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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코맥 매카시 지음, 임재서 옮김 / 사피엔스21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사실 이 책은 제목이 특이해서 고르게 되었다. 살인범의 기막힌 추리물이라고 말하기에 이 소설은 너무나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일단, 압도적으로 묘사가 많다. 영화의 한 장면을 보듯 긴박함이 흐르는 쫓고 쫓기는 장면 장면으로의 전환, 그리고 각각의 인물이 하는 행동을 정말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문장을 쫓아 가다보면 어느새 머릿속으로 그 인물의 행동이 그려지곤 했다. 심리묘사가 아니라 철저히 외면만을 묘사했는데, 신기하게도 그 사람의 성격, 겉모습, 말투까지 짐작하게 하면 묘한 기운을 느꼈다. 묘사가 많으면 지루하다라고 생각했던 것은 어디까지나 편견이었다.
책의 거의 끝부분 까지 읽는데도 신기하게 노인, 혹은 노인문제(를 다룬 소설일 것이라고 어이없게도 추측)는 등장하지 않았다. 도대체 이게 뭔가. 제목이 노인이 들어가는데! 노인은 나오질 않네 였다. 하지만, 거의 끝부분에서 등장하는 노인과 벨의 대화내용으로 이 소설은 너무나 좋은, 읽고나서 여운이 지속되는 소설로 돌변하게 되었다.
그 나이가 되어서야 그 나이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다고 나는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다. 아주 젊었을 때는 (이십대의 초반쯤) 늘 어리둥절 했던 것 같다. 한 두살만 많은 사람도 정말 큰 어른으로 생각됐다. 그 보다 조금 더 나이를 먹었을 때는 서너살 까지는 동년배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위아래로 열살 터울도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끔 인생에 고난(나름대로-_-)이 닥쳐오면 나이든 어른들은 이런 일에 의연하고, 평정심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궁금해지곤 한다. 특히 그것이 감정적인 대서 오는 어려움이라면 더욱 더 그렇다. 벨이 엘리스아저씨에게 했던 질문들은 나 역시 주변의 노인들에게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가끔 아주 나이드는 분들을 보면 얼굴에 감정이란 것이 없으신 듯하다. 그럴 때 나는 묻고 싶어진다. 마음이 평화로우신가요? 외롭지는 않으신가요?
벨과 엘리스아저씨의 대화에서 나는 한동안 멈추어 여러가지를 떠올렸다. 답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단순했다. 진실이 늘 그러하듯 단순한 것처럼.
뭐 좀 여쭤 봐도 될까요.
그래.
살아오시면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 뭐지요.
노인은 질문을 곰곰이 생각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모르겠어. 그가 입을 열었다.
후회되는 일이 그리 많지는 않아. 하지만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일은 많이 생각나. 걸아다닐 수 있는 것도 그 중 하나지.
자네도 그런 목록을 만들 수 있겠지. 하나쯤은 있지 않겠어?
나이가 들면 자기가 행복해지고 싶은 만큼 행복한 법이야.
좋은 날도 있고 나쁜 날도 있지만, 결국 예전에 행복했던 만큼 행복한 거야.
아니면 그 만큼 불행하든가. 이걸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