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 - 시대의 지성, 청춘의 멘토 박경철의 독설충고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1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수업시간에 종종 아이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이야기해준다. 아이들은 책 속의 딱딱한 이야기보다 내가 직접 경험한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가끔은 과장되기도 한 그 이야기들을 통해 아이들은 또 다른 경험을 하는 것이다. 내 경험 이야기가 부족하다 싶을 땐 내가 읽은 책 속의 이야기를 종종 해주는데 그때 간혹 언급했던 이야기가 박경철씨가 쓴 '시골의사의 행복한 동행' 속에 등장하는 것들이었다. 그 책엔 의사로서 지내면서 직접 만난 사람들, 경험들, 느낌들이 잘 드러나있었다. 그리고 그 경험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잔잔한 감동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종종 이야기해주었고, 학급문고로 비치해두기도 했었다. 

그 후에 그가 쓴 책들은 읽어보지 않았다. '시골의사'라는 그의 별명과 달리 그는 경제쪽과 관련된 일들을 많이 하고, 그와 관련된 책들도 썼다. 이번 '자기혁명'에서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접점을 이루는 '경제학'이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그것 때문에 나름대로 공부하고 그 결과로 다양한 일들을 하게 되었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이유야 어떻든 나는 왠지 '시골의사'라는 그의 별명과 그의 첫 책의 느낌이 계속 이어지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이름이 알려지면서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된 그가 안철수와 더불어 '청춘콘서트'를 열면서 전국의 학생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고 나름대로 느낀점을 책으로 써냈다고 한다. 나는 트위터를 통해 이 책의 '에필로그'를 접하게 되었다. 그 에필로그만을 읽고 바로 사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무기력하고 우울한 날들을 보내고 있는 내 마음에 의식과 무의식에 대한 서술은 강한 인상을 남겼기 떄문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이 책을 사지 않았을 것 같다. 그간의 책들도 그렇고, 자기계발서 같은 느낌의 제목도 그렇고...  

어쨌든 예약구매까지 하면서 읽은 책의 내용은 '한 번 쯤'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블로그를 통해서 독서력이나 사유의 깊이, 예술에 대한 폭넓은 이해 등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책에는 그간 쌓아온 그의 내공을 앞으로 사회에 나올 학생들에게 조근조근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양한 책의 내용들, 인용구들을 바탕으로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잘 풀어썼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신이 공부한 방법이나 나쁜 습관을 떨쳐버린 후 생활의 변화 등을 통해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그 개인적인 이야기도 작은 소품으로 느껴진다.  

전작 '행복한 동행'이 날것으로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상상하고, 느끼고, 감동하게 했다면 이번 책은 잘 다듬어진 이야기를 내밀어 독자들로 하여금 훈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이들에게 건내는 하나의 조언이라면 이런 훈계가 좋을 것 같지만 왠지 자신처럼 살지 않는 나같은(?) 게으른 사람들에게는 왠지 불편함이 느껴진다. 한시라도 열심히 살지 못하는 자책감인가?  

책의 내용은 좋지만, 그가 말한 고전처럼 꼭꼭 씹어서 물이 될 때까지 읽어 소화시키는 책이라기 보다는 한 번쯤 읽고 자신의 삶의 방향이나 태도를 점검해보는 계기가 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혁명성은 안주하려는 인간의 속성과 달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스스로 인식하는 것들에 대해 자신이 사무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새로움을 경험하는 것이다. 서슴없이 자신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것, 새로운 사람, 새로운 가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렇게 기존의 것을 타파하는 행동이 바로 혁명성이며, 그것을 행한 결과가 바로 혁명이다.  -p158~159  

누구에게든 처음부터 한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걸어가다가 주저앉는 자리가 바로 한계인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한계는 내가 걸어가다가 쓰러지는 바로 그 자리인 셈이다.  -p160  

지금까지의 내가 바로 내일의 나다. 어제와 오늘의 결과가 바로 내일인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내일을 이야기하고 미래를 꿈꾼다면 당장 달라져야 할 것은 바로 오늘이다. 어제는 이미 지나간 역사이고 내일은 미래이며 그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것은 Deux ex Machina가 아닌 'carpe diem(바로 이순간)'인 것이다.   -p220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유'란 맥락화된 생각을 가리킨다. -p287 

세상의 모든 슬로건은 콤플렉스의 반영이다. 어떤 이가 반복적으로 무언가를 외친다면 그의 최대 약점이 바로 그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p36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른 십대의 탄생 - 소녀는 인문학을 읽는다 다른 탄생 시리즈 1
김해완 지음 / 그린비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가르침 - 앎과 자유에 대한 갈증 

그렇다면 가르침은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 선생은 학생에게 지식을 주입하거나 학생의 삶에 대해 명령하고 개입할 수 없다. 

