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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피 ㅣ 민음 경장편 1
김이설 지음 / 민음사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별 얘기는 아닌데 쑥스럽다. 사는 게 다 고만고만하지 뭐."
그 고만고만한 일이 나에게는 힘들게 애쓴 후에야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누구에게는 쉬운 일이 누구에게는 치열하게 노력해도 얻지 못할 것들이었다. 그 사실이 이제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p.119)
주인공 화숙의 가족관계를 생각해보면 이 소설의 표지 그림과 같다. 어딘가 뜯기고 얼룩진 조각들로 이루어진 얼굴처럼 몸과 마음이 온갖 상처투성이다. 정말 나쁜 피가 있기라도 한 것처럼 화숙의 가족들은 정상인 사람이 없다. 이 소설의 중심축은 나와 외삼촌의 딸 수연과의 관계이다. 어려서부터 이 둘의 인생은 복잡하게 얽혀 삼십대 중반에 이르기 까지 지속되다가 수연의 죽음으로 종지부를 찍게 된다. 나쁜피는 전염되는 것처럼 화숙이 관계되는 모든 인간관계를 황폐하게 만든다. 누구나 하는 그 흔한 사랑도 화숙에겐 찾아오지 않는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고 체념은 또 다른 체념을 낳는다. 윤회의 고리처럼 악은 악을 부르고 서로가 서로를 더욱 힘들게 한다. 화숙의 그 현실을 마주보는 순간 우리 인생의 비루함을 확인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고만고만한 일들로 이루어지는 일상에 감사해야한다는 걸 자주 잊는다. 아니 자주가 아니라 요즘은 거의 인식조차 못하고 있다. 평범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일임을 이 소설을 통해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