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일곱해의 마지막>을 주문했더니 책 안에서 엽서가 두 장 나왔다. 그중 봄밤의 벚꽃사진에는 김연수의 친필로 짧은 메세지가 적혀있었다.

"눈 드물던 겨울과 입 다문 봄 지나 뻘써 뜨거운 여름이네요."

그렇지 입을 다물고 지낸지 반년이 지났지.. 길거리에 마스크 잘 쓰고 걸어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어제는 왈칵 눈물이 나왔다. 다들 살아가느라고 얼마나 힘들지.. 쉬이 감동하고 쉬이 울적해지는 날들이다. 작가의 말대로.. 모두들 여름의 끝까지, 아니면 올해의 끝까지가 될지라도 지치시지 말기를....

 

6권에서는 북유럽의 르네상스와 제대화, 베네치아의 미술 등을 다루고 있다.

다시 보게 되는 화가 반 얀 에이크와 알브레히트 뒤러(!).

뒤러는 여행하며 본 것을 낱낱이 기록했는데 사실 뒤러가 영향력있는 화가로 훗날 인정받는 것은 그가 남긴 방대한 기록때문이었다고 한다. 풀과 곤충을 그린 그림이 인상적이다.

 

이탈리아 화가들이 원근법을 적용한 공간에 해부학적으로 정확한 신체를 그려넣으려고 했다면 북유럽 화가들은 피부, 머리카락, 주름 등 눈에 보이는 세부를 얼마나 실감나게 표현할지에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북유럽 회화는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읽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피렌체의 산타 크로세 성당,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베네치아의 프라리 성당(산타 마리아 글로리오사 데이 프라리 성당)은 나중에 꼭 가보고 싶구나.

 

역시나 흥미로운 인물들이 대거 등장. 어렸을 적 감동받아 읽은 마리 퀴리를 어른이 되어 읽으니 또 다른 감동이 있다. 그나저나 너무나 가난했고, 일을 하는 와중에 자녀를 길어내는 부분이 남의 일 같지가 않구나. 팡테옹에 나란히 누워있는 마리 퀴리와 피에르 퀴리 무덤이 생각났다.

라듐 추출에 대한 특허권을 신청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인류의 더 나은 발전을 위해 포기했던 과학자 부부. 피에르가 죽은 뒤 다른 과학자와의 사랑은 깜짝 반전이네! 모르고 있었다.

 

1918-1920년의 인플루엔자, 일명 스페인 독감은 전 세계적으로 5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의 사상자 수가 900만이었다-엄청난 사건이었다. 

이제 이런 문구가 다르게 읽혀진다. 그 격랑의 시기를 지나갔던 그 때에도 사람들은 지금의 나와 같은 기분이었을까. 치사율이 훨씬 높았으므로 더 공포스러웠으리라.

프루스트 

"언제까지나 시간 속에 있다고 여기면 잘못일세. 우리의 중요한 부분은 시간 밖에 있다네." p.231

 

 

마지막 권이다. 이름은 들어보았으니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인물들에 대해 관심이 생긴다. 르코르뷔지에(샤를-에두아르 잔느레)와 만 레이. 그리고 이사도라 덩컨.

 

음악, 미술, 건축, 패션, 자동차 산업 등의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던 그 시대는 찬란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겠지만 어쩐지 지금보다 획기적이고 드라마틱해서 하루하루가 흥미진진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든다. 어떤 한 시대를 평가하는 것은 먼 훗날의 일이므로 지금 우리의 시대는 어떻게 훗날의 역사가들에 의해 기술될까, 궁금하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작품들에서 계급 의식이 꾸준히 나오는 이유는 그의 성장배경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유복한 집안 출신인 어머니의 교육열로 피츠제럴드는 쟁쟁한 가톨릭 명문가 자제들 틈에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비교하며 성장해야 했다. 동부의 아이비리그인 명문 프린스턴대에서 우월의식에 사로잡힌 특권층 자제들을 만나면서 위축되었고, 젤다에게 파혼당한 것도 자신의 가난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계급의 사다리에서 한 칸 한 칸 더 올라가기위해 고군분투했던 그의 삶은 어쩜 위대한 개츠비의 삶과 그리도 비슷한지..

<위대한 개츠비>는 반드시 영문판으로 읽어야한다는 말에 잭각 주문했으나 그대로 책장행... ㅎㅎ 언젠가 읽게 될 날이 오겠지.

최민석 작가의 유머는... 이런 진지한 책에서도 빛을 발해 재밌게 읽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스승인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는 허구이고 진리는 눈에 보이는 자연의 세계에 속해 있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의식활동에 대한 기술, 습성과 행동의 상관관계에 대한 분석, 수많은 정치체제에 대한 기록은 그 가운데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아테네의 거류민으로 살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여러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고 그래서 말과 행동에 늘 조심을 해야했을 것이다. 기원전 사람이라 여행을 하며 발자취를 찾기가 어려웠을 것 같다. 여튼 그 오래전 사람의 저작물이나 기록이 남아있다는 것도 참 대단하구나.

윤리적으로 승인된 행동은 반복을 통해 내면의 습성으로 굳어진다. "우리는 정의로운 일을 함으로써 정의로운 사람이 되고, 절제 있는 일을 함으로써 절제 있는 사람이 되며, 용감한 일을 함으로써 용감한 사람이 된다.(니코마코스 윤리학)

반복을 통해 내면의 습관으로 만들 것! 기억해야겠다.

 

 

<아무튼, 메모>에서 <긴 여행의 도중>을 알게 되었다. 

모든 것에는 똑같은 시간이 평등하게 흐르고 있다. 저 알래스카의 혹등고래와 불곰에게도 대한민국 어디에 지하철을 타고 가는 사람에게도...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어떤 위로가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아득히 먼 자연이 그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는 것만으로도 비루한 우리 일상이 조금 풍요로워지지 않을지..

 

 



 

 

이탈리아 르네상스하면 메디치 가문을 떼어놓고 얘기할 수 없다.

어떻게 수 세기 동안 일개 하나의 가문이 학문 부흥이나 예술 장려에 그렇게 아낌없는 지원을 할 수 있는지 우리나라로서는 상상할 수가 없는 일이다. 그 메디치 가문이 했던 일들만 읽어보아도 이 책은 정말 재밌다.

 

 

 

 

 

 

 

 

매일 글쓰기를 하면 글이 이어져서 천을 짠 것처럼 또 다른 자기가 나올지도 모른다. 외국어 공부는 새로운 자기를 만드는 일, 미지의 자기를 발견하는 일이다. 나를 비롯해 일본어가 모어인 사람들은 일본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사람을 대하는 법을 배웠다. 생각해선 안 되는 일, 입에 내서는 안 되는 말이 금기로 머릿속에 일본어로 설정됐다. 다시 말해 일본어로 글을 쓰면 자동적으로 금기를 건들지 않게 된다. 대신에 외국어로 글을 쓰면 이 금기를 배척하는 기능이 작동하지 않아, 평소에 생각지도 못한 것을 과감하게 쓰기도 하고 잊어버렸던 어린 시절 기억이 갑자기 되살아 나기도 한다. p.208

생각의 그릇인 언어, 외국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세상을 보는 새로운 창 하나를 더 갖는 것이다. 별로 쓸 일이 없을 것 같은 불어를 공부해볼까... 볼까만 어언 몇 년.. 실행으로 옮겨보자.

 

 

불볕더위가 기다린다고 한다. 올해도 반이 지나가고.. 남은 6개월도 열심히 읽고 생각하는 시간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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