진정한 교사는 가르치지 않는다. 다만 누군가 그의 곁에서 스스로 배울 뿐이다. 태양은 누구에게도 자기 빛을 주지 않는다. 다만 만물이 그 빛을 받아 스스로 자라 갈 뿐이다. (버리고 행복하라. 31쪽) 

 태양은 존재할 뿐이고 해바라기도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해바라기는 태양과 여름 내 함께 지내면서 무럭무럭 자란다. 진정한 선생은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앎에 대한 갈증을 유발한다. 학생은 그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변화를 경험하며 절로 배움을 갈구하게 된다. 갈증을 일으키는 것은 바로 선생의 '존재 자체'이다.  따라서 선생은누구보다 열심히 살며 끝없이 배우고자 하는 자기 삶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선생이 반드시 전문교육을 받아야 하거나 자격증을 소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일에 종사하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자라도 괜찮다. 끊임없이 자기 삶에 질문을 던지고 그것을 충족시키려는 의지가 있다면, 또한 학생이 도움을 요청했을 때 자신의 삶에서 일어났던 다양한 배움과 노동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는 역량이 된다면 그는 분명 '가르칠' 수 있다. 선생은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농사라면 농사, 글쓰기라면 글쓰기 등 선생에게는 걸려 넘어지고 또 질문을 얻는 구체적인 삶과 배움의 현장이 있어야 한다. 질문을 멈추지 않을 때에만 누군가 빛을 받는 태양이 될 수 있다.  -P152~153 

꿈은 미래에 쟁취해야 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현재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말해 주는 좌표다. 꿈을 꾼다는 것은 현재를 '이렇게 살겠다'고 마음 먹는 것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내 몸을 움직이는 순간, 현재는 꿈에 의해 움직이고 변한다. 따라서 꿈이 영향을 주는 것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다. 그 순간에는 '되기'와 '하기'가 거의 구별되지 않는다. 가령, 존경해 마지않는 어떤 작가처럼 되고 싶어서 열심히 글을 쓸 수 있다. 또 열심히 글을 쓰다 보니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다. 글을 쓰는 상태, 글을 쓰는 순간만 존재한다.    -p160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반 배정이 끝나고 난 후 얼마 되지 않아 아이들의 얼굴도 이름도 잘 모른 채 반 분위기를 서로서로 파악해가며 조용히 지내고 있던 3월 초. 담임 선생님이 조례 때 한 아이가 자퇴 한다고 말씀하시더니 그 친구에게 마지막 인사를 시켰다. 그 친구는 자신은 영화를 만들고 싶고, 영화인이 되는데 지금의 학교 공부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며 자퇴를 한다고 했다. 잘 모르는 아이지만 '자퇴'라는 말의 무게는 그때의 나에겐 어마어마한 충격이었다. '자퇴'는 사고치는 아이들이나 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영화인'이 되기 위해 자퇴를 한다니 정말 큰 충격이었다. 그때 나는 뭐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없이 그저 공부만 열심히 해서 모의 고사 성적만 잘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 아이가 자퇴하고 난 뒤에도 나는 '자퇴' 자체를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건 아마도 사회의 통념과 편견에 대한 두려움이 밑바탕이 되었겠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자퇴'를 감행하면서 까지 내가 이루고 싶다는 것이 없어서였을 것이다. 

