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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십대의 탄생 - 소녀는 인문학을 읽는다 ㅣ 다른 탄생 시리즈 1
김해완 지음 / 그린비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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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 - 앎과 자유에 대한 갈증
그렇다면 가르침은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 선생은 학생에게 지식을 주입하거나 학생의 삶에 대해 명령하고 개입할 수 없다.
진정한 교사는 가르치지 않는다. 다만 누군가 그의 곁에서 스스로 배울 뿐이다. 태양은 누구에게도 자기 빛을 주지 않는다. 다만 만물이 그 빛을 받아 스스로 자라 갈 뿐이다. (버리고 행복하라. 31쪽)
태양은 존재할 뿐이고 해바라기도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해바라기는 태양과 여름 내 함께 지내면서 무럭무럭 자란다. 진정한 선생은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앎에 대한 갈증을 유발한다. 학생은 그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변화를 경험하며 절로 배움을 갈구하게 된다. 갈증을 일으키는 것은 바로 선생의 '존재 자체'이다. 따라서 선생은누구보다 열심히 살며 끝없이 배우고자 하는 자기 삶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선생이 반드시 전문교육을 받아야 하거나 자격증을 소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일에 종사하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자라도 괜찮다. 끊임없이 자기 삶에 질문을 던지고 그것을 충족시키려는 의지가 있다면, 또한 학생이 도움을 요청했을 때 자신의 삶에서 일어났던 다양한 배움과 노동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는 역량이 된다면 그는 분명 '가르칠' 수 있다. 선생은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농사라면 농사, 글쓰기라면 글쓰기 등 선생에게는 걸려 넘어지고 또 질문을 얻는 구체적인 삶과 배움의 현장이 있어야 한다. 질문을 멈추지 않을 때에만 누군가 빛을 받는 태양이 될 수 있다. -P152~153
꿈은 미래에 쟁취해야 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현재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말해 주는 좌표다. 꿈을 꾼다는 것은 현재를 '이렇게 살겠다'고 마음 먹는 것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내 몸을 움직이는 순간, 현재는 꿈에 의해 움직이고 변한다. 따라서 꿈이 영향을 주는 것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다. 그 순간에는 '되기'와 '하기'가 거의 구별되지 않는다. 가령, 존경해 마지않는 어떤 작가처럼 되고 싶어서 열심히 글을 쓸 수 있다. 또 열심히 글을 쓰다 보니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다. 글을 쓰는 상태, 글을 쓰는 순간만 존재한다.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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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반 배정이 끝나고 난 후 얼마 되지 않아 아이들의 얼굴도 이름도 잘 모른 채 반 분위기를 서로서로 파악해가며 조용히 지내고 있던 3월 초. 담임 선생님이 조례 때 한 아이가 자퇴 한다고 말씀하시더니 그 친구에게 마지막 인사를 시켰다. 그 친구는 자신은 영화를 만들고 싶고, 영화인이 되는데 지금의 학교 공부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며 자퇴를 한다고 했다. 잘 모르는 아이지만 '자퇴'라는 말의 무게는 그때의 나에겐 어마어마한 충격이었다. '자퇴'는 사고치는 아이들이나 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영화인'이 되기 위해 자퇴를 한다니 정말 큰 충격이었다. 그때 나는 뭐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없이 그저 공부만 열심히 해서 모의 고사 성적만 잘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 아이가 자퇴하고 난 뒤에도 나는 '자퇴' 자체를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건 아마도 사회의 통념과 편견에 대한 두려움이 밑바탕이 되었겠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자퇴'를 감행하면서 까지 내가 이루고 싶다는 것이 없어서였을 것이다.
이 책을 쓴 김해완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자퇴를 한다. 자퇴 후 생활비를 위해 시급 4,110원을 받고 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수유 너머 연구실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한다. 자신의 삶에 대한 깊은 사유 덕분에 김해완은 일반 학생들과 다른 길을 당당하게 걸어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꾸려가며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하여 자신만의 생각과 말을 갖추게 되었다. 그녀에게 사회의 통념이나 편견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자신의 삶을 살고 싶었고, 스스로 독립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당당하게 그녀의 삶을 스스로 살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갖혀 있던 어린 시절의 나와, 지금 내가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이 생각났다. 자퇴할 용기도 없고, 그것을 이해해주고 뒷받침 해줄 부모님도 없으며 더더욱 자퇴까지 해가면서 이루고픈 꿈이 없던 어린 나와 지금의 내 아이들. 중요한 것은 사회가 아니라 자신의 삶이라는 것을 좀 더 빨리 알았다면, 그리고 그것을 이해해주고, 가르쳐 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에 김해완의 삶이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김해완이 아닌 다른 아이들의 삶이 안타까웠다. 그녀처럼 자기가 원하는 공부를 하고, 자신만의 삶을 살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린 나이지만 깊이있는 독서와 다양한 경험, 그리고 끊임없는 사유를 통해 만들어진 김해완의 이야기는 서른이 넘은 나에게도 참 많은 자극이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삶에 대해 그리고 아이들의 삶, 그리고 나의 삶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되었다. 진정한 공부가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꾸려나갈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을 아이들에게 제시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좀 더 많은 김해완이 나타나서 자신의 삶을 살고, 자신의 이야기를 해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