 머릿속에 맴도는 경우일수도 있다. 머릿속에서 맴도는 그 인물을 실제로 찾아 나설 것인가는 어디까지나 각자의 마음이다. 아오마메와 덴고는 돌고 돌아 서로를 찾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이 둘을 쉽게 만나게 해주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어떤 역사적인 한해를 규정짓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오마메의 특별한 1984년은 자신의 사랑을 찾아나서는 한해였다. 자신의 생명을 걸어서라도 찾고 싶었던 사랑을 하루키는 이제는 적지 않은 나이에 그려보고 싶었던 것일까. 첫사랑의 강렬한 인상이 이 모든 이야기의 출발이라고 한다면 이 소설은 참으로 시시하다. 더군다나 그런 것을 별로 믿지 않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가장 흔하고 통속적인 것들이 어쩌면 진실이고 근원일 수 있다는 것 역시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마루는 체호프의 말을 인용한다. “이야기 속에 권총이 나왔다면 그건 반드시 발사되어야만 한다,고.” 그리고 그 뜻은 이야기 속에 필연성이 없는 소도구를 끌어들이지 말라는 것이라고 아오마메에게 설명한다. 우연으로 점철되는 소설은 현실과의 개연성이 떨어진다. 따라서 이야기속의 모든 것들은 맞물려 마치 거대한 계획에 의해 지어진 정교한 건물처럼 완성되어야 한다. 1Q84는 그런 면에서 많은 공을 들인 듯 하다. 아쉬운 것은 후카에리의 소설이면서 덴고의 소설이기도 한 “공기번데기”가 정작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듯 하루키의 1Q84 역시 어떤 측면에서 읽어야 할지 알 듯 모를 듯 하다는 것이다. 독자들의 이러한 반응을 염두하고 그런 대사를 넣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듯 하루키는 역시 하루키였고 책 앞날개의 사진은 이제는 연륜이 묻어나는 세월의 흔적이 보여 반가우면서도 애잔함이 느껴졌다. (뒤늦게 안 사실.. 3권이 4월에 일본에서 나온다는데.. 끝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