이 책을 쓴 김해완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자퇴를 한다. 자퇴 후 생활비를 위해 시급 4,110원을 받고 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수유 너머 연구실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한다. 자신의 삶에 대한 깊은 사유 덕분에 김해완은 일반 학생들과 다른 길을 당당하게 걸어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꾸려가며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하여 자신만의 생각과 말을 갖추게 되었다. 그녀에게 사회의 통념이나 편견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자신의 삶을 살고 싶었고, 스스로 독립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당당하게 그녀의 삶을 스스로 살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갖혀 있던 어린 시절의 나와, 지금 내가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이 생각났다. 자퇴할 용기도 없고, 그것을 이해해주고 뒷받침 해줄 부모님도 없으며 더더욱 자퇴까지 해가면서 이루고픈 꿈이 없던 어린 나와 지금의 내 아이들. 중요한 것은 사회가 아니라 자신의 삶이라는 것을 좀 더 빨리 알았다면, 그리고 그것을 이해해주고, 가르쳐 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에 김해완의 삶이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김해완이 아닌 다른 아이들의 삶이 안타까웠다. 그녀처럼 자기가 원하는 공부를 하고, 자신만의 삶을 살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린 나이지만 깊이있는 독서와 다양한 경험, 그리고 끊임없는 사유를 통해 만들어진 김해완의 이야기는 서른이 넘은 나에게도 참 많은 자극이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삶에 대해 그리고 아이들의 삶, 그리고 나의 삶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되었다. 진정한 공부가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꾸려나갈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을 아이들에게 제시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좀 더 많은 김해완이 나타나서 자신의 삶을 살고, 자신의 이야기를 해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닥치고 정치 - 김어준의 명랑시민정치교본
김어준 지음, 지승호 엮음 / 푸른숲 / 201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장 큰 공포는 불확실성이었다. - 그런 불확실성, 나는 이게 바로 공포의 원형질에 해당한다고 봐. -p35 

우가, 쎈 놈은 더 가져가도 된다는, 질서와 위계를 당연시 하는 수직적 관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면, 좌는 누구나 같은 조건에선 같은 정도의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믿는 수평적 관계를 지향하지. 그러니 연대가 키워드가 되는 거고, 그 연대를 작동시키는 엔진은 염치가 되는 거지. 인간이 가진 염치, 우의 엔진이 욕망과 공포인데 반해서, 그렇게 우는 동물의 반응이고, 좌는 이성의 작용이라고 할 수 있겠지. -p44 

우리가 겪는 무수한 일상과 삶의 갈등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자기 바닥을 확인하는 과정, 그건 자신이 구체적으로 어떤 인간인지 받아들이고 하나의 독립적 인격체가 되어가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절차지. 그리고 그런 과정을 겪고 나서야 자신만의 균형 감각을 획득하는 거다.  -p268 

정치를 이해하려면 결국은 인간을 이해해야 하고 인간을 이해하려면 단일 학문으로는 안 된다. 인간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팩트와 가치와 논리와 감성과 무의식과 맥락과 그가 속한 상황과 그 상황을 지배하는 프레임과 그로 인한 이해득실과 그 이해득실에 따른 공포와 욕망, 그 모두를 동시에 같은 크기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통섭해야 한다. 나는 통섭한다.(웃음)    -p292 

좋은 컨텐츠의 가장 첫 번째 조건을 애티튜드라고 생각해. (중략) 이 새로운 공간에선, 광고하면 스팸이고, 전파되면 정보다. 어차피 나쁜 컨텐츠는 저절로 죽고 좋은 컨텐츠는 혼자 성장한다. 그 본질을 이해하고 컨텐츠가 스스로 성장할 떄까지 버티는 배짱이, 첫 번째로 요구되는 애티튜트야. 절대 구걸하면 안 돼. (중략) 두 번째는 대중 언어로 말하는 자세 (중략) 세 번째는 쫄지 않는 자세 (중략) 마지막으로 덕 볼 생각을 하지 않는 자세.  

그렇다면 <나는 꼼수다>의 전달자와 애티튜드와 컨텐츠로 새로운 메시지 유통 구조를 확보해 무엇을 하려는 거냐. 논리적 정합성과 명분, 이념을 중시하는 범진보가, 자주 잊거나 잃곤 하는 감성의 부족분을 보완하고 싶어. 진보의 인간적 면모를 보여주고 싶다고. 그렇게 진보의 프레임을 확장하고 싶어.  -p307 

 

 

 

   

 우울한 날들을 보내고 있는 요즘. 하루하루를 버티는 힘 중에 하나가 김어준의 방송들이다. 월요일엔 하니 티비의 '뉴욕타임즈', 목요일엔 '나는 꼼수다', 그 외의 날들엔 '김어준의 색다른 상담소' 간혹 윤도현의 두시의 데이트 중 '연애와 국제정치'   

최근 내가 본 사람들 중에 가장 당당한 사람이다. 자신의 삶과 생각에 대해 부끄러운 것도, 자신감 있는 것도 당당하게 이야기 하는 것이 참 멋졌다. 자신의 말로서는 무학의 통찰이라고 하지만 직접 경험이든 간접 경험이든 많은 경험을 통해 얻게 되는 생각과 느낌들이 나름의 과정을 거쳐 탄탄한 논리를 가지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떤 상황에 대해 부정적으로 이야기 하기 보다 유머로써 표현하고 희화화 하여 가볍게 다루는 것이 참 좋다. 항상 작은 것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나에게 가장 부러운 점이다. 그가 던지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힘이 될때가 많다. 그래서 그의 방송과 글을 찾아서 듣고, 읽게 되나 보다.  

