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9
장 폴 사르트르 지음, 정명환 옮김 / 민음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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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알게 된 건 지난 겨울에 읽은 박홍규의 책에서였다. 아버지 없이 유년을 보낸 사르트르가 자신의 유년을 철저히 부정하며 자신에 대한 쓴 이야기라는 문구에 혹했었다. 누구에게나 유년은 추억하기에 가장 아름다운 시절로 미화되기 마련이다. 무수히 스쳐간 과거라는 시간 속에서 유년이 차지하는 무게는 그 사람의 온 생애를 좌우할 정도로 큰 역할을 하게 마련인데 이 유년을 부정했다니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책은 크게 '읽기','쓰기'로 이루어져있다. 사르트르의 실존적 개념이 나와서 읽기가 쉽지는 않지만 수많은 일화 형식으로 씌여져서 때론 전율하며 읽기도 했다. 아버지가 없이 조부모와 어머니와 함께 지낸 사르트르는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자기기만을 했다고 말한다. 자신의 설 자리를 입증하고자 열살짜리 꼬마가 책을 읽어가며 때론 글을 써가며 자신을 규정해나간다. 그 존재를 정당화하려는 욕구때문에 사르트르는 문학을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현실이 아니라 상상을, 사물이 아니라 말을, 생활이 아니라 허구를 섬긴 병을 해설에서는 '문학병'이라고 한다는 설명이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의 대부분의 내용은 사르트르의 상상, 생각들이다. 거의 내깔려쓰다시피 말들이 줄줄이 이어져나온다. 조부의 서재에서 세상의 모든 글을 삼킬 것처럼 독서에 몰입하기도 하고, 상상의 인물을 만들어 소설을 쓰며 신으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기도 한다.  

 사르트르는 부조리한 삶일지언정 성실해야한다고 했다. '미래의 시점에서 거꾸로 보기'라는 관점을 취했을 때 지금의 불행 역시 그 의미를 가지며 인과의 사슬로 얽혀 설명이 되고 정당화 된다. 내 인생은 해피엔딩일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불행은 두렵지 않다고 해석하는게 맞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내가 이 책에서 얻은 가장 큰 의미이다.  

 이 책을 읽으며 정말 이 사람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뿐이다. 더 이상 말로는 표현이 안될 정도로. 그가 2013년의 독자를 상정하고 말하는 부분이 나온다. 그의 말대로 그는 60kg짜리 종이가 되었고, 사람들은 그의 책을 읽으며 그를 만나고 있다. 그의 뇌를 한바탕 들쑤시고 다녔다는 생각과 동시에 나역시 그처럼 자꾸 상상과 생각속에 살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하다.  

 책의 말미에 거장은 자신은 재능이 없는 작가라며 이와 같은 말을 남긴다.  

 내 광기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은 그것이 첫날부터 나를 엘리트의 유혹에서 지켜 주었다는 점이다. 일찍이 나는 재능의 행복한 소유자라고 자처해 본 적이 없다. 나의 유일한 관심은, 적수공권 무일푼으로, 노력과 믿음만으로 나 자신을 구하려는 것뿐이었다. (생략) 나는 장비도 연장도 없이, 나 자신을 완전히 구하기 위하여 전심전력을 기울였다. (p.272)

 위대한 저작들을 남긴 최고의 지성은 그 과정들이 자신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그런 자신은 진정한 인간이었다고 겸손하게 말한다. 고개가 저절로 숙여지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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