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토장이의 딸 - 상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박현주 옮김 / 아고라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조이스 캐롤 오츠의 소설은 두 번째다. <멀베이니 가족>을 읽을 때도 그랬는데 여성을 너무 가학적인 고통에 빠트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중간에 그만 읽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또 여성이 가족으로부터 도망쳐 다른 곳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는 구조가 <멀베이니 가족>과 유사하다는 느낌이다. 오빠 두 명도 청소년기를 마칠 무렵 가족을 벗어난다. 이것 역시 비슷하다. 하지만 초반에 헤이젤 존스가 맞냐고 찾아온 남자가 과연 누구일까가 궁금해서, 또 레베카와 헤이젤과의 관계가 궁금해서 계속 읽기로 했다.   

 상권에서는 주로 공동묘지의 돌오두막에서 사토장이의 딸로서 성장하는 레베카의 모습이 그려진다. 음습하고, 부당하며, 고통의 나날들이 이들의 가족에게 가해진다. 결국 아빠는 엄마를 죽이고 자신도 자살을 한다. 레베카는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지만 그 결혼은 불행했고 결국 그 남자로부터 다시 도망치기에 이른다. 아들을 안고서. 그리고 만난 남자 갤러허와 다시 가족을 이루며 살아간다. 아들 잭은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되고 비로소 헤이젤 존스로서의 레베카의 삶은 행복(?)에 이른다.  

 자신의 과거를 죽는 그날까지 철저히 숨기고 살아내는 이 여인의 강인함은 대단하다. 비밀을 비밀로서 그것도 혼자 유지하기란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남편에게조차 자신의 과거를 절대 털어놓지 않는 헤이젤은 어떤 의미에서는 굉장히 독한 여자다. 갤러허가 헤이젤의 사랑을 얻기 까지의 과정이 상세히 나오는데 상처받은 여자가 남자의 사랑을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한 심리묘사가 그려진다. 사랑의 밀고당김이랄까.. 결혼을 하고 나서 레베카가 갤러허에게 온전한 사랑을 주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비밀있는 사랑도 사랑일 수 있을까. 어쩌면 갤러허는 헤이젤과 그 아들 잭이 살기 위해 필요한 일종의 제도적 장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갤러허가 없어도 강인한 헤이젤은 자신의 인생을 잘 살아냈을 것이다.  

 잭이 피아니스트로 성장하는 과정은 흥미 진진한다. 피아노에 몰입하여 살아가는 모습이 상당히 매력적인데 그 중에서도 한스 짐머만 선생과의 만남은 참 따뜻하다. 체르니를 모차르트 처럼 치면 나중에 모차르트는 어떻게 칠래하는 선생님의 말에 빙그레 미소가 지어진다. 이 소설에서 나오는 여러가지 이야기거리 중에 나는 잭의 이야기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 부분에 죽었다고 생각했던 사촌 프레이다와의 서신교환도 정말 가슴 뭉클했다. 프레이다가 끊질기게 편지를 보내는 레베카에게 당신의 충실함이 사람을 질리게 한다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 그렇게 레베카는 살아오는 내내 자신의 삶을 충실함으로 채울 줄 아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이 오츠의 소설이 너무 폭력적이라고 하자 오츠는 그렇게 말하는건 삶에 현실성이 많다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내친 김에 <소녀 수집하는 노인>까지 읽어봐야겠다. 

(그런데 이 소설 읽는 내내 어디론가 치닫는다는 느낌이었는데 문장들이 모두 '~었다'로 끝난다. 현재형문장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읽으면서 좀 답답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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