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5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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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환상의 힘은 그녀를 초월하였으며 모든 것을 뛰어넘었다. 그는 창조적인 열정으로 직접 그 환상에 뛰어들어 그 환상이 끊임없이 부풀어 오르게 했으며, 자신의 길 앞에 떠도는 모든 빛나는 깃털로 그 환상을 장식했던 것이다. 어떤 정열이나 순수함도 한 인간이 유령 같은 마음속 깊숙이 품은 것은 어찌할 수 없게 마련이다.

이 책을 순전히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은건 하루키의 친구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게 <상실의 시대>에서 언급된 것인지 다른데서 하루키가 말한 것을 옮긴 것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는데 <위대한 개츠비>를 세번 읽은 사람과는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말에 도대체 어떤 책이길래 하는 궁금증이 늘 있어왔던 것! 몇번이나 앞부분만 읽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읽기를 중도에 그만 두기를 몇번 끝에 어제는 하룻밤새 이 책을 뚝딱 읽어치웠다.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왜 그렇게 질질 끌어왔는지 모르겠다. 사실, 이 책은 1920년대 미국의 역사를 고스란히 반영한 미국소설의 고전중의 고전이라고 한다. 무너져가는 아메리칸드림을 개츠비라는 인물을 통해 반영한 내막이야 내가 알리 만무하고 어쨌거나 이 개츠비라는 사람, 너무나 매력적인 인물이다. 5년이라는 세월동안 사랑해온 여자를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해 성공한 뒤 마련한 저택, 그리고 연일 계속 되는 파티, 그 여자에게 자신의 성공을 알리고자 하는 가련한 의도는 어찌보면 속물스럽게 볼 수 밖에 없는 이 인물에게 웬지모를 측은함을 자아내게 했다. 사실 누군가의 연애사 따위야 이제는 관심밖이라 쳐도, 나는 늘 어떤 한가지에 목숨을 다 바칠 정도로 온몸을 내던지는 것에 대한 강렬한 애착, 동경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설령 환상, 망상 따위라고 해도 무엇을 간절하게 쫓는 사람만큼 인간적인 것이 또 있을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나, 소설의 결말은 아쉽게도(혹은 당연하게도) 비극이다. 개츠비는 허망한 죽음으로 자신의 환상이 쌓아올린 신기루같은 성공을 뒤로하고 어이없는 죽음을 맞게 된다. 어쩐지 쓸쓸하다. 하지만 개츠비의 인생을 어느 정도는 진심으로 이해했던 닉이 존재했기에 그의 죽음이 허망하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 심지어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보통은 잘 보지 않는 책뒤의 작품해설까지 꼼꼼히 읽었다. 읽다가 재밌는 부분이 있어 잠시 옮겨 보면 이 소설은 '개츠비적(gatsbyesque)'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냈다고 한다. 뜻은 낭만적 경이감에 대한 능력이나 일상적 경험을 초월적 가능성으로 바꾸는 탁월한 재능을 가리킨다고 되어있다.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은 내 삶에 '낭만', '경이', '초월적 가능성'같은 비현실적인 단어들을 배치해보며 잠시나마 달콤한 꿈에 젖어 본다.

개츠비의 대저택과 연일 벌어지는 화려한 파티에 대한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마지막 부분에 개츠비가 죽은 후 달라진 사람들의 태도를 묘사하는 부분 또한 기억에 남는다. 이제 두번만 이 책을 더 읽으면 나는 하루키의 친구가 될 수 있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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