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이제는 분기도 아니고 상반기, 하반기로 독서기록을 쓰고 있다. 올해는 좀더 분발해야지. 좀더 기록하는 한해가 되길.
이 소설은 1869년에 일어났던 라리카마리와 오뱅의 대규모 탄광 파업 사건을 소재로 쓰여졌다. 그때까지 다루는 것이 금기시되었던 노동자와 부르주아간의 계급 투쟁이라는 사회문제를 제기하는데 탄광촌의 묘사, 탄광내 작업 환경에 대한 묘사가 실로 영화를 보는 듯 생생해 지루할 틈이 없었다.
문제의식을 갖고 투쟁을 하는 민중들 사이에도 서로 분열되어, 생계를 위해 다시 일을 하러 갱도로 들어가는 무리와 이런 이들을 배신자라며 죽이려는 무리들 사이의 갈등이 중반부 이후 소설을 이끌어간다. 결국 수바린이 방수벽을 무너뜨려 수갱은 붕괴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에티엔과 카트린이 도망치는 마지막 장면 묘사는 재난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제르미날은 '싹이 나는'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문제의식을 가지고 투쟁에 앞장서면서도 부르주아로의 도약을 꿈꾸는 에트엔의 성장과정을 보며 한 사람의 마음에 싹이 어떻게 트는가, 지켜보는 것도 재밌었다.
(탄광 안에서 평생 일만 하면 보냈던 말 두마리에 대한 묘사가 다소 충격적으로 기억된다.)
아우스터리츠는 자신의 기원을 찾아가는 생의 전 과정을 나에게 들려준다. 1934년 1939년에 전쟁 발발 직전 어린이 수습작전으로 프라하를 떠나게 되는 일로 시작해 아우스터리츠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을 추적해 자신의 부모를 찾아가는 과정을 아우스터리츠에게로부터 듣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역시 사람들이 흔적없이 사라지는 장면이다. 테레진의 게토 박물관에서 어머니 아가타가 수감되고 제거된 순간의 기록이나 영상물에서 우연히 어머니(와 비슷한?)를 발견하게 되는 장면들. 자신의 생의 부침만큼 도저히 제정신으로는 살아낼 수 없어 아우스터리츠는 정신병원을 드나들며 겨우겨우 생을 이어나간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기억이고 기억을 찾아내는 과정이라는 것에 할 말을 잃는다. 경외감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제발트의 <현기증. 감정들>은 처음이라 뭐지 싶었는데 이 책은 아주 천천히 읽었지만 강하게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집중해서 읽어야만 하는 책이 주는 즐거움.
동시에 읽는 책들이 서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경험을 종종 하게 된다.
지나치게 평범한 극적인 사건이랄 것도 없는 사람의 일상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인물의 감정변화를, 나의 감정변화를 느끼는데 기꺼이 시간을 할애하는 일이 소설이 아닐까.. 박연준의 에세이에서 처럼 훌륭한 삶을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깊이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소설을 읽는 다는 말, 옳다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여름의 끝>의 원제는 Love and Summer인데 정말 제목이 딱이다. 그리고 표지의 푸른 사과 깎는 이 사진. 오랜동안 기억이 남아서 이 책을 잡지 않을 수가 없었다.
끝을 보지 말아야겠다, 품격(?)을 지키자는 생각이 나이들수록 강해진다. 매사에 끝을 조심하자. 신경이 곤두서지만 서두르지 않고 시간에 마음이 무뎌지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실천만이 남았다. 역시 마음에 흠결이 있어야 문학이든 예술이든 진하게 와닿는다.
끝을 보지 말자. 끝을 보더라도 끝이 아닌 듯 굴자. 마음에 안 들더라도 집에 가서 욕하자. 극단에 서지 말자. 그렇습니다. 마음은 이제 누울 자리를 봅니다. (....)
가서 생각하자. 저 사람과는 안 맞는 군. 좀 돌아가는 게 낫겠어. 손톱을 물어뜯으며 궁리하지요. 궁색한 궁리랍니다. 그렇습니다. 매사에 '끝'을 조심합니다. <마음을 보내려는 마음>, p.200
나의 모든 여행, 다른 나라에 대한 동경은 함정임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유럽묘지기행이라는 부제가 달린 책을 읽고 난 뒤의 나는 이전과는 다른 내가 되었었다. 작가가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읽고 그것을 읽기 전과 후는 같을 수가 없다는 말에 책장 한켠에 오랫동안 꽂혀 있던 토마스 만의 책을 꺼내 들춰보았다. 역시....
이것은 사랑이라고 할 수밖에.
이 소설은 로마에 사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린다. 로마의 중산층 시민, 이주민, 불법체류자, 유학생, 관광객 등이 공존하는 혼종의 도시 로마. 총 9개의 이야기로 이루어져있지만 끝으로 갈 수록 다른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인물이 이 편에서는 주인공이 되고 섞여 있다는 느낌을 점점 받는다.
생김새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이민자의 내용이 주를 이루는데 그래서 작가의 삶과 이야기를 연결짓지 않을 수 없다. 로마에 살지만 결코 정착할 수 없는 사람들. 그 불안정함이 줌파 라히리의 글에서 늘 느끼는 매력같다.