전에 '건투를 빈다'도 줄을 그으며 읽었다. 그리고 거기에 나오는 '십대에게 고함'은 수업할 때 아이들과 함께 읽으며 이야기 나누었는데 꽤나 반응이 좋았다. 현학적이지 않고, 솔직한 그의 말투와 문장이 아이들에게도 감동을 준 것이겠지. 

요즘 '나는 꼼수다'를 들으며 김어준의 매력에 또 빠져들었다. 혼자만의 삶을 추구하기 보다 다같이 사는 사회의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는 그의 다짐이 이 방송을 통해 드러나고 있는 것 같다. 쫄지말고, 웃으며 서로를 위로하는. 이번 책에서 정치에 관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정치에 관해 자신 나름대로의 해석과 앞으로의 정치에 대한 그의 생각을 통해 내가 가진 정치에 관한 생각도 비교해보았다. 이 책을 통해서 사람들이 좀 더 사회 현실이나 정치에 관해 많은 관심과 참여를 가질 수 있었음 좋겠다. 

그리고 마지막... 김어준 정말 매력적인 수컷이다. 만나고 싶다~!! ㅋ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Q정전
루쉰 지음, 전형준 옮김 / 창비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누운 채  배 밑바닥에 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나는 나의 길을 가는 중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생각했다. 나는 결국 룬투와 이 정도까지 격절되었지만, 우리의 후배들은 아직 한마음이다. 훙얼은 수이성을 그리워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희망한다. 그들은 더 이상 나처럼, 사람들끼리 결절되지 않기를...... 그러나 나는 또한, 그들이 한마음이 되려고 하다가 그 때문에 나처럼 괴롭고 떠도는 삶을 사는 것은 원하지 않고, 그들이 룬투처럼 괴롭고 마비된 삶을 사는 것도 원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처럼 괴롭고 방종한 삶을 사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마땅히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가 아직 살아보지 못한 삶을.
  희망을 생각하자 나는 갑자기 무서워졌다. 룬투가 향로와 촛대를 달라고 했을 때 나는 그가 우상을 숭배하면서 언제나 그것을 잊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몰래 그를 비웃었었다. 지금 내가 말하는 희망이라는 것도 나 자신이 만들어낸 우상이 아닐까? 다만 그의 소망은 아주 가까운 것이고 나의 소망은 아득히 먼 것이라는 것뿐이다.

 몽롱한 가운데, 나의 눈앞에 해변의 초록빛 모래밭이 펼쳐졌다. 그 위의 쪽빛 하늘에는 황금빛 둥근 달이 걸려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희망은 본래 있다고 할 수도 없고, 없다고 할 수도 없다. 그것은 지상의 길과 같다. 사실은, 원래 지상에는 길이 없었는데, 걸어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자 길이 된 것이다.         [192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올페는 죽을 때 나의 직업은 시라고 하였다 - 개정판
남진우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가 작열하는 젊음의 열사를 건너 신라와 질마재라는 영원으로 통하는 가상의 시공간에 이른 뒤에도 그의 시가 일깨우는 삶에 대한 열렬한 애모는 변함이 없다. 그의 시세계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꽃과 여인은 바로 시인이 추구하는 궁극의 대상, 삶을 삶답게 해주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가치 있는 증거물이다. 삶, 그 자체를 위한 삶 - 여기에 서정주 시의 토대와 성과와 한계가 자리잡고 있다. 삶은 그보다 더 가치 있고 고귀한 그 무엇을 위해 희생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 오직 삶을 진작시키고 그 지평을 확장시키는 데 삶의 모든 순간을 바쳐야 한다는 것, 이것이 서정주 시의 한결같은 전언이다. 아무리 그가 신라를 이상화하고 풍류와 영원을 읊조리더라도 - 시인이 실제 현실에서 노정한 정치적 오류와 일상에서의 주책스러운 면모까지 포함해서 - 그는 어디까지나 소박한 현실주의자요 쾌락주의자의 틀에서 한 번도 벗어나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서정주의 시에서 고도의 형이상학이나 윤리적 강건함을 찾으려드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그의 시는 언어로 이루어진 미학적 구조물이라는 점에 충실할 뿐이다. 그러나 그것만이라도 이토록 완벽에 가깝게 달성될 수 있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시라는 주술을 통해 우리 모두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삶의 열락에 젖게 만드는 게 어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겠는가.     -p19

