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주사위는 던져졌다
브루투스, 너마저
모두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한 말이다. 이 유명한 말을 어떤 상황에서 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면 로마인 이야기의 율리우스 카이사르편인 4,5권을 읽으면 된다. 한 사람의 전 생애를 이토록 천천히 두껍게 읽고나니 이를데없는 충만함이 밀려온다. 더구나 이토록 매력적인 인물이라니. 책의 뒷부분 참고문헌에 저자는 이렇게 밝혀두고 있다. "제4권과 제5권을 쓰기 위한 공부는 대부분 키케로와 카이사르가 남긴 글과 말을 그야말로 핥듯이 읽고, 읽으면서 생각하는 작업에 바쳐졌다." 사실 이렇게 자세하게 재미있게 이야기를 쓸 수 있었던 것은 기원전 1세기의 기록이 너무나도 잘 남겨져있기 때문이다. 카이사르가 직접 쓴 <갈리아 원정기>나 <내전기>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쓴 기록, 후대에 쓰인 기록물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는 것이 놀랍다. 무려 기원전 1세기에 말이다.
카이사르의 정신이라면 '관용'이다. 카이사르는 전쟁에서 이겼어도 포로를 허투루 죽여버리는 일은 드물었다. 망명한 사람도 원하면 귀국을 기꺼이 허락했다. 4권의 말미에 나오는 13년을 동료로 함께한 라비에누스가 폼페이우스에게 갔을 때도 못가져간 짐을 보내줬을 뿐이다.
사생활에 있어서도 자신의 매력을 한없이 이끌어가는 능력이 대단하다. 진짜인지 모르겠으나 원로원 아내의 1/3정도는 카이사르의 애인이었다고 하며 헤어져서도 잘 지내고(!), 애인의 자식들의 뒤까지 돌봐주었다고 한다. 대단히 많은 빚을 지고도 태연했고, 거의 모든 전투에서 승리했으며, 그렇게 민주적인 것도 아닌데 항상 지지자들이 주변에 넘쳐났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는 다음의 카이사르의 발언에 놀란다.
"내가 석방한 사람들이 다시 나한테 칼을 들이댄다 해도, 그런 일로 마음을 어지럽히고 싶지는 않소. 내가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은 내 생각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오. 따라서 남들도 자기 생각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오."
남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관용의 가장 기본정신이 아닐까.
카이사르의 죽음은 참으로 터무니 없다. 키케로의 말대로 도대체 암살을 하고 나서 로마는 무엇이 바뀌었단 말인가. 카이사르가 살았더라면 로마는 얼마나 더 발전할 수 있었을까.
카이사르가 진홍색 망토를 휘날리며 진두지휘했던 모습이 눈앞에 상상되는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