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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남자
폴 오스터 지음,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야기 속의 이야기 구조는 <신탁의 밤>과 비슷하다. 그 내부의 이야기가 갑작스럽게 끊긴다는 것도 그렇다. <신탁의 밤>때만 해도 그냥 그렇군 했다가 비슷한 형식이 반복되니 작가가 혹시 이제는 이야기 만드는 것이 힘에 부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했다. 브릭이 이야기 밖으로 튀어나와 브릴을 정말 죽일까 흥미진진하게 기대했는데 그냥 죽어버리다니. 그 막막함은 마치 이야기를 더 이상 이어가지 못하는 작가의 고통이 아닐까 하는.
그러나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로 이어진다. 내용상 전혀 무관하지만. 아내와의 인생을 회고하는 부분이 뒷부분에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자신의 반평생을 함께 했던 죽은 부인의 이야기를 손녀에게 해주면서 그들은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진다. 기괴한 세상에 상처를 입고 살아가는 이제 죽음을 목전에 둔 노인과 역시 결혼생활에 실패한 딸, 남자친구의 죽음을 어린 나이에 보아야했던 손녀. 소설의 전반적 분위기는 암울하고, 이들의 일상은 삐걱이는 듯하지만 끝은 '최선을 희망'하는 이들의 소소한 일상으로 안정을 되찾는다. 그래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괴한 이 세상을 버티게 하는 것은 노인이 밤마다 상상하는 이야기의 힘. 이 소설 저소설을 더듬더듬 읽어가다보면 나는 지금쯤 책의 어느 숲속을 헤매이고 있나하는 생각을 한다. 책을 덮고 좀전에 읽은 책을 생각한다. 그 감동은 몇분, 몇시간, 때론 몇달을 함께 하기도 한다.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것, 소설이라는 숲으로 들어갈 수 있어서 일꺼다. 이 소설에 별다섯개를 주는 이유는 폴 오스터를 편애하는 나의 마음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