 오늘날에 이르러 사람들은 엄청난 양으로 쏟아져 나오는 책들에 둘러싸인 채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책이, 세상이란 미로에 갇힌 사람들을 출구로 이는 표지판 구실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미로의 내부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미로 역할을 하기에 이른 듯하다. 한 권의 책이 사라진 자리를 대신해 무수한 책들이 저마다 현란한 주장과 수사로 무장/치장한 채 스스로를 과시하고 있지만 그것은 듣는 사람의 가슴에 내밀한 속삭임으로 다가서지 못하고 귓전을 스쳐지나가는 소음으로 여겨지고 있다. 책은 많아도 진정 읽는 사람의 영혼을 뒤흔들고 삶의 나침반이 되어주는 결정적인 단 한 권의 책은 발견하기 힘든 시대, 풍요 속의 궁핍을 강요하는 이런 시대에 우리는, 프랑스의 한 철학자가 책을 앞에 두고 그랬듯 "오늘도 우리에게 일용할 굶주림을 주시옵고"라고 기쁜 마음으로 기도드릴 수만은 없는 실정이다.   -p28~29

 장정일의 경우 그는 열심히 읽고, 읽은 것에 대해 쉴 새 없이 이야기하는 것을 자기실존의 근거로 삼고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독서의 잡식성이 곧 독서의 풍요로움을 보장해주진 않는다. 거의 숨 돌릴 틈도 없이 읽고 씌어진 때문인지 그의 책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앎에의 의지'라기 보다는 '문자에 대한 허기'에 가깝다. 그래서 때로 강박적으로 여겨지는 그이 독서중독증이 과연 어떤 콤플렉스의 발현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한편, 그토록 부지런히 읽어댄 그가 과연 정확히 읽긴 한 것인지, 그 책의 내용을 충분히 저작했으며 핵심을 짚어 낸 것인지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킨다.    -p123

 이처럼 쓴 사람과 읽는 사람 사이에 공명 작용을 일으키는 정서적 감응력 밑에 김훈 특유의 탐미적 허무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그의 글을 채색하고 있는 온갖 수사와 지식의 허세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이 궁극적으로 말하는 것은 삶의 정처없음과 소멸하는 것의 아름다움으로 귀결된다. 그의 글을 읽을 때 받게 되는 하염없는 쓸쓸함은 바로 이 탐미적 허무주의에서 연유한다.

 이 점과 관련하여 나는 이 자리에서 그가 들려준 인상적인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것은 정비(靜飛)라는 낯선 단어에 관한 것이다. 고요한 비상, 정지한 듯 날아가는 비행, 이 말은 무슨 뜻을 ㅎ마축하고 있는가. 저 먼 북쪽 나라에 사는 새들은 추운 계절이 다가오면 한 철을 깃들일 따뜻한 곳을 찾아 아래로 아래로 남하한다. 그중 한 무리는 시베리아에서 동쪽 해안을 타고 우리나라를 거쳐 동남아시아로 내려가고 다른 한 무리는 중앙아시아를 거치고 희말라야 산맥을 넘어 인도 쪽으로 내려간다. 그런데 이 철새 무리가 높은 산이나 광막한 바다를 만날 때 취하는 비행법이 바로 '정비'이다. 새눈 보통 죽지에 연결된 가슴 뼈의 움직임으로 비상하지만 아주 먼 거리를 여행할 때에는 가만히 날개를 펴고 기류에 몸을 맡긴 채 예정된 공간을 통과한다. 사실 조그만 새가 근육이나 뼈의 힘으로 그 높은 산맥을 넘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저대한 장벽과 맞닥뜨린 새는 경망스런 날개짓 대신 광대무변한 우주의 섭리에 몸을 의탁함으로써 목적을 성취한다.