마지막 단편을 읽고는 단테의 <신곡>이 읽고 싶어졌다.
헨리제임스의 단편들을 읽고 뒤쪽의 해설을 읽어본다.
오호라 내가 느꼈던 것!
작품의 길이는 상당한데 사건들이 별로 없다거나, 말하려는 주제가 애매모호, 작중 인물의 정확한 심리상태를 알기 어렵다.
그러나 1920년대에 들어 모더니즘의 시대가 열렸고 그의 작품은 다시 평가되기에 이른다.
기억에 남는 작품 <네번의 만남>, <나사의 회전>
특히 나사의 회전은 들어보기만 했지 실제로 읽으니.. 그 공포의 맛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요즘은 <보스턴 사람들>을 읽고 있는데 150쪽이 지나도록 정말 딱히 사건은 없다;;
이름만 들어도 정겨운 작가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후로 솔직히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이 다시 생겼음을 인정한다. 한국 문학 만세!!
사실은 다 읽은 한강의 작품인데 다시 생각하게 된다. 상이 주는 후광을 무시할 순 없다. 무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데 모든 문장을 허투루 읽을 수는 없다고 집중, 집중한다. ㅎㅎㅎ
눈이 멀어가는 남자와 말을 하지 못하는 여자. 그 사이에 지금은 쓰이지 않고 형식만 남은 희랍어라는 매개. 한강의 작품을 원어로 읽을 수 있는 한국민인게 얼마나 영광인가!!
어른이 된 이후에 프랑스어를 처음 접하고 아이처럼 배우며, 제2의 모국어가 되도록 갖은 노력을 하며 살아온 사람의 이야기다.
언어는 사고를 지배하고 문화를 낳는다. 프랑스말과 우리말의 차이나 프랑스 문화와 우리 문화의 차이를 읽는 것이 재밌었다. (오 어려운 취향평가여! ) 타국에서 살아가는 삶의 애잔함과 힘듦이 군데군데 짐작이 된다. 그러나 계속 그 나라를 사랑하면서 살아가게 하는 것은 구체적인 그 나라 사람, 누군가 한명이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저자에게는 일단 프랑스인 남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일상에서 마주치는 구체적인 프랑스인들. 프랑스는 평생 주치의 개념이 있어서 의사와 같이 늙어간다고 한다. 나의 몸에 대해 상의하고 잘 알아주는 의사가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편안한 그것은 모국어 우리말이라니... 스무살까지 함께한 모국어의 부드러운 속살만큼 위대한 것도 없구나. 우리의 정신을 지배하니 말이다. 누구에게나 있는 단하나의 모국어. 그 편안함. 속에서 사는 것이 때때로 언제, 어딘가에서는 큰 위로가 된다.
언제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읽을 땐 꼭 가봐야지 메모하게 된다.
한국가구박물관
겸재정선미술관
허준박물관
앞쪽의 우리 근대 문학의 발자취나 역사문화공원으로 거듭난 망우리에 대한 내용이 흥미로웠다. 계속 출간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꼰대라는 소리를 듣기 싫어하는 기성세대가 되었다.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남에게 조언을 하지 않는다. 특히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는... 하지만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어느 인터넷강의에서도 알려주지 않는 경험있는 선배들로 부터 들을 수 있는 값진 조언들도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풍토가 된 것 같다. 사회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어떤 것이 득이고 실일까. 꼰대라는 말은 어쩌면 기성세대가 더 싫어하는 말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ㅎㅎ 내가 젊었을 때 꼰대들한테 너무 당해서 그런 것일수도 있겠다 ㅋㅋㅋ
여름에 읽었던 파리에 관한 책들은 아마 올림픽과 맞물려 출간된 것 같다. 무정형의 삶에서 언급된 이지은 작가의 책은 예전에 나도 재밌게 읽은 책이라 다시 찾아보았더니 신간도 나왔더라.
누구에게나 이토록 사랑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면 지난한 이곳에서의 현실도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마침내 작가는 그토록 바라던 미래에 자신 자신을 데려다놓았다. 한 곳을 이토록 좋아할 수 있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짧은 두 달이어서 가능했을까 여러 생각을 하며 나도 가보고 싶은 장소들을 메모해 놓았다.
살면서 중요한 능력 중에 하나가 감동할 수 있는 마음 같다. 순수하게 좋아하고 표현해내는 능력. 작가에게는 분명 그런 것이 있는 것 같다. 오일파스텔 사는 장면에서 빵 터졌는데, 어머나 나도 일단 72색을 구매하고(비록 문교 오일파스텔이지만), 128색까지 다시 구매.....
현재 독서 중인 책들은
<2024 김승옥 문학상 수상작품집>
<난처한 미술이야기8>
<보스턴 사람들>, 헨리제임스
<허송세월>, 김훈
요즘은 동시에 읽는 책의 권수를 줄이고자 노력한다.
*
12월부터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 정신을 차릴 수가 없고, 무의식의 세계에서는 우울함이 깔려있는 것 같다.
할 수 있는 일이 기도하는 것 밖에 없는 것 같다.
모두들 평안한 2025년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