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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세다 1.5평 청춘기
다카노 히데유키 지음, 오유리 옮김 / 책이좋은사람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프롤로그를 보고는 작가의 경험담이라는 말에 의아했다. 정말 8년동안 노노무라라는 낡은 목조 공동주택의 1.5평짜리 방에서 작가는 지낸 것일까. 끝까지 읽고 에필로그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작가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에 믿음이 생겼다. 이것이 사실인지 허구인지가 그렇게 중요할까마는 그 부분이 읽는 내내 계속 신경쓰였던 것은 이 책의 내용이 장소에 관한 이야기여서 일 것이다. 삶의 터전, 일상은 장소와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짧지 않은 자취생활과 자연스레 연관시키게 되었고, 내가 그간 거쳐온 거기가 거기인 가까운 장소들의 기억들이 스멀스멀 올라왔기 때문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장소가 그 사람의 일상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칠까.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3년까지 머물렀던 동네와 집, 주변환경은 어떤 동일한 카테고리내에서 동일한 성격의 아우라를 발산하면서 나의 청춘의 한 시기를 규정지었다. 내가 나의 자취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썼어도 아마 이 책 정도의 분량은 너끈히 나올것같다.
<퀴즈쇼>의 민수는 고시원에서 지내고 <와세다 1.5평 청춘기>의 다카노는 1.5평 다다미에서 산다. 하지만 다카노가 민수에 비해 더 재밌고 덜 궁핍하게 느껴진다. 아니, 다카노는 사실 별로 궁핍해보이지 않는다. 객관적인 주거환경으로서의 점수는 형편없지만 다카노의 일상은 늘 반짝반짝 빛나고 유쾌하다. 그런 다카노의 청춘이 참 예뻐보인다. 다카노는 서른둘에 여자친구를 사귀게 되면서 이곳을 떠난다. 돌아갈 중심이 노노무라 라는 '장소'가 아니라 '사람'으로 바뀌면서 그는 제2의 인생(?)을 시작하고 노노무라를 떠나게 된다. 이사를 앞두고 동네가 객관적으로 너무 아름다워보인다는 건 어쩌면 그 동네에 그의 청춘이 남아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연히도 나도 요즘 이사를 앞두고 있고, 비슷한 증상을 요즘 겪고 있는데, 그렇다면 나의 청춘도 이제 끝인건가. ㅋㅋ
장소는 누군가의 한 시기를 어떻게 규정짓는가. 그저 가벼운 일본소설같지만 이 책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