 이 에피소드는 탐욕스러운 독서가인 그가 분명 어느 책에선가 보고 자신의 상상력을 덧붙여 들려준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이야기 속엔 인간 김훈이 동경하는 삶의 방식, 나아가 글쓰기의 형식이 암시돼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의 글엔 거대한 기류에 온 몸을 맡기고 '지금 이곳'이라는 허허로운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한 존재의 긴장과 열정 그리고 지혜가 숨어 있다. 조금만 자세를 흐트려도 수천 미터 아래의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질지도 모를 위험을 안고 그는 날고 있다. 그의 글 표면을 관류하는 유유자적함 이면엔 실은 세상에 대한 원초적 허무와 절망이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이다.  -p169~170

 뒤라스의 거의 모든 소설이 그렇듯이 이 작품의 주제 또한 '사랑의 불가능성'이다. 뒤라스는 일체의 분장이나 가식 없이 작품 속에 직접 출연하여 자신의 내면을 적나라하게 고백하고 있다. 그녀는 앙드레아를 향해 "나는 당신에게 말하고 싶었지요. 당신을 사랑한다고, 그렇게 외치고 싶었지요. 그게 다예요."라고 말하다가도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이중의 제로"라고 회한에 잠겨 되뇐다. 뒤라스의 언어에는 이처럼 모든 것이면서 아무것도 아닌 대상을 휩싸고 돌며, 부재를 현존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를 삶에 대한 정열로 뒤바꾸고자 하는 지난한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p237

 소설의 주요 갈등은 "인간을 가축으로 개조하는 일을 질리지도 않고 열심히 수행"하는 학교 당국 및 기성세대와 여기에 반항하는 주인공과 그 동료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p243

 어쨌든 작가는 말한다. 어느 시대나 있기 마련인 권력의 앞잡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대의 복수는 그들보다 즐겁게 사는 것이다. 라고.    -p244 : 무라카미 류 <69>

"어렸을 때 나는 사치라고 하면 모피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자택 같은 것을 떠올렸다. 그리고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생각되었다. 지금은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 대해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게 사치가 아닐까 생각한다."

-

그렇다. 사랑은, 그것이 진정한 것인 한 '사치'이다. 그것은 감히 인간이 누리려고 해서는 안 되는 금단의 영역 저편에 놓여 있는 것이다. 오직 사랑에 빠져 있는 두 당사자만 그 사실을 모를 뿐이다. 아니, 사랑이 사치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 사람은 이미 늙은 것인지 모른다.
-268~269 : 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

 
   

 남진우의 <숲으로된 성벽>을 사면서 같이 산 책이다. 제목이 심상치 않다. 부제로는 <남진우의 문학수첩>이라는 말이 달려 있다. 80~90년대까지 그가 부지런히 읽은 책들에 대한 서평 모음이라고 보면 되겠다. 대부분의 작품이 모르는 것들이지만 서평을 읽는 재미가 쏠쏠했던 것은 책의 내용과, 서평 안에 '과연 그렇구나;라고 감탄할 수 있는 표현들이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름 관심을 갖게 하는 작품들도 생겨나 메모지 구석에 '김화영'이나 '장 그르니에','미셀 투르니에' 등의 작가 이름을 적기도 하였다.
 한 권을 다 읽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이 책, 저 책 여러 권에 동시에 손 대서 읽다 보니 그랬다. 요즘 사실 책이 잘 안 읽혔다. 미하엘 엔데의 <모모>를 다시 읽었고, 녹색평론에 실린 글과 함께 정리해보려다 미뤄둔 상태이다. 그리고 이책 저책 사기는 많이 사두고 질 읽지 못하고 있다. 갑자기 눈이 나빠져 안경을 새로이 맞춰야 하는 것도 있고 이래저래 시간이 잘 나지도 않았다. 한 편으로는 쌓여가는 신문과 주간지, 월간지 등과 더불어 넘쳐나는 활자들 속에 질려 읽기가 지리해진 탓도 있으리라.

  위에 글들은 읽으면서 내 입장에서 '그렇구나!' 라고 감탄한 것들이다. 글들을 대할 때 나는 그 글들에서 내 이야기를 찾는다. 내가 가지고 있는 숨은 모습을 글을 통해 찾는 것이다. 내가 책을 읽는 행위가 단순히 '문자에 대한 허기'가 아니라 '삶의 방향을 찾는' 일이 되었음 한